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논쟁에 주목하게 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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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논쟁에 주목하게 하는 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혹자는 '형제의 비극'을 본다. 그래서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떠올랐다고 한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형제'와는 무관하다. '형제'는 갈등 고조를 위한 영화적 요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형과 동생에 대한 비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영국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대한 감독의 역사적 성찰을 담고 있는 무거운 영화이다.
이 영화에 담긴 감독 켄 로치의 성찰은 단순히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대한 거대하고 영웅적인 서사시를 그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켄 로치는 아일랜드 독립투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입장의 차이들에 주목한다. '형제의 비극'은 바로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을 인정한 '런던협약'에 대한 입장의 차이들. 불완전하지만 협약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투쟁을 멈추지 않고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이룰 것인가. 공화국 법정은 가난한 여성에게 고리대부를 일삼는 자본가를 벌하지만, IRA의 민족주의자는 '그가 화 나면 누가 총을 사주겠느냐'며 공화국 법정을 거역한다.
켄 로치는 민족과 계급의 문제를 성찰하지만, 계급 문제에 편향(편향은 나쁜 게 아니다!)한다.
좌파 사회주의자인 주인공(동생)과 나이 든 철도 노동자가 감옥에서 나눈 대화에 나오는 인용문은 켄 로치의 그러한 입장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러분들이 내일 당장 영국군을 몰아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 깃발을 휘날리게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땅과 나라를 계속 지배하는 것은 영국과 자본가와 영리기업들이 될 것입니다."


영화의 진정한 볼거리는 전투 장면이 아니라, IRA 조직원들의 내부 논쟁이다. 협약 승인을 주장하는 우파 민족주의자와 협약을 거부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좌파 사회주의자들의 입장 차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상당하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는 수상 소감에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탄압하는 방식은 영국이 아일랜드에 했던 것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역사적 성찰은 과거의 아일랜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순까지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