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세계>- 그는 어쩌다 그리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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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그는 어쩌다 그리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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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면, 무척 시시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슬픈 감동이나 격한 분노 따위가 가능했을지는 몰라도, 어떠한 '논쟁'을 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휴가>는 역사 해석이 개입된 영화적 재구성이 아닌, 단순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는 다큐영화가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울어라', '분노하라'는 불편한 도덕적 강요로 도배질된 신파극에 그쳤다. 또 항쟁의 주체보다는 천인공노할 학살만행의 순수한 피해자를 보여주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강도는 높았지만 간직될 수는 없는 눈물과 분노만 가능했을 뿐이다.(나는 영화를 보고 울지도 분노할 수도 없었지만)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세계>는 <화려한 휴가>와 정반대의 길을 간다.
켄 로치는 착취당하는 자가 아닌 착취하는 자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이 평범한 노동자였고, 연민을 느낄 줄도 알고, 가능한 도움을 제공할 줄도 알던 사람이 착취가 '자유로운 세계'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다.

착취가 '자유로운 세계'에서 노동자는 이미 같은 계급이 아니다.
상층에는 정규직이 있고, 그 아래에 비정규직이 있다. 노동계급의 최하층에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있다.
서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동유럽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듯이, 한국에서는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잔혹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있다.
이러한 저임금 착취는 이른바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그 놈의 '경쟁력'을 위해서 노동은 '유연'해져야 하고, 저임금 착취는 정당화된다. 이렇게 형성된 경쟁력으로 획득된 이익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던가! 결국 '윗대가리들'의 배만 살찌운다.

나는 이 글에서 <자유로운 세계>의 줄거리 대강을 자세하게 소개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줄거리 그 자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이는 아래 글을 읽지마시라.

앤지는 인력파견업체의 유능한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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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상사의 징글맞은 성희롱에 즉각 반항했고, 그 결과는 해고였다. 앤지는 회사에서의 노하우를 살려 친구 로즈와 함께 직접 인력파견 일을 시작한다. 번듯한 사무실도 없이 식당 뒷마당을 빌려서 시작한 인력파견 사업. 처음에는 불법고용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앤지는 불법고용이 생각만큼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백명의 노동자를 불법고용한 조폭 두목에게 사법당국은 달랑 경고장 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경고장'이 아니라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에 사법당국이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마저도 조폭 두목의 욕심이 너무 많았고, 일을 멍청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정부는 불합리한 '고용허가제'를 억지로 시행해서 '불법체류'를 양산한다. 그리고 주기적인 단속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주장을 봉쇄해버린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떼이고,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쥐 죽은 듯이 참아야 한다. '사장님'이 전화 한통으로 신고만 하면 떼인 임금을 받기는커녕 일자리조차 빼앗기고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를 원하는 것은 바로 정부와 자본이다.

아침마다 이란 남자가 일자리를 부탁하지만, 앤지는 냉정하게 쫓아낸다. 그에게는 여권이 없기 때문.
그의 가족들은 허름한 창고에서 12주째 숨어 지내고 있다. 난방조차 되지 않는 창고에서 밤마다 지독한 추위에 떨면서. 두 딸은 괴롭힘을 당해 더 이상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앤지는 자신의 집으로 그들을 데려온다.
먹을 것과 잠자리를 준다. 앤지는 착하고, 연대할 줄도 안다. 아직은 친절한 앤지씨.
이란 남자에게는 위조여권을 만들어 주고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게 그를 돕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불법취업이기 때문에 매주 위조여권 비용을 내야 하고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하지만, 앤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켄 로치는 영화에서 논쟁 장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쟁점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자유로운 세계>에서도 그렇다. 앤지와 그녀의 아버지가 나눈 짧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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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지는 "최소한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믿는다.
그러나 앤지의 아버지는 반박한다.
"교사, 간호사, 의사들이 다들 건너와서 기아임금을 받고 웨이터를 한다. 그게 뭐가 좋냐. 보스나 대장 외에는 아무에게도 이득이 없다.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한다."
앤지는 "소비자가 승자"라고 주장한다. 결국 싼 임금 덕분에 상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주느냐는 물음에, 앤지는 "그들은 고향에서 굶주리던 사람들이에요"라고 답할 뿐이다.
굶주리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밥이라도 먹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최저임금은 주느냐고 다그치자, 앤지는 "기후변화도 모두 내 탓이라고 욕 먹게 생겼네요"

기후변화가 어느 개인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개인이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앤지가 외국인 노동자 착취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착취이고 책임질 일이다.

임금 지급이 자꾸 미뤄지고, 원청으로부터 받은 수표는 부도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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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지에게 하청을 주었던 자들이 돈을 떼어 먹고 사라진 것. 앤지가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 돈 내놓으라'고 항의한다. 앤지는 '나도 손해를 봤다', '여러분에게 줄 돈이 없다'면서 달래본다. 한 외국인 노동자가 나서서 한마디 한다.
"이런 일이 세번째다. 우릴 짐승 취급한다. 열심히 일했고, 물러설 곳도 없다"
처음에 그녀도 '그 사기꾼들'에게 속은 피해자였다.

"브라질, 아프가니스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이라크에서 온 사람들은 벤츠를 탄 사람에게 일자리를 약속받고 거짓말에 속았다."

길을 걸어가던 앤지는 임금을 떼 먹힌 외국인 노동자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날 밤 앤지와 로즈는 돈을 나눠 갖는다. 원청으로부터 받은 돈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을 임금 중 숙박비 등 명목으로 챙긴 돈이다. 앤지와 같은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등쳐먹을 게 수없이 많다'
로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돈을 좀 주는 게 나았다고 말한다.

앤지의 냉소적인 반응.
"돈을 주고 싶으면, 네 몫에서 줘. 여긴 자유로운 세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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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인력파견 일을 시작한 앤지와 로즈.
노동자들이 숙박할 장소를 찾다가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발견한다. 그런데 빈 곳이 하나도 없다. 앤지는 이민국으로 전화해서 고발한다. 불법체류자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숙박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앤지의 변화된 모습에 로즈는 '이제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떠난다.

어느날 밤 복면을 쓴 남자들이 앤지의 집에 들어와서 협박한다.
떼어 먹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고스란히 내놓으라고. 그들은 집을 뒤져서 숨겨진 돈을 갖고 돌아간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앤지는 우크라이나로 날아간다.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사람들을 영국의 하청노동자로 팔아넘기는 일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