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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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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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
2008년 5월 10일 금남로.

운동권이 사라진(물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무대차량과 음향시설 준비 같은 실무만 맡고, 진행과 내용은 시민들이 알아서 하는) 집회문화는 신선하다.
운동권 명망가나 '어른'들의 격렬하지만 지루한 연설이 없다. 대신 학생과 시민들이 발언을 위해 줄을 선다. 세련되고 선동적인 연설은 아니다. 무대로 올라온 학생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발음으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하지만 웃음과 환호는 가득하다. 말과 몸짓에 자유로움이 넘친다. 당당함과 진정성의 힘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개사한 랩이 금남로의 흥을 돋운다.

자유발언에 나선 이들의 태반이 학생들이다. 특히 여학생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해야 했던 시절의 집회문화는 남성적이고 군사적이었다. 경찰의 무력에 맞서다 보니 과격하고 거친 집회는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남성의 역할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집회가 놀이와 축제의 장으로 승화된 요즘,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특히 10대 소녀들이 보여주는 하나의 '흐름'은 무척 새롭다. 10대 소년들이 '흐름'에서 소극적인 이유를 밝힐 재간은 나에게 없다. 다만 우석훈의 분석에 수긍하는 정도. 우석훈은 "소녀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남성 중심주의의 편견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고 했다.
10대 소녀들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소녀시대'다!
즐겁고 유쾌한 일이다.

어른들이여, 소녀의 입을 막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