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판에 화 내는 당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이 한겨레를 항의방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20일 '민노당, 노선투쟁 다시 불붙어'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이 칼럼에서 북한을 '군사왕조집단'이라고 표현하자, 최고위원 중 한명이 조승수 당원의 징계를 거론하였다는 사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소위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 등을 서술하고 있다. 모두 '사실'이다. 또 침소봉대하거나 편파적인 내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기사를 문제 삼으면서, 당 선대위 최규엽 공동 선대본부장과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 이해삼 당 최고위원,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등이 한겨레 사옥을 찾아 김종구 편집국장과 김이택 편집부국장을 만났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면담 자리에서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은 "자주파 평등파가 싸우고 있다는 내용은 후보 활동이나 선거와 무관한 내용인데 완전히 대서특필되고 있다. 조중동 보도보다 훨씬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후보의 보도순서를 보면 방송 뉴스도 기호 순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한겨레는 문국현 이인제 후보 다음에 권영길 후보를 보도하고 있다. 권영길 죽이기이다"라고 항의했다.

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대선 뿐만 아니라 후보와도 관련이 있다. 당의 정책과 실현능력, 미래의 전망 등을 인민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선거다. 후보 개인의 인기투표가 아니다. 권영길은 선거를 위해 당을 대변하고 대표하도록 선출된 당원이다. 대선에서 권영길에게 투표할 것을 주장하려면, 당에 대한 인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그것이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당은 막아서는 안된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은 당이 겪고 있는 주요한 현실이기 때문에 대선이나 후보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최근의 갈등은 모두 당의 대선 공약이나 전략과 관련한 것들이 아니던가!

물론 한겨레의 보도 내용은 당에 부정적인 인식을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대선 득표에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좋든 싫든 당의 정파갈등은 이미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로 당 안팎에서 지적받아 온 것이다. 당의 부정적 현실은 당연히 인민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나쁜 뉴스를 보고 좋게 생각할 리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뉴스를 막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당성도 없다. 해야 할 일은 합당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부정적 현실의 해소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자신의 치부에 대한 비판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성숙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없다.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당이 언론의 비판적 기사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고 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겨레의 보도 내용에서 어떠한 '악의'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적 보도'라는 당 선대위의 공식 입장을 가지고 언론사를 항의 방문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면담 자리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까지 있었다니, 매우 유감스럽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 중의 하나가 비판이다. 비판의 의지와 능력이 없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 아니다. 비판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당이 신랄하게 외부를 비판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고, 당 발전에도 이롭지 않다.

한겨레의 보도에 당 차원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차분하게 개선책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 악의적인 편파, 왜곡보도에는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지만, 비판적 기사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수용하고, 긍정적 기사거리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형택 전 대변인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한 기자의 말을 전한다. "다른 정당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민주노동당 기사를 쓰면 대부분의 기사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고, "그래서 기사를 선별해서 쓰는 것이 민주노동당에게 다행인지도 모른다"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 기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외부의 비판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화를 내는 것은 당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뿐이다. 또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정파갈등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그러한 당의 현실을 외부에 감추려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명분만으로 집권의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당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인민들 앞에 보일 수 있는 용기는 진보정당을 더욱 '진보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감춘다고 해서 있는 문제가 없는 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갈등이나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은폐하거나 발언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장담컨대, 당이 감추려고 하는 게 많을수록 '보수'적으로 변질될 것이고, 그만큼 집권의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온통 당의 혁신을 말한다.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것이 혁신의 첫걸음이다. 비판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데, '혁신'이 가능할리 없다. 치부가 있다면 과감하게 드러내고 비판을 접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