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63

접속

누구나 '내 인생의 영화'라 할만 한 영화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기준이란 게 고무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목록이 조금 긴 편이다. 그래도 상위에 자리를 잡은 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긴 하다. 그 중 한 편이 영화 이다. 은 1997년에 개봉했지만,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오른 것은 몇년 되지 않았다. 을 세번째 보았다. 이번엔 사운드트랙이 귀에 팍팍 꽂혔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잘 몰라서, 'Pale Blue Eyes'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엔딩에 나오는 'A Lover's Concerto'를 훨씬 더 좋아했더랬다. 97년 당시 PC통신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었다. 10년 하고도 2년이..

movie 2009.11.24

매직 아워

하루 중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일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해가 진 후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시간대를 꼽을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 시간대를 '매직 아워'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시간 안팎으로 짧은 시간대다.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는 야간촬영을 위한 최적의 시간대로 알려져 있다.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대가 바로 매직 아워다. 이걸 제목으로 달고 나온 일본 영화 . 겁나게 웃긴다. 요즘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대답하기 참 궁색했는데, 요건 추천한다. 캔맥주 하나 까고, 오징어 질겅질겅 씹으면서 키득거리기에 딱인 영화다. 사토 코이치의 연기는 꽤나 능청스럽고, 의 츠마부키 사토시도 반갑다. 아야세 하루카도 조연으로 출연..

movie 2009.11.21

어긋남, 다시 마주 보기 위하여

#1 사랑을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는 걸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 것일까? 구태한 주례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처럼 결혼을 하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사랑을 하면 하나가 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하냐고. #2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원통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 양성이 한 몸으로 이뤄진 원통형 인간. 이들이 신에게 도전하기 시작하자, 분노한 제우스가 원통형 인간을 반으로 잘라버렸다. 이 신화로부터 후대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원초적 에로스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원래 하나였으니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인간은 에로스적 욕망을 좇으며 살아간다는. #3 열 다섯살 소년과 서른 여섯 여인의 사랑. 마이클과 ..

movie 2009.09.22

<바더 마인호프>가 남긴 콤플렉스

조OO 선생님과 함께 광주극장에서 를 봤다. 상영시간이 2시간 20분쯤 되어 좀 긴 편인데 지루함을 느낄 새는 없다. 솔직히 이 영화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평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 말하려면 폭력의 문제를 반드시 짚어야 하는데, 내 견해가 애매모호하다. 인민의 폭력 전에는 반드시 강자, 왕, 국가, 자본의 폭력이 선행된다는 점. 다시 말해 인민이 먼저 폭력을 선택한 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비폭력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 평화롭고 안전한 상황에서 떠드는 비폭력주의보다는 생존과 안위와 생명이 위협받는 폭력적 상황에서 발휘되는 비폭력주의야 말로 진짜라는 점.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은 항상 강자들의 논리이고, 강자의 폭력을 당하는 대..

movie 2009.09.21

반두비

유료 웹하드 사이트에서 3,500원을 지불하고 영화 를 내려받아 보았다.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운 독립영화들은 웹하드 업체와 제휴하여 작은 수익을 얻는다. 어쨌든 , 에 이어 까지 신동일 감독의 관계 3부작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전의 두 작품은 무진장한 정치적 메타포로 무장한 의미심장함이 가득했다면 는 훨씬 명랑한 분위기가 가미되었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좋은 영화라고나 할까. 를 보고 나면 '요즘 독립영화 잘 만든단 말이야'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무의미한 장면이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객에게 메시지의 해독을 요구하는 딱딱한 영화도 아니다. 낄낄대며 웃을 수도 있고(현직 대통령을 대놓고 씹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영화다. ㅋㅋ),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

movie 2009.09.04

숙제

영화 를 봤다. 광주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봐야지 했는데 겨우 마지막 상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신동일 감독의 전작 를 먼저 보았다. 아무래도 전작을 보고나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는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영화다. 주인공이 3명으로 늘어난 데다가, 그들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 친구, 부부 등으로 얽혀 있고, 그들의 욕망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근원이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어쩌면 관계와 욕망은 영화의 표면적 서사에 불과할 수 있다. 신동일 감독이 작정했던 것은 아마도 정치적 이야기였을 것이다. 예준은 학생운동을 했고, 군대 시절 '인간은 평등하다'며 동갑내기 후임병 재문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했던 사람이다. 지금 예준..

movie 2008.12.11

장담 못하는 이야기

백수 : "성수야, 넌 니 딸 돌잔치 때 난 왜 뺐냐?" 성수 : "난 현규한테 연락 다 돌리라고 했는데 연락 안갔어?" A : "야, 백수한테 전화해가지고 뭐 떡값 나오냐? 그냥 넘어가는거지." B : "평소에 친구들하고 연락을 해. 나야 뭐 연락받고 간 지 알아? 알아서 찾아갔지." 백수 : "그래... 백수는 찌그러져 살아야지..." 성수 : "그러지 마. 한잔 해라." B : "무슨 속상한 일 있냐? 왜 표정이 안 좋아?" 백수 : "니네 사는 꼴 보니까 배가 아프다. 배가 아파." 백수 : "야, 너 이번에 얼마 까였다고?" B : "뭐? 주식?" A : "야야. 주식 이야기 그만 해. 이야길 하지마." B :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파." A : "현규가 돈 좀 번 것 같더라. 너 이번에 ..

movie 2008.12.08

세상만사 뜻대로야 되겠소!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은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미안하다. 술이나 마시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늘 행복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성우이지만, 별로 행복해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술취한 '사장님'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 기타 연주를 해야 하는 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래도 성우는 끝까지 음악을 한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그래,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결코 폭신폭신한 솜이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 좆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동료들 다 떠나가..

movie 2008.09.14

꿈만 같았던 '꿈', 비루한 실현

공부하다가 잠시 쉬러 신문거치대에서 한겨레를 읽었다. 토요일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이 실렸다. 이번 영화는 다. 놀랍도록 세밀한 인문적 성찰의 깊이와 가슴을 꿰뚫는 듯 통철한 사색을 따라가는 재미. 철학자 김영민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의 글은 외형상 꽤나 현학적인 듯 한 문장들로 가득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주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준다. 이번 글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며, 가슴 한 켠이 울렁거려 혼났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겨우 꾹꾹 눌러야 했다. "에서 하고 싶었던 진짜 얘기는 우리가 10대에 가지고 있었던 삶의 원형과 희망이 우리가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을 때 소시민적 가치관에 묻혀 살면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한탄"이라는 감독 임순례의 말을 인용..

movie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