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63

<원스>- 눈보다는 귀가 즐거운 영화

영화 는 수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영화이고, 다시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난 벌써 두번 봤다. 특별한 영화적 기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시나리오가 신선한 것도 아니고, 배우의 연기가 탁월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물량공세는커녕 저예산 인디영화로 분류되는 가 조용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그건 바로 음악 때문이라고. 맞다. 음악 참 좋다. 남녀 주인공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영화지만, 영화를 보는 데 그들의 이름을 알 필요는 전혀 없다. '그'와 '그녀' 사이의 애틋한 호감을 느끼고, 음악에 귀를 맡기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과 우정 사이를..

movie 2007.12.22

<화려한 휴가>- 화려한 흥행, 초라한 성찰

영화 를 봤다. 너나 할 것이 모두가 봐야 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세태가 불편해서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용봉대동풀이 기간에 학교에서 무료상영하는 행사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공짜는 좋은 거다! 대부분.) 미디어와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특별한 기대 같은 건 없었다. 줄거리가 전혀 모르는 내용인 것도 아니고. 영화를 감상한다기보다는 그저 어떤 사회적 현상(?)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더 컸다. 게다가 공짜인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분노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걱정 반 기대 반 심정도 있었다. 왜냐하면 많은 대중들이 그러한 정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이야기가 갖고 있는..

movie 2007.09.26

두번째 사랑 :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

소피, 파란 눈과 금발을 가진 여자. 남편은 성공한 한인 2세 남성.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 그러나 남편의 신체적 문제로 그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지하, 뉴욕에 불법체류 중인 한국 남성. 연인이 한국에 있다. 하루 빨리 돈을 벌어서 연인을 미국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가 돈 벌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정자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그마저 거부당한다. 불법체류자는 신분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 임신을 위해 정자가 필요한 소피. 정자를 팔아서라도 돈을 모아야 하는 지하. 거래는 그렇게 시작됐다. 삭막한 섹스는 수단에 불과했고, 거래의 목표는 소피의 임신이다. 소피의 임신을 위한 섹스는 계속 된다. 어느날 우연히 소피의 남편을 보게 된 지하는 소피의 속사정을..

movie 2007.08.20

<리틀 러너>- 착하디 착한 영화

영화 의 원제는 이다. 랄프는 주인공의 이름. 원제와 비교해보면 '리틀 러너'라는 국내 개봉용 제목은 참 운치 없다. 이 영화는 착하디 착한 영화다. 흠 잡기가 미안할 정도의 수준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소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 와 닮았다. 조금 무거운 감이 있었던 와는 달리 는 유쾌한 편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유머와 귀여운 말썽꾸러기 랄프의 캐릭터 덕분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특유의 낙천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랄프. 이 영화는 인물을 측은하게 만들지 않고, 어줍잖은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류의 영화보다 가 주는 감동이 훨씬 더 깊고 강하다. (나는 을 매우 지루하게 봤다.) 착한 영화들은 대개 매우 전형적이기 때문에 ..

movie 2007.03.16

가족 너머를 상상해

혈연 중심의 가족제도는 불합리하다. 가족의 맹목성은 폭력과 다를 것이 없다. 가족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것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상처받기도 하고 이해불가를 선언하기도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일이 많다. 이러한 맹목성은 사회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근원을 갖고 있다. 혈연은 선택이 아닌 운명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이미 불합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족의 맹목성과 당위는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한국의 TV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가족주의적 가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가족 이야기가 ..

movie 2007.02.19

티켓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다. 에르마노 올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감독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은 이들 거장 3인방의 옴니버스 영화다. 잘 모르지만, 켄 로치가 함께 작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거장'이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대부분 이야기는 기차 안에서 이뤄진다. # 에피소드 1 이타심 또는 선행에 관한 이야기다. 1등석에 자리잡은 노학자는 탁자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고 편지를 쓴다. 업무차 방문한 어느 연구소(혹은 기업?) 측에서 일하는 금발 미녀에게. 그녀는 노학자의 기차 티켓을 예약해주고, 직접 배웅까지 나온다. 노학자는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1등석 칸 맨 앞 테이블에 앉아서 여인에 대한 공상에 빠져 있는 노학자. 그의 눈 앞에는 1등석..

movie 2007.02.04

멜로 영화를 혼자 보고

영화 를 보고 왔다. 혼자. 아마도 멜로 영화를 혼자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보고싶을까 했다. 오늘은 영화평이고 뭐고, 그냥 그렇다. 1995년 여름 대한민국은 애먼 사람들을 생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백화점이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살아도 산 목숨이었을까! 그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세월이 지나자 대한민국은 그 엄청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회가 이래서는 안된다.

movie 2006.11.10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논쟁에 주목하게 하는 힘

을 보고 혹자는 '형제의 비극'을 본다. 그래서 한국 영화 가 떠올랐다고 한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은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형제'와는 무관하다. '형제'는 갈등 고조를 위한 영화적 요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형과 동생에 대한 비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영국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대한 감독의 역사적 성찰을 담고 있는 무거운 영화이다. 이 영화에 담긴 감독 켄 로치의 성찰은 단순히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대한 거대하고 영웅적인 서사시를 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켄 로치는 아일랜드 독립투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입장의 차이들에 주목한다. '형제의 비극'은 바로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을 인정한 '런던협약'에 대한 입장의 차이들...

movie 2006.11.06

<라디오 스타>- 진부한! 그러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의 스토리는 진부하다. 한 때 날렸던 스타가 강원도 소도시의 라디오 방송 디제이를 맡고, 우여곡절 끝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라디오 방송은 인기를 얻는다. 여기에 잠깐의 찡한 에피소드도 곁들여지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따스한 기분을 안겨주면서 끝난다. 스토리 얼개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결코 참신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한 때는 날렸지만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88년도 가수왕' 최곤은 한 때의 화려함을 잊지 못해 현재의 곤궁함을 전혀 모르는(아니면 외면하는) 스타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좋게 밴드나 하고 있던' 최곤을 발견해 가수왕까지 만든 매니저 박민수는 끝까지 최곤의 손발 노릇을 마다 하지 않는 착하고 희생적이며, 순박하기까지 한 '형'(매니저라기보다는!)의 전형적인 모..

movie 2006.10.26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컬트스러운

그럴듯 한 대사도 없고, 경악할 만한 영상도 없으며, 그렇다고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신 것도 아니며, 요란한 볼거리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의미심장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폼 나게 제출하지도 않는 영화이지만, 최소한 낄낄댈 수는 있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라는 이름의 한 밴드가 핀란드 툰드라 지방의 시골 헛간에서 오디션을 본다. 별 볼 일 없는 그들의 연주. 음반제작자는 '이런 쓰레기 음악은 미국에서나 통할 것'이라며 미국행을 권유한다. 미국에 도착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는 또 오디션에 응하지만, 역시 퇴짜를 당하고 멕시코의 결혼식장 연주를 의뢰받는다.이 영화는 멕시코까지 이르는 그들의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매니저는 술집에서 연주를 하고 받..

movie 200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