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짧은 만화 <불행한 소년>의 강박

만화가 최규석의 '불행한 소년'이라는 짧은 만화가 김규항이 발행인으로 있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에 실렸다. 그런데 그 만화를 두고 논란이 생겼다. 그 만화를 본 구독자들(의 부모!)이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하고, 절독 선언까지 불사했다고 한다.
일단 만화를 감상하시라.

'불행한 소년'

그리고 항의와 해명 요구에 대한 김규항의 답장을 읽어보시라.

나는 김규항의 입장과 주장에 대하여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가짜 천사에게 평생을 속은 사람에게는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에게 현실의 추악함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아닌 어른의 속을 편하게 하려는 심사라는 것.
또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강박이 있다는 것.
이것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소년'이라는 만화가 어린이에게 좋은 영향만을 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좋은 영향'이라는 것은 단순히 밝고, 희망차고, 순수하며 낙관적인 영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추악함을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영향'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만화가 세상은 결코 핑크빛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어른들에게도 물론이다!)에게 좋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짜 천사에게 속아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표출한 분노가 꼭 '천사 죽이기'로 표현되어야 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불행과 분노의 깊이를 이해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특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 평생 자신을 속여온 '천사'를 죽이고 싶은 심정일 수 있다고 본다. 분노는 절박한 폭력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이러한 폭력이 무조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천사 죽이기'를 묘사하지 않았더라도 만화가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고 본다. 누워 있는 노인이 천사를 손으로 쥐면서 '네가 나를 평생 속인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만화를 끝내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살해'를 암시하는 듯, 노인의 손에 묻은 핏자국과 '천사'의 깃털은 소극적으로 말하면 사족이고, 적극적으로 지적하자면 일종의 강박이라고 생각한다. 지배이데올로기를 은유하는 '천사'에 대한 분노와 그 표출을 단호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강박말이다.
만화이기 때문에, 만화는 예술이기 때문에 여운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표현방식이 더 세련되고 예술적인 것이 아닐까. 만화를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것. 나는 이런 게 좋다.
굳이 잔혹한 결말을 보여주고야 마는 것은 강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계몽에 대한 강박일까.

특히 아이들이 독자이기 때문에 '살해'를 암시하는 마지막 컷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어떠한 대상이더라도 생명을 빼앗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또한 교육적으로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고,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마지막 컷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해'를 암시하는 마지막 컷 때문에 이 만화의 의미가 무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중하지 못한 표현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절독선언은 좀 '오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래가 그랬어>는 참으로 소중한(그래서 지속가능해야 한!) 잡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