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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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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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의 음악을 듣다가, 문득 다시 보고 싶어졌다.
<버스, 정류장>. 처음 본 게 4년전인가. 가물가물하다. 잔잔한 멜로물로만 기억에 남아 있던 영화.
완전한 재발견이다. 다시 보지 않았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았을 만큼.
'재섭'의 나이 서른둘. 지금 나와 같다. 감정이입이 제대로다. 완전 몰입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소름이 끼친다.
'재섭'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왠지 나를 보는 것 같다. 마음이 시큼하다.
이건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상처입은 영혼에 대한 담담한 스토리다.

참고로, '재섭'이 일하는 학원의 학생으로 윤진서가 출연한다. 이것도 재발견.

소름 끼치는(?) 대사를 받아 적었다.

김준호 : "말 좀 해라 짜샤. 오랜만에 나와서 가만히 있냐. 재미없게."
김재섭 : "니네 얘기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뭐"
김준호 : "너 아냐? 내가 너한테 컴플렉스 있었던 거. 넌 항상 무슨 문제가 생겨도 네 생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분야에 빠삭하고. 너 왜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술만 마시면 목소리 높여가지고 뭐 역사가 어떻고 정통성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왜 그런 얘기 잘 했잖아? 엉? 흐흐. 근데 지금 뭐 하고 계신가? 갑자기 득도라도 하셨나?"
친구 : "야, 왜 그래? 김준호. 임마 우리 오늘 혜경이 축하해주러 온거잖아."
혜경 : "그러지 말고, 우리 한잔씩들 하자. 원샷!"
친구들 : "그래.. 원샷!"
김재섭 : "씨발. 내가 지금 너희랑 무슨 얘길 하겠냐! 나도 오랜만에 니들 만나서 농담이나 하려고 왔어. 근데 니들 기껏해야 한다는 말이 주식투자가 어떻고 약사가 신부감으로 어떻고 나랑은 좆나리 먼 말들만 씨부리고 있는데 나보고 무슨 얘길 하란 말이야. 뭐? 컴플렉스? 너 그거 진심이냐? 내가 지금 너희들한테 컴플렉스 느낀다. 됐냐?"
김준호 : "혜경아, 미안하다. 허허. 야 이 좆같은 새끼가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그 나이 되도록 나이값도 못하는 새끼가."

김재섭 : "잘 쓰던데. 근데 내가 매끄러우라고 몇 자 적어놨어. 그냥 참고해봐. 싫음 할 수 없고."
소희 : "선생님은 원래 사람들한테 그렇게 대하세요?"
김재섭 :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본다)
소희 : "'싫음 할 수 없고'? 허. 너무 자신 있는 말이잖아요."
김재섭 : "자신 없는 게 아니고?"
소희 :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상대의 반응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말 아닌가?"
김재섭 : "글쎄.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한 거 같은데."
소희 : "솔직한 거 보단 애정이 없는 거겠죠?"

김재섭 : "난 성인이 된 여자가 싫어. 남자도. 물론 그들이 틀리게 산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냥 어른들이 싫어."

학원 강사 : "학원에서 밥은 시켜주죠. 돈은 우리가 내고."
신입 강사 : "아니 그럼 뭐야. 월급에서 깐단 말이야? 그거 몇푼이나 된다고."
학원 강사 : "오신지 얼마 안돼서 원장을 잘 모르시는구나."
신입 강사 : "아니 이게 말이 돼? 밥도 안 먹여주면서 그렇게 생색을 냈던 거야? 아이씨 나 못해!"
학원 강사 B : "아니 무슨 소리야? 공짜로 밥 먹는 날까지 다 같이 싸워야지."
신입 강사 : "아니요. 나 애들 가르치러 왔지. 어른 가르치러 온 거 아니에요. 나 참. 나 내일 당장 그만 둘거야! 내일 당장!"
신입 강사는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원으로 출근한다.

소희 : "저 임신했어요. 너무 무서워요." (재섭과는 무관함)
김재섭 : "어떻게 할거니?"
소희 : "허. 역시 어른은 다르군요. 어떡해요?"
김재섭 : (잠시 당황한다)"힘들었겠구나."
소희 : "안 물어봐요?"
김재섭 : "뭘?"
소희 : "누구 애냐, 학생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
김재섭 : "너 애잖아. 그럴 수 있어."

소희 : "왜 연락 안했어요? 한번이라도 전화할 수 있었잖아요. 나 많이 기다렸어요. 나 힘들었어. 선생님이라도 나한테 전화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허. 선생님은 연락도 없고. 왠지 기다려야 할 것 같고."
김재섭 :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 많이 기다렸어. 네가 기다렸다면, 누군가가 붙잡아주길 바랬다면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게 옳았을지 모르겠다. 근데 난 네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기다린거고. 어떤 게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가 그냥...."
꺼이꺼이


OST 루시드 폴 / 머물다(재섭 Theme)
언제부턴가 다르게 들려
언제부턴가 다르게만 보여
혼자 끓인 라면처럼
혼자 마시던 쓴 소주처럼
이젠 내 입가에 머무네

그대, 내 귓가에 머무네
지금은 멀리 있다 해도
그렇게 스쳐간 그대 옷깃
지금 내 옷깃에 머무네

그대, 내 눈가에 머무네
책상 위 놓인 피씨 속에
주머니에 든 호출기 속에
지금 내 눈가에 머무네

그대, 내 귓가에 머무네
잠시 그대를 잊고 있어도
멍하니 벽을 바라보면
문득 들리네
여기, 내 귓가에 머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