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恒産을 찾아서

김훈은 시사저널 기자의 결혼식 주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적 토대를 구축하라."

대단한 주례사다. '백년해로 하라'는 썰렁한 주례사에 비하면, 이 얼마나 구체적인 조언이고 지령(?)인가!
확언컨대, '물적 토대'란 곧 밥벌이를 뜻할 것이다. 좀더 풀어보면 생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객관적, 물리적 조건들이다.

맑스에 따르면, 토대는 상부구조를 규정하고 상부구조는 토대에 조응한다. 경제적 기반이 변화하면 상부구조 전체가 변화한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그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대가 상부구조를 절대적으로 결정 짓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상부구조 나름대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토대에 조응하는 것 같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물적 토대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이다.

내 삶의 물적 토대는 어떤가? 아니, 물적 토대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어떤가?
돌이켜보면, 나의 물적 토대 구축에 대해서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인생의 장기 계획을 세워 본 적이 없다.
물적 토대에 대한 성찰과 준비도 없이 그저 상부구조의 관념과 명분만을 좇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물적 토대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생활의 유지 때문만은 아니다.
항심(恒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물적 토대는 중요한 것이다.

공자의 말,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물론 요즘 세상을 보면, 항산이 꼭 항심을 담보하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물적 토대는 꼭 직업의 형태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나의 자유를 지탱해줄 물적 토대는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결국 이런 질문이다.
난 뭘 해 먹고 살면 행복할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