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좀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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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 좀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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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머니가 건강진단을 받았다.
여윳돈이 있어서 '호사'를 누린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무료건강검진을 받은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가 '무료'로 제공하는 것들의 수준이 그렇듯이, 생색내는 수준의 검진만을 해준다. 보험료 월 납부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암 검사도 해준다고 한다.

검진 결과 위에 종양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전대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으란다.
그러니까 국가 수준의 의료체제가 인민한테 해주는 서비스가 이 정도다. 결국 확실한 것은 제 돈 내고 확인해봐야 안다.
정밀진단 예약을 하고, 2주일 쯤 기다려야 한다. 한심한 한국 의료체제의 수준이란!

예약된 날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전대병원에 가서 MRI촬영까지 하고 돌아오셨다.
그 날 저녁,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술만 하면 이상 없는 거니까 걱정 말아라."
그 옆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뭔 촬영이네, 검사네 하믄서 돈이 많이 들어가붕게 그게 걱정이제. 수술하믄 또 돈이 얼마나 깨지겄소."
아버지도 맞장구 친다.
"글제잉. 병원 가믄 숫제 돈이여. 긍게 너도 건강 지켜야 한당게. 아프면 다 돈이여."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몸 아프면 돈이 있어야 한다.
몸 나을 걱정보다 먼저 돈 걱정을 해야 한다.

세계 최초로 무슨 의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선진 의료체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가 갖고 있지 못한 독보적인 의학기술을 확보했다고 해서 인민의 건강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렵지 않게 나을 수 있는 가난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체제라면, 설사 사람을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첨단의술을 가졌더라도 후진 나라다.

이런 점에서 쿠바의 국가주도 의료체제는 무척 선진적이다. 세계에 내세울 만한 첨단의술을 자랑하는 나라는 아니더라도, 인민 누구나 아프면 자유롭게 병원을 찾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쿠바의 의료체제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선진적이다. 1963년 이래 현재까지 쿠바 의사와 의료기술자 10만여명이 97개 국에 파견되었다. 몇 년전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쿠바 의사들이 파견돼 활약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쿠바는 의사 1,600여명을 파견하려고 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이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시의 센스는 이토록 후졌다!)
베네주엘라에서는 쿠바 의사 1만4천여명이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베네주엘라와 쿠바는 '기적의 작전'이라는 프로젝트를 펼쳐 무료로 베네주엘라 인민 8만여명의 시력을 되찾아주었다. 베네주엘라가 재정을 책임지고, 쿠바는 치료를 맡은 것이다.
정작 인민에게 필요한 것은 아플 때 걱정없이 치료받는 것이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첨단의학은 그 다음이다.

참고로 쿠바의 GDP는 한국의 1/6이고, 1인당 보건의료분야 정부지출비는 한국의 절반 남짓하다고 한다.
결국 꼭 나라에 돈이 없어서 한국에서 무상의료가 안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 지난해 3월에 쓴 글인데, 요즘 의료보험이 이슈가 되고 있어서 다음 블로거뉴스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