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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았던 '꿈', 비루한 실현

공부하다가 잠시 쉬러 신문거치대에서 한겨레를 읽었다.
토요일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이 실렸다.
이번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놀랍도록 세밀한 인문적 성찰의 깊이와 가슴을 꿰뚫는 듯 통철한 사색을 따라가는 재미. 철학자 김영민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의 글은 외형상 꽤나 현학적인 듯 한 문장들로 가득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주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준다.
이번 글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며, 가슴 한 켠이 울렁거려 혼났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겨우 꾹꾹 눌러야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하고 싶었던 진짜 얘기는 우리가 10대에 가지고 있었던 삶의 원형과 희망이 우리가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을 때 소시민적 가치관에 묻혀 살면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한탄"이라는 감독 임순례의 말을 인용한 부분에서 기운이 심상치 않더니, "꿈은 문턱에서부터 식고, 애인들은 기대보다 빠르게 늙고, 우리들의 존재는 채 성숙하기도 전에 마모된다"는 김영민의 문장에 이르러 안구가 뜨거워지고 만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진실이지만, 예기치 않게 제기되는 순간 언제나 슬프다.

벌써 7년 전인가.
광주극장의 퀴퀴한 분위기에서 한줌도(?) 안되는 관객들과 함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았다. 이 영화를 정확히(?) 감상하기에 20대 중반의 나이는 약간 부족했다.
그저 '역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하는거야'라는 하나마나 한 생각만 가득했던 기억 뿐이다.

단란주점에서 발가벗은 채 기타를 연주하는 '성우'처럼, 나도 언젠가는 발가벗겨진 채 꿈만 같았던 '꿈'을 비루하게 실현하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감독 임순례는 참으로 고약한 사람이다. 관객에게 어떠한 따뜻한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 영화를 내놓았으니까! 지독하게 솔직한 것이 죄라면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