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도 난다>-아이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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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도 난다>-아이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이든, 책이든, 영화든 나는 교훈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교훈이 갖고 있는 계몽적인 자기 권위, 그리고 어떠한 가치에 대한 교화와 주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교훈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가 눈 감고 귀 막고 있을 때. 그 사실을 깨우치려면, 사실에 대하여 우리의 눈과 귀를 열려면 교훈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나에게 교훈적인 영화다. 그것도 점잖게 타이르거나 차분히 가르치는 교훈이 아니라, 매섭게 내려치는 회초리다. 바만 고바디 감독의 또다른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도 그러했다. 그의 영화들은 전쟁(어른들의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런 생활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영화가 회초리가 되어 나의 각성을 촉구하는 원천적인 힘은 바로 날 것 그대로의 영상이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는 말들도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술을 먹이고 넘어야 하는 국경의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밀수로 연명해야 하는 소년 가장의 삶을 지독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거북이도 난다>에서는 땅에 묻혀 있는 지뢰(역시 어른들이 묻은 지뢰!)를 다시 파내 시장에 갖다 파는 아이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다리 한 쪽이 없는 아이, 양 팔이 모두 날아가버린 아이... 지뢰가 폭발해 아이의 몸이 찢겨지는 참혹한 영상은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난민촌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참혹하고 참담하다.
이 영화에서 어른들은 무기력한 존재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도 거의 소품 수준의 역할에 머문다. 고바디 감독은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어른들이 일으키고, 어른들이 수행하는 전쟁에서 아이들은 피해자이다. 복잡한 전쟁의 역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아이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전쟁통의 삶을 이어간다. 희망을 거둬 가버리는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것은 '희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상처의 결론이다.

희망의 존재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금방 익숙해지고 순응한다. <거북이도 난다>는 아이들이 희망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벼락처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