2010/02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2007년 1월 30일 독일 영화 독일 사회의 파시즘을 냉랭한 시선으로 파헤친 감독 파스빈더의 작품이다. 남편은 죽고 자식들은 떠나버려 홀로 지내는 50대 여성 청소부가 있다. 그는 독일인이다. 술집에서 우연히 아랍 남자를 만난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다. 둘은 사랑한다. 인종과 국적, 스무살 넘게 차이 나는 나이 따위는 장벽이 아니었다. 장벽은 타인들의 시선이다. 둘을 바라보는 타인들, 사회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그들의 미천한 신분, 인종적 차이, 나이 차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사랑이 언제부터 용납의 대상이 되었을까? 나에게 이 영화가 참으로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단순히 파스빈더의 사회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파스빈더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착하고 성실한 아랍 남자에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벌..

    Carpe diem

    자본가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노동자를 훈육하고, 현명한 노동자는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말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사형제 합헌 유감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MBC에서 뉴스특보로 생중계를 하길래 내심 '이거 위헌 결정 나는 거 아냐'라고 기대했는데. 기자들이 위헌 결정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얻었으니까 생중계까지 하는 거 아니냐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 기자들도 싱거웠던지 대충 합헌 결정 소식만 전하고 생중계 끝. 사형제 존폐에 대한 토론이나 법리 논쟁은 사실 매우 싱겁다. 양쪽의 논거는 너무 뻔한 말들이라서. 이건 팩트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어떤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그렇다. 외국의 통계만 들이대도 그냥 박살나는 논거다. 미국 사례만 봐도 개구라가 되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냥 믿는다. 왠지 그럴 것 같으니까. 사형 선고를 받..

    다른 사람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깨닫고 있는 사실 하나. 해를 거듭할수록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만 남더라는. 돌아보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인생관, 비슷한 정치적 지향,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무슨 결심이나 작정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 유유상종 초록동색이라 했던가. 여하간 이렇게 나이 들면 별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으리. 우물 안이 편안하긴 해도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감안하면 터무니 없이 비좁다.

    무서운 서비스

    김종철 선생님이 시사IN에 쓴 글을 읽고, 일단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내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그런데 큼지막한 배너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부산광역시 당일배송 서비스를 실시합니다" 오전 10시 전에 주문하면 부산에서는 그날 바로 주문한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와! 좋겠다' 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좀 뜨악하다. 알라딘에서 파는 물건들이 무슨 시초를 다투는 종류도 아닌데 당일배송이 정말 필요한 서비스냐 하는 것. 물론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래도 이건 좀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속도경쟁, 시간경쟁은 단순히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테니까. 게다가 그 편리함이라는 것도 결국엔 누군가의 가혹한 노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