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63

2018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대학 시절에는 부산, 전주, 부천 등 국제영화제를 찾아다녔는데, 어찌된 일인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국제영화제를 찾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놀지 못하는 일은 돈보다는 마음이 없을 때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어쩌다 소식을 듣기만 했는데, 올해엔 드디어 다녀왔다. 1박2일 일정이 아쉬웠지만, 고대했던 '원 썸머 나잇'의 마지막 밤을 즐긴 것만으로도 풍족했다.해질녘 입장한 청풍호반무대는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오바하자면 영화제에 와서 영화는 안보고 '원 썸머 나잇' 하나만 즐겨도 좋다. 가수들의 공연도 좋았지만, 시네마콘서트는 와 기대 이상이다. 커다란 무대의 스크린에는 흑백 무성영화 이 상영되고, 생태주의 어쿠스틱 밴드 '신나는 섬'이 영화 속 장면과 근사하게 어울리는..

movie 2018.08.17

어느 가족 : 불완전하니까 가족이다

*아래 글에는 영화 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조금은 유명해졌다. 더 유명해지기 전에 봐야지 하고 광주극장 예매.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에 땀이 나서 숨만 겨우 쉬면서 영화를 봤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남아 있어서 고마운 광주극장.은 줍고 주워지는 관계로 이뤄진 가족을 보여준다. '줍는 행위'와 '훔치는 행위'는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먼저 버려진 사람들로 구성된 이 가족을 소개해보자.할머니 하츠에 : 바람난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았지만, 그 남편의 죽음 덕분에 연금을 받고 낡은 집에서..

movie 2018.07.31

변산 :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하여

나는 배우보다는 감독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편이다. 어떤 감독들의 영화는 개봉을 기다리고, 꼭 챙겨서 본다. 그런 감독들 중 한명이 이준익 감독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에서 어쩌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쉬운(?)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감히 내맘대로 인간성을 평가한다면, 이준익 감독은 정말 인간적인 사람일 것 같다.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영화의 밑바닥에서 조차 잃지 않는 휴머니티일지도 모른다. 나 보다는 나 뭐 이런 영화가 인간 이준익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겁나게 웃기다가 울컥하게 만들고, 급기야 눈물을 흘리게 하고 결국엔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만든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거, 이준익 감독 영화의..

movie 2018.07.10

버닝 : 이제 체계를 불태워봐

*영화 '버닝'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모든 것은 모호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 벤이 해미를 살해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있지만, 확신은 없다. 종수는 기껏 고물 트럭을 타고 벤의 뒤를 미행하지만, 금새 들켜버리고 벤의 포르쉐는 유유히 고물 트럭을 따돌린다.친절하게도 영화는 벤이 연쇄살인마이거나 소시오패스라는 여러 정황들을 보여준다. 늘 웃고 있고 매너와 여유를 보여주지만, 금새 지루해하고, 울어본 적이 없으며, 음식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서 먹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의식을 엿보게 한다. 벤의 집에는 연쇄살인마의 전리품처럼 여성의 물건들이 수집(!)되어 있다. 종수는 해리가 찼던 것과 같은 손목시계를 벤의 집 화장실에서 발견하지만, 이 역시 직접 증거가 ..

movie 2018.05.24

공동정범 : 불편하더라도 또다른 진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사망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궁금한 게 많았다. 2009년 1월 20일 이후 '용산'을 생각할 때면 '진실'에 대한 궁금증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들이 풀린다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영화 '공동정범'은 진실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용산 참사의 공동정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살이를 하고 출소한 생존자 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동정범'은 첫번째 이야기 격인 '두 개의 문'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두 개의 문'이 다양한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참사의 실체를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공동정범'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당시 용산 남일당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용산 철거민만 있었던 ..

movie 2018.01.27

댄싱 베토벤 : 혁신과 화합의 향연

오늘 휴가까지 내고 본 다큐영화 '댄싱 베토벤'. 수시로 ACC 홈페이지를 살피는데, 이거 보자마자 바로 예매. 후배 것까지 해주려고 했지만, 1인 1매만 가능. 나중에 알려줬는데 이미 매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누구나 들어봤을 매우 유명한 음악인데, 여기에 현대무용이 결합하는 공연이라니. 아, '댄싱 베토벤'은 공연실황은 아니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후반부에 실제 공연 장면을 짧게나마 볼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다큐영화를 봐야할 이유로 충분하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스위스 베자르 발레 로잔과 도쿄 발레단의 협업으로 완성된 공연이 도쿄에서 펼쳐진다. 1964년 '합창'을 초연한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를 연습하는 무용가들의 모..

movie 2018.01.12

연애담 :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연애'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은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고 정의한다. 이거 바로 잡아야 한다. 연애는 '남녀'간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애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지, 남자와 여자만 하는 일은 아니다. 우연히 또는 치밀하게 시작하고 격정에 휩싸이며 권태롭다가 갈등하고 이별하고 재회하기도 하는. 연애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중에서도 꽤 근사한 일이다.우연한 시간에 우연한 장소에서 우연한 일로 마주친 윤주와 지수. 둘 사이에 사소하지만 심상치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 이것은 사랑의 시작. 설명할 수 없는, 아니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끌림.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고, 우연을 가장해서 마주칠 기회를 만들며, 떠올리기만 해도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는. 우리가 익히 아는, 우리 모두 ..

movie 2018.01.05

초행 : 두렵지만 한걸음 한걸음

시놉시스 보고 꼭 봐야지 했던 '초행'. 광주극장 상영시간표를 확인하니, 오늘 아니면 내일 퇴근하고 볼 수 있다. 내일 저녁엔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 보기로. 겨울 광주극장에서 영화 보는 건 추위와의 싸움. 당직 퇴근하고 집에 들러 목도리까지 챙겨 나갔다.'초행'은 7년차 연인 수현과 지영이 슬슬 결혼을 생각하면서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영화냐 다큐냐 헷갈린다. 아무 정보 없이 봤다면 다큐라고 생각할 만큼 리얼 리얼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김대환 감독이 배우들에게 상황 설명만 하고 거의 모든 대사를 애드리브로 하게 했다고 한다. 감독과 배우의 섬세한 상호작용과 배우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 영화는 두 배우의 리얼 애드리브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누구..

movie 2017.12.10

땐뽀걸즈 : 추억이라도 괜찮아

청춘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특히 '10대'가 주요 인물인 영화라면 챙겨보려고 한다. 영화에서는 주로 고등학생으로 나오는데, 10대들을 모두 '학생'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탈학교 청소년들을 배제하는 것이므로 '청소년'이나 '10대'라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테니까.여하간 10대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나는 울컥울컥 한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개 스토리의 얼개나 캐릭터가 진부하다. (어른의 시선으로 본) 10대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여주고, 극복해가거나 현실 앞에 다시 한번 엎어지거나 하는 걸로 전개된다. 그렇다고 가슴 한켠이 아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경험 없이 10대를 지나온 사람은 없을테니까.'땐뽀걸즈'. 지난 달 광주극장 상영시간표에 있는 걸 봤는데 시간이 안맞아 놓친 다큐멘터리다...

movie 2017.12.09

남한산성 : 민중의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남한산성'은 꽤 몰입도가 높다.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끌고간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박희순, 조우진 배우의 연기는 흠 잡기 어렵다. 우리가 익히 아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의 척화론과 주화론의 팽팽한 싸움이 이 영화의 큰 축이다. 전투씬은 영화적 재미를 위한 도구일 뿐이고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진짜 전투는 조선 조정 안에서 벌어지는 척화론과 주화론의 다툼이다. 영화 속에서 척화론을 주장하는 김상헌이나 주화론을 펼치는 최명길이나 누구의 편도 쉽게 들어줄 수 없다. 신념과 신념의 대결, 충심과 충심의 결투가, 고립된 남한산성의 조정에서 겨울 찬바람보다 더 매섭게 벌어진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각색된)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명쾌하게 결론낼 수 없는 논쟁은..

movie 201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