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윤리

"실제로 자동차라는 물체는 대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감을 상당히 빼앗아버린다. 자동차의 외피를 이루고 있는 얼마간의 고철덩어리와 바퀴라는 매개물은 대상과의 접촉을 가로막고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창 밖의 공간은 살해되고, 그 공간 속에서 살해되는 존재들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무심해진다. 맨발로는 차마 밟고 지나갈 수 없는 생명체의 주검을 바퀴로는 얼마든지, 아무 감각 없이, 뭉개고 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실물감의 둔화나 마비가 곧 윤리적인 감각의 둔화로 이어진다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단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면 프로그래밍된 기계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누구도 그 무의식적인 살해의 속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녹색평론> 2008년 5-6월호 통권 100호 "대지의 거주자들과 '길'의 윤리학" -나희덕-

위의 내용은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에 대한 글 중 일부다.

자동차라는 금속틀에 갇혀 있으면 외부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간적 단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소통의 단절 또는 왜곡, 윤리에 대한 무감각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자동차 운전자들의 윤리적 감각이 얼마나 둔화되는지 실감한다.
달리는 자전거의 옆을 스치듯이 추월하는 운전자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자전거 운전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동차 운전자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자동차 운전자들의 윤리적 감각은 보행자나 자전거 따위에는 전혀 예민하지 않다.

자동차로 인한 온갖 환경오염도 문제이지만, 자동차 문화 속에서 윤리적 감각이 둔화된다는 점이 더 무섭다. 자동차는 언제든지 사람과 동물을 해칠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각심을 갖고 안전과 배려에 힘쓰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하긴 사람을 치더라도 보험처리하면 되니까! 자동차보험에 기대는 도덕적 해이가 폭력적 운전습관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신이 사람을 다치게 하고, 평생 불구로 만들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로부터 끊임없이 무감각해진다.

예전에 읽은 책이 생각난다. 토다 기요시는 <환경학과 평화학>이라는 책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전자 하이테크 기술의 활약'에 주목한다. 무인정찰기나 무인공격기와 같은 첨단 무기들이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다. 군수산업 측에서는 '로봇 전쟁시대의 개막'이라며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토다 기요시는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현실감이 점점 희박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하고 윤택해진다고 해서 문명이 발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질문명의 발달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윤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