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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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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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다.

에르마노 올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감독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티켓>은 이들 거장 3인방의 옴니버스 영화다.

잘 모르지만, 켄 로치가 함께 작업했다는 이유만으로 '거장'이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대부분 이야기는 기차 안에서 이뤄진다.


# 에피소드 1

이타심 또는 선행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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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석에 자리잡은 노학자는 탁자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고 편지를 쓴다. 업무차 방문한 어느 연구소(혹은 기업?) 측에서 일하는 금발 미녀에게.
그녀는 노학자의 기차 티켓을 예약해주고, 직접 배웅까지 나온다. 노학자는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1등석 칸 맨 앞 테이블에 앉아서 여인에 대한 공상에 빠져 있는 노학자.
그의 눈 앞에는 1등석 칸과 그 밖을 경계 짓는 자동유리문이 있다. 유리문 밖 통로에는 곤궁해 보이는 한 외국인 가족이 쪼그려 앉아 있다.
금발 여인에 대한 애틋한 공상에 빠져 있는 노학자, 하지만 순간순간 가난한 외국인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애틋한 공상과 심리적 불편함을 유발하는 현실.
공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와중에 우는 아이에게 먹이려던 우윳병을 한 군인(용병이다!)이 툭 쳐서 바닥에 엎질러진다.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군인의 당당함이란!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1등석에 탄 사람들은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관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보여지는 표정과 눈빛은 그들이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도덕에 대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 때 노학자는 웨이터를 불러서 따뜻한 우유 한잔을 주문한다. 노학자는 우유를 들고 1등석과 그 밖을 경계 짓는 유리문을 열고 나간다.
자신의 작은 배려나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선뜻 그 배려와 행동의 주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1등석에 탄 사람들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배려와 도움을 주는 데에도 이제는 꽤 깊은 신념과 큰 결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 에피소드 2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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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트집이고, 자기중심적인 노부인과 그녀를 돕는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청년이 기차에 탄다. 그녀의 티켓은 2등석이다. 청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부인은 1등석 자리에 앉는다. 잠시 청년이 화장실에 간 사이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와서 노부인 앞에 앉는다.
그런데 노부인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가 자신의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황당한 그는 노부인에게 자기 전화기이니 통화를 끊으라고 말한다. 노부인은 자기 전화기라고 맞받아친다. 한창 실랑이 끝에 검표원을 부른다.
검표원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런데 바로 뒷자리에서 벨소리가 울리는 거다. 머쓱해진 그 남자는 원래 자기 자리였던 뒷 자리로 옮긴다.
나는 처음에 신경질적이고 고집스런 노부인이 남의 전화를 가져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의 일부분만 보고 함부로 사람을 재단한 일이 아니다.
잠시 후 1등석 자리를 예약한 남성 2명이 자신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티켓을 확인하자고 한다. 막무가내인 노부인은 자기 자리라고 우기기 시작. 결국 또 검표원의 등장.
노부인은 자신의 몸이 불편해서 2등석으로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검표원은 1등석 자리 중에 노부인의 목적지까지 예약돼 있지 않은 자리가 있다며 옮겨주겠다고 말한다. 참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런 상황 내내 노부인은 옆에서 자신을 보조하는 청년에게 신경질적이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는 듯 청년을 몰아세운다. 결국 청년은 노부인을 떠나서 사라져버린다.
노부인은 청년을 찾아나서지만, 결국 혼자서 모든 짐을 끌고 기차에서 내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 때 처음에 휴대전화 건으로 다퉜던 남자가 등장. 노부인은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는 선뜻 짐을 들어서 내려준다.
불편한 관계에 대처하는 방법들.
도망, 회피, 무시...
하지만 보편적인, 최소한의 도덕만은 잊지 않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니다.
비록 다투긴 했지만, 노부인의 짐을 들어주는 남자처럼.


# 에피소드 3

스코틀랜드 출신의 시끄러운 세 청년들이 기차에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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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열혈 축구팬이다. 이 친구들의 가방에는 샌드위치가 많다. 그들은 대형마트의 점원들인데, 팔고 남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어린 소년에게 샌드위치를 건넨다. 배가 고팠던 소년은 샌드위치를 들고 가족이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 한창 수다를 떨고 세 친구들도 자리로 돌아갔는데, 멀리서 보니 소년에게 준 샌드위치 하나를 가족들이 조금씩 나눠 먹고 있다.
동정심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 한명이 일어나서 그 가족에게 샌드위치를 더 갖다준다.
검표원이 티켓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런데 한명의 티켓이 없다. 아까 그 소년. 소년에게 지갑을 꺼내서 축구경기 티켓을 보여줬다.
다른 친구는 그 소년이 훔쳐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비상금을 다 털어도 티켓값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세 친구는 소년의 가족에게 가서 티켓을 보자고 한다. 맞다. 소년이 훔쳤다.
화가 난 세 친구들이 신고하겠다고 하자, 소년의 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로마에서 돈을 벌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손자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마음이 측은해진 세 친구는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자신의 티켓이 없으면 역에서 경찰에게 끌려가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축구경기도 못 보고, 직장에서 해고될 수도 있다. 다른 친구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며, 티켓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애초에 티켓을 도둑맞고 그 소년을 의심하지 않았던 친구가 아니라, 가장 강경하게 나섰던 다른 친구가 자신의 티켓을 그 가족에게 주고, 자신은 경찰에 끌려가기로 한 것.
역에서 내려 검표원과 함께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 가족은 아버지를 만나서 껴안고 울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 그렇다면 결말은?
켄 로치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위해 재치를 부린다. 세 친구는 도망을 친다. 경찰이 쫓아가지만, 의외의 장벽에 가로막힌다. 그 장벽은 이탈리아 축구팬들. 도망치는 스코틀랜드 축구팬들을 위해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경찰을 둘러싸버린 것이다. 세 친구는 축구팀 이름을 연호하며 기차역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정말 미소짓게 만드는 결말이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꼭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는 낙관.
가난한 외국인 가족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스코틀랜드의 시끄러운 축구팬은 축구경기를 볼 수 있게 되고.


이 세편의 에피소드는 '타인을 배려하자'는 아주 중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몸을 움직이기는 어려운, 그래서 중대한 메시지다.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대면하는 인간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행동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