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혼자서 가라

    풍족한 생활이란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소비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면 '좋은 삶'을 고민하는 시간은 희소해진다. 공동체가 소멸되어가는 대중사회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우리의 삶을 규정한지 오래다. 하지만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는 행복을 유지하기 어렵고 스스로 내면을 느낄 수 없다. 소비는 얼핏 나를 위한 행위인 듯 보이지만, 사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이타적 행위다. 욕심 나는 내 삶과 일상에 큰 불만이 없다. 하지만 갈수록 진중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같이 노는 사람들은 있어도, 함께 생각을 나누고 내면을 보여주며 때로는 격한 논쟁도 불사하는 그런 관계를 새로 맺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가끔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는 까닭이다...

    짧은 이별은 없다

    매일 아침 잠이 깨면 이별한건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면서 엄청난 무게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 이별이다.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날마다 아침이면 그 무게감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끌고 다녀야 하는 커다란 무게감. 밤이 되면 무게감은 더욱 커진다. 다리가 후들거려 잘 걷지도 못한다.온갖 복잡한 것들을 다 털어내고 남는 것은 하나다.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무엇으로 그 마음을 억누를 수 있을까?내일이면 그녀는 그에게 다시 중요해질 것이고, 그는 수없이 마음을 억누르고, 진심인지 아닌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말들을 그녀에게 내뱉고, 수많은 패배를 겪을 것이다.하루, 3일, 일주일, 한달, 그리고 1년..... 그렇게 혼자서 참아야 할 일이다.결혼생활에서 진정한 잔인함은 늘..

    '텅빈 충만'

    지난 2006년 봄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에서 법정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좋은 가구, 권력 등 이런 욕망들은 막상 갖게 되면 한동안 행복할진 모르지만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이들은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자신의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기사를 보고, 빠르게 책장을 훑었다. 나에게도 법정 스님 책이 한권 쯤 있을텐데 하며. 다행이다. 한권 있긴 하다. 1989년에 샘터에서 출판한 '텅빈 충만'. 20년이 넘는 세월 탓에 오래된 종이 특유의 냄새가 풀풀 난다. 군대 시절 나는 매주 종교행사 때마다 불교를 골랐다. 교회에서 주는 초코파이보다는 절에서 주는 떡을 더 좋..

    6년 후, 다시

    - 순번 : 41 - 제목 : 소주 한잔 걸친 밤에.. - 작성 : 조원종 - 일자 : 2003-08-23 00:32:43 - 카운트 : 42 - 본문 : 흠.. 회사에서 모종의 작전을 펼치려다 예기치 않은 장애물 때문에 작전시행을 내일로 연기하고 내 독립공간으로 기어 들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노트북 토닥거리다 소주 한잔 생각나서 모 선배에게 수작을 부렸다. 내 수작에 '얼씨구나' 하고 고의로(?) 넘어온 모 선배와 만나 포장마차에서 닭갈비에 소주 2병 비우고 들어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이란 게 엿 같은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갈수록 멀어져 가게 하는 시스템이란 것. 세상에 자신의 밥벌이와 이상을 일치시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개인의 이상과 근접한 밥벌이를 제공..

    씨발, 15년 걸렸네

    부모가 시키는대로(원하는대로), 학교가 지시하는대로 살아왔던 시기는 제외하고. 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때로부터, '한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시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수정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젠장, 이게 또 수정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대부분 안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들을 묵묵히 감수하며 해내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기까지 다시 1년이 걸렸다. 빌어먹을! 고작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결론을 내려고 1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보내야 했단 말인가. 씨발! 내가 무슨 오대수냐, 15년이라니! 라고 한탄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