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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봤다.
광주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봐야지 했는데 겨우 마지막 상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신동일 감독의 전작 <방문자>를 먼저 보았다. 아무래도 전작을 보고나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방문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영화다.
주인공이 3명으로 늘어난 데다가, 그들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 친구, 부부 등으로 얽혀 있고, 그들의 욕망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근원이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어쩌면 관계와 욕망은 영화의 표면적 서사에 불과할 수 있다. 신동일 감독이 작정했던 것은 아마도 정치적 이야기였을 것이다.
예준은 학생운동을 했고, 군대 시절 '인간은 평등하다'며 동갑내기 후임병 재문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했던 사람이다. 지금 예준은 자본주의의 첨병 펀드매니저로 승승장구한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예준은 재문의 어린 아들을 숨지게 만든다. 아이의 이름은 민혁(민중혁명)이다.
지숙의 미용실 유리창을 교체하러 온 노동자 2명. 한명은 한국인이고, 다른 한명은 이주노동자다.
미용실 계단에서 셋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꽤 오래 보여준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그런데 그들의 서 있는 위치가 절묘하다. 맨 아래에 이주노동자, 그 위에 한국인 노동자, 맨 위에는 고급헤어샵 사장이 된 지숙이 서서 담배를 피운다.

영화를 보고났더니 무진장 부담스러운 숙제를 잔뜩 떠안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