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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해빠져 있다가는 괴물에게 잡아 먹힌다

영화 <괴물>을 다시 보았다.
의도적으로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기 위해 귀를 쫑긋거리며.
처음 봤을 때 영상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명대사들이 넘쳐난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블랙코미디와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압권은 영화 초반에 바로 나와버린다.
영화는 미군부대 내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싱크대 위에서 버려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한강 잠수대교 부근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를 발견하고 컵으로 낚아 올린다. 신기해서 만져보려다가 손가락을 물리고 놓쳐버린다.

그 다음 장면은 비오는 한강 다리 위.
양복 입은 남자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투신하려고 한다.
다리 아래 한강을 내려다보는데 뭔가 있다.
그를 말리려고 쫓아온 사람들에게 '밑에 크고 검은 게 있어'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뭐, 임마 뭐!"

양복 입은 남자는 두고 두고 남을 명대사를 남기고 뛰어내린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아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말은 아닐까!
노동자, 농민이 분신을 해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몇몇이 분노하고, 또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일류기업'이 천문학적인 돈으로 공권력을 유린했다는데, 세상은 그대로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핍박하며, 끝없이 우리의 목을 조르는 크고 검은 괴물이 있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물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고 끝까지 둔해빠져 있다가는 결국 괴물이 물 밖으로 뛰쳐나와서 인간을 잡아먹는다.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괴물이 뛰쳐나와 사람들을 해치고 다녀도, 국가라는 공적 시스템은 있지도 않는 바이러스만 찾아 다닌다. 인민들에게 한심한 국가는 괴물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다.

영화에서 괴물을 처치하는 이들은 모두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다.
딸이 괴물에게 납치되었는데도 어리버리 설명하다가 경찰에게조차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하는 강두.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데모 꽤나 했지만 여전히 불평만 늘어놓는 무능력한 백수인 남일.
촉망받는 양궁 선수이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활을 쏘지 못하는 남주.
그리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라는 명대사를 던지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일을 돕는 무명의 노숙자.

괴물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남일의 화염병(만드는 솜씨는 귀신같지만, 던지는 솜씨는 형편없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능력은 없는 386?)과 남주의 화살, 노숙자가 괴물에게 쏟아붓는 기름세례, 그리고 강두의 쇠파이프 결정타가 합한 결과이다.

약자들의 연대. 평범한 사람들의 단결.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 바뀐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