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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누구나 '내 인생의 영화'라 할만 한 영화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기준이란 게 고무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 목록이 조금 긴 편이다.
그래도 상위에 자리를 잡은 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긴 하다. 그 중 한 편이 영화 <접속>이다. <접속>은 1997년에 개봉했지만,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오른 것은 몇년 되지 않았다.
<접속>을 세번째 보았다. 이번엔 사운드트랙이 귀에 팍팍 꽂혔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잘 몰라서, 'Pale Blue Eyes'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엔딩에 나오는 'A Lover's Concerto'를 훨씬 더 좋아했더랬다.
97년 당시 PC통신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었다. 10년 하고도 2년이 더 훌쩍 지났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애틋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질 정도다. 요즘엔 인터넷 채팅이 원조교제나 불륜 같은 부적절한(!) 소통의 도구로 전락했지만, 채팅 초창기만 해도 분위기 좋았다.
복학 후 나도 채팅을 하다가 강원도에 산다는 한 처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했던 경험이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도 주고받고, 고민도 들어주고, 응원도 해주고 그랬다.
<접속>의 엔딩에서 수현(전도연)은 "당신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일지 다 알 것 같았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비슷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이메일 몇 차례 주고 받은 게 전부이지만, 왠지 그 사람을 잘 알 것 같다는 느낌. 물론 face to face 해버리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이제 일곱번 남았다. <접속>은 감상 10회를 목표로 할만 한 영화다.

수현 :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이젠 볼 수도 없게 됐어요.
동현 : 잘 됐네요. 볼 때마다 마음만 아팠을테니까.
수현 : 이젠 친구로도 만날 수 없게 됐잖아요.
동현 : 친구로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사랑받길 원한 거 아닌가요?
수현 : 바라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동현 :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당신은 친구로부터 애인을 뺏을 용기도 없어요. 깨끗이 잊어요.
수현 : 너무 심하게 얘기하는군요.
동현 : 쓸데없는 감정 때문에 진짜 사랑을 놓칠 수도 있어요.
수현 :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은 새로운 사람 만났어요? 왜 헤어진 여자 못 잊는거죠?
동현 : 지금 내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요.
수현 : 피하지 말아요. 냉정한 척 하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어요.
동현 : 이건 당신을 위한 충고예요. 그 사람에게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어요.
수현 : 정말 충고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동현 : 이제 그런 사람 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