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처음처럼

당 선대위의 <한겨레> 항의방문 사태에 이어서 이번엔 '코리아연방공화국' 구호가 들어간 선거포스터 5만부를 폐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선대위 회의에서 메인 슬로건인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밑에 보조 슬로건으로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없는 나라'를 넣기로 했는데, '코리아연방공화국'이 함께 명시돼 인쇄중이었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당직자들이 인쇄를 중단시키고 이미 인쇄된 포스터 5만부를 폐기했다는 것. 이 소동이 벌어진 뒤 김선동 사무총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아 '잠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데 당의 꼴이 이렇다. 당의 대선공약이라기보다는 특정 정파의 정치구호에 가까운 '코리아연방공화국' 때문에 당내 갈등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망신살까지 뻗히고 있다.

당비 꼬박꼬박 내고, 당직 선거때 잊지 않고 인터넷 투표에 참여하는 것 밖에는 당에 기여한 일도 없는 당원이지만, 이제는 감히 당이 부끄럽다는 생각밖에 없다.

비록 운동권 냄새 풀풀 나는 멜로디와 노랫말이지만, 당가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때가 있었다. 어쩌다 언론에서 당 소식이나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활동상을 보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정책적 지식은 없지만, 억지라도 부릴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당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다.

당에 대한 내 마음이 시들해지면서, 어느덧 환멸감까지 들기도 한다.

당 게시판에 글을 쓰려하니까 당원인증을 받아야 했다. 당원정보를 수정하고 인증번호를 받는 식인데, 정보 수정 페이지에 내가 처음 당원 가입할 때 쓴 '소개글'이 있었다.

2000년 사회당에 매료되어 기관지까지 구독하다 2001년 민주노동당 지지로 변절(?)한 정치철새. 당원가입하긴 하나 당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그 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는 그런 자살행위는 못하더라도,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 메는 그런 무모한 짓은 못하더라도 내가 당원임을 소박하게 기뻐하리오.

지금 느끼는 참담함, 답답함과 겹쳐 기분이 묘하다.
나는 '처음처럼' 당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