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유발자들>-폭력은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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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폭력은 정치적이다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영화다.
나에겐 제목부터 불편했다.
'구타유발'이라는 말은 오로지 가해자의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때릴만 하니까 때린다'라는 식의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의 폭력은 피해자의 책임이라는 어이없는 논리.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맞을만한 이유를 제공한 '구타유발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구타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이쯤되면 관객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가 없다.
상영시간 내내 불편함에 몸을 뒤척이며 영화의 결말을 기다릴 수 밖에.

영화는 폭력의 원시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건은 인적 없는 산골의 냇가에서 벌어진다.
'구타유발자들'은 평평한 돌덩이 위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시골 양아치들의 보스 봉연(이문식)은 새로 벤츠 승용차를 뽑은 성악과 교수에게 익지도 않은 삼겹살과 통마늘을 쌈 싸서 건네준다. 아주 친절하고 착한 미소와 함께.
구타당하지 않으려면 먹을 수밖에.

강자가 갖고 있는 폭력의 위세 앞에 약자는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폭력은 우연히 발생하기보다는 권력의 역학 관계에 따라 발생한다. 약자의 우발적인 폭력조차도 강자의 더 센 폭력 앞에서는 쉽사리 진압된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라는 옛말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맞은 놈은 계속 맞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약한 놈을 찾아 원한과 분노를 풀려고 한다.
때린 놈은 여전히 강자로 군림한다.
이 영화에서도 결국 가장 악질이었던 '야만인'(한석규)은 경찰이 되었다. '야만인'에게 맞고 다녔던 '봉연'은 '야만인'의 동생을 왕따시키고 구타하며 괴롭힌다. 그래봤자 '봉연'은 경찰이 된 '야만인'에게 또다시 구타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이러한 폭력의 정치적 속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가 불편했던 진짜 이유는 폭력의 속성을 비판하려 했던 영화의 의도가 오히려 가해자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폭력의 정치적 속성을 폭로하려다가 그 속성에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 꼴.
피해자를 원인제공자로 둔갑시키는 가해자의 관점을 폭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러한 관점이 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것조차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