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

    이분법

    한일합방늑약 100년을 맞아, 2006년에 기록해둔 노트에서 옮겨 놓음. 고미숙의 책 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발췌해둔 것임. 거창한 기호일수록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속이 텅빈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사람의 최고권력자가 자신이 능동적으로 수행한 어떤 치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적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심각한 결락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인 힘의 배치를 읽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일본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데 있다. 조선의 지배층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적대적 긴장을 활용하기보다 러시아에 완전 밀착함으로써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일본을 자극하는 결과만 낳고만 셈이다. 민비는 이런 맥락에서 시해되었다. 민비가 명성황후라는 새로운 기호로 부각..

    만화책

    내년에 부모가 될 어느 부부를 위한 선물로 을 샀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선물은 책으로 하는 편인데, 저렴한데다가, 교양 있는 척 폼도 좀 나고, 선물을 주게 된 이유와 관련된 의미도 부여되고,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선물 하기 전에 미리 읽어볼 수 있는 얕은 속셈도 부릴 수 있다. 은 대학 시절 학생회실로 배달되는 한겨레를 꼬박꼬박 찾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솔직히 그때에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치기어린 거부감도 없진 않았으나, 그냥 외면하기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다운이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그랬다. 이번에 구입을 위해 인터넷 서점에 갔더니, 벌써 7권까지 나왔다. 다운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갔다니. 그나저나 이러다가 다운이가 청년이 되고, 연애를..

    스킨을 바꾸고

    오랜만에 블로그 스킨을 바꿨다. 내 삶의 기조 중 하나인 '단순하게 살자'에 맞춰서 아주 심플한 스킨으로 간택했다. 이미지는 단 한개도 없다. 내가 원하는대로 스킨 소스를 수정하느라 삽질(은 가카만 하는 게 아니다)을 하긴 했지만 썩 마음에 든다. 어느 때부턴가 단순한 게 좋아졌다. 영화 의 유명한 '진심주' 장면에서 정유미가 이런 대사를 친다. "가장 단순한 게 가장 좋아질 때가 온다" 단순한 게 좋아지는 것은 단순하게 살다보니 그리 되는 경우보다는, 복잡하게 살다보니 이게 안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렇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복잡한 것들을 힘겹게 정리해야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단순하게 산다는 건 결국 단순한 문제가 아닌 거다.

    자세

    갈등과 불만을 일으키는 원인은 대부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종종 이해하려는 자세조차 불성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죽었다 깨나도 절대 (당사자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여성들이 갖게 되는 복잡다단한 심리를 남성은 여성 만큼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겪어야 하는 좆 같은 일들이 남성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버려두자는 건 온당하지 않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너도 애 낳아봐라' 하거나, 남성이 여성에게 '너도 군대 가봐라' 하는..

    산장 라이딩

    오랜만에 무등산 산장 찍고 왔다. 아침부터 조금씩 끓어오르는 더위에 맞서며, 으샤으샤 낑낑 헉헉 페달을 돌리고 돌려 오르고 오른다. 힘은 들지만, 도심에서 달리는 것보다는 39억만배는 낫다. 간간히 나를 제치고 올라가는 자동차들이 발암물질 가득한 매연을 후욱 뿜어주는 덕분에 씨발씨발 하긴 했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에 감사하며 구불구불 오르막을 오른다. 내려 오는 라이더들을 만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이쁘장한 소녀가 자동차의 썬루프 위로 상체를 다 빼놓고 바람을 즐기며 내려온다. 소녀는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나는 한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서 '안녕' 한다. 기분 좋다. 잠시 쉬었다가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내려온다. 안장에 앉아 있기만 해도 시속 50km에 육박한다.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