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그 길에서>-도로의 폭력성 고발
movie

<어느날 그 길에서>-도로의 폭력성 고발

01


나는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를 꼭 보고 싶었던 까닭은 도로에 투영돼 있는 인간문명의 폭력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연구팀 3명이 120km 길이의 도로에서 3년여간 확인한 로드킬은 5천건이 훨씬 넘는다. 전국의 고속도로 3000km를 이틀 동안 다니면서 발견한 로드킬은 무려 1천여건. 한국의 도로가 총연장 10만km에 달한다고 하니 확인되지 않은 로드킬의 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황윤 감독은 평소 보고 싶었던 동물 친구들을 도로에서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을 빼앗긴 뒤였다.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어 의식불명에 빠진 삵을 연구팀이 발견하고 구조한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서 회복 후 야생으로 돌려보냈다. 연구팀은 삵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발신장치를 삵의 목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몇 주 후 신호 수신이 끊겼다. 그러고 나서 1주일 후에 연구팀이 처음으로 다친 삵을 발견한 지점에서 신호가 수신되었다. 삵은 3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떻게 찾아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연구팀의 감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 최초의 사고지점 근처에서 삵은 끝내 로드킬에 희생당했다.

임신한 고라니가 로드킬 당하고, 새끼 고라니가 어미의 터진 배 밖으로 튀어 나온 장면에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이 확인한 로드킬 장소를 점으로 찍었더니 선이 되었다. 로드킬은 특정한 장소에서 몇 가지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로드킬은 모든 도로에서 일어나고 있다.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야생동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생태통로나 도로횡단을 막는 펜스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도로가 필요하느냐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다. 2005년 녹색연합은 도로건설에서 중복과잉투자가 일어나 5조4천억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휴가철에 반짝 쓰일 도로를 위해서 엄청난 예산을 들인다. 거의 같은 코스로 나 있는 국도 옆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린다. 명절 때에나 차량 소통이 많아지는 한적한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된다.

한국의 도로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도로 개통을 알리는 뉴스에서는 '30분 단축', 'OO억원 비용 절약 기대' 등을 떠들어댄다. 단축된 30분이 우리의 여유가 되는 걸까? 결코 아니다. 단축된 시간만큼 우리는 새로운 노동에 혹사당하게 될 뿐이다. 세상은 빨라지고 편리해졌다지만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황윤 감독은 야생동물들을 '대지의 거주자'라고 부른다. 그 순간 야생동물들은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가 된다. 연구팀원 중 한명은 '인간이 마치 자기 땅인 것처럼 마음대로 도로를 뚫어버린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날 그 길에서>는 단순히 동물보호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다. 인간문명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도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토건족들의 돈잔치에 들러리가 되는 개발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