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길 / 정희성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초등학교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무슨 신상조사서같은 것을 나눠주고 집에 가서 써오라고 했다.
그 종이에는 장래희망을 적는 칸이 있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뭘 적을까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다.
그 때 어머니가 그랬다.
"엄마는 공무원 됐으면 좋겠다"
옆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무슨 공무원인가!"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지는 진지했다.
"공무원이 월매나 좋은디 그라요. 월급 제때 나오지, 보너스 나오지, 안정적이지..."
어머니는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날마다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하는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괜히 울적했다.
그래도 나는 장래희망 칸에 '과학자'라고 적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자식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는 좀 당신들 걱정만 해도 좋으련만.
나는 나의 방식대로 내 삶의 길을 걷고 싶다.
물론 세상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맘 편하게 살게 두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불만스럽지만, 나는 종종 얼굴을 돌린다. 그래서 가끔 뒷걸음질도 치고, 아쉽지만 나의 길을 양보하기도 한다. 자식을 걱정하는 늙고 힘 없는 부모의 영향력은 이 정도다.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삶이 항상 비단결같지는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