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

    황해 : 웰메이드만으론 부족해

    한국 액션영화의 불길한 미래를 보고 온 것 같다. 물량공세를 방불케 하는 대형 자동차 액션 씬과 배우들이 고생깨나 했을 것 같은 거친 싸움 씬에도 불구하고 영화 는 기억에 남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졸작이라고 폄훼할 정도는 아니다. 에서 느꼈던 몰입도를 기대해도 좋고 꽤 웰메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칠갑과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 칼과 도끼가 살을 파고드는 섬뜩한 사운드에 의존하는 액션 씬은 시즌 2(?)를 보는 것 같았다. 잔인한 장면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목을 베고 피가 솟구치는 B급 장면인들 어떠랴. 하지만 시각과 청각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면 관객에게 남는 건 실망이다. 이소룡의 마지막 영화 에서 거울의 방에서 벌어진 마지막 결투 씬을 떠올려 ..

    우리는 과연 '정의'에 목말랐을까?

    마이클 샌델의 는 출판계를 넘어 '사회현상'이라고 할 만큼 이슈가 된 책이다.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들어서 책을 사지도 않았는데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진간한 술자리에선 이 책이 잠시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책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만,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현상'이 되고, 회자되기 시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내 버릇이다.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인데 갑자기 몇백만 흥행돌풍 어쩌고 하는 소식이 들리면 급 시들해지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는 최대한 개봉 직후에 보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한국의 인구 수준에서 정말 좋은 영화의 적정 관객 수는 많이 잡..

    희극

    슬프니까 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배고프니까 밥을 먹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슬픔을 슬퍼하되 슬픔을 희극의 자원으로 삼는 일은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인생은 주로 비극이고 희극은 비극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채플린이 위대한 건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표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비관을 배제한 낙관은 얼마나 유약한가! 절망을 겪지 않은 희망은 얼마나 허무한가! 슬픔을 품지 않은 기쁨은 얼마나 빨리 소멸하는가! 단 한번의 희극을 위해 수도 없는 비극을 담대하게 맞이하는 것. 뒤돌아본 삶이 그러하고 앞으로 닥칠 삶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 서른네살의 막바지 날들에 흥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책 <김예슬 선언>

    오늘은 약속했던 라이딩을 떠났는데, 출발 30분만에 호남대 정문에서 널부러져 보온병에 담아온 온수로 기어이(!) 컵라면을 먹으려는데, 한 사람분 온수가 부족하여 도서관 정수기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했고, 함평 월야면에 가서 복분자에 절인 한우 고기를 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마셨으며 육수에 밥을 비벼 먹은 뒤 광주로 돌아오자마자 W 형의 작업실 이사를 돕느라 진땀 조금 빼고 사례로 기네스 1병과 비누 1개를 득템하고, 후루룩 짭짭 맛있는 해물탕을 얻어먹고 집으로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동네 피자집에서 5천원짜리 고구마 피자를 사와서 부모님이랑 맛나게 먹은 하루였다. 즐겁고 고생스러우면서 배도 부른 하루였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책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는 것. 2주쯤 전인가,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 박노해 사진..

    '노동'을 말하지 않는 사회

    이마트의 '피자'에 이어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이 논란이 되었다. 롯데마트가 판매중단하기로 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만, 영 씁쓸하다. 프랜차이즈 치킨업체들의 과잉가격도 욕 먹고, '통큰치킨' 덕분에 가격경쟁 되면 더 싼값에 치킨 사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대기업이 영세상인들 돈벌이까지 집어삼키는 파렴치도 욕 먹고. 파격적인 가격의 치킨을 미끼삼아 소비자를 마트로 끌어들이여는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다 좋은데, '가격'에만 논점이 집중되는 모양새라 아쉽다. 자본주의의 경제학에서는 시장에서 합리적 가격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만, 살아 숨쉬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원자재 비용을 낮춰서 가격경쟁력을 올리기도 하겠다만, 피 토하는 가격경쟁의 현실에서 자본은 결국 노동자의 저임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