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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치 판단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한 연구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학사학위논문(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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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종 학사학위논문.hwp



뉴스가치 판단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한 연구
―10.25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정당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전략>

우리 신문은 기성의 보수정당에 대한 집중적 보도에 대한 근거로서 대개 기사가치 판단을 내세운다. 구체적으로 말해 국민들은 진보정당보다는 기성의 보수정당들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현실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진보정당은 기성의 보수정당에 비해 기사가치가 작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문이 국민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기성의 보수정당에 대해 비중있게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진보정당은 이러한 논리에 의해 국민들에게 선을 보일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다. 과연 ‘대다수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관심이 없고 그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기 때문에 기사가치도 없다’는 말은 타당한가? 다시 말해 관심과 영향력의 정도만으로 기사가치를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가?

여당과 야당이 국회에서 입법업무를 제쳐두고 서로 패를 나눠 욕설과 비난을 일삼는 모습과 민주노동당이 대다수 상인서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위해 적극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 가운데 ‘진정한’ 기사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비해 ‘저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기사가치도 떨어진다는 논리는 타당한가?

<중략>

뉴스가치 판단에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다. 특히 우리 신문들의 보수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우리 신문들의 보도양상에서 보수적 이데올로기는 남북문제, 노동문제 등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겉으로는 불편부당, 객관주의, 가치중립 등을 내세우면서 이념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자본주의 기업으로서 절대 다수의 우리 신문들은 나름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뉴스가치를 판단한다. 어느 사건을 뉴스화할 것인가, 그 사건의 어느 부분을 부각시키고, 전체적인 맥락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은 이미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는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뉴스가치 판단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의 성격과 지형에 대한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양적으로 차별이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뉴스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각 후보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공약 등 후보자의 자질과 품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보수정당 후보들의 발언을 인용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두 신문이 진보정당 후보들에 비해 편중하여 인용한 보수정당 후보들의 발언 내용 등을 보면 정치이념이나 정책공약과는 상관없는 의혹폭로나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질 낮은 발언들이 대부분이다. 두 신문이 인용한 보수정당 후보들의 발언들에서 유권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치이념이나 정책공약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으로 보도된 것은 선거에 있어 언론이 자신의 역할과 기능 제대로 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중략>

이미 논의한 것처럼 진보정당은 우리 정치현실에서 기존의 정치권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고 정책과 이념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고 그 성과점도 일정하게 이루어왔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단순히 저명성과 영향성이라는 뉴스가치 요소를 산술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신문의 모습이다. 원내교섭단체냐 아니냐, 여론조사에서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고 있느냐 하는 단순 양적 기준만으로 진보정당의 뉴스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문들이 진보정당의 뉴스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전혀 달리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성을 갖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저명성과 영향성 등 뉴스가치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 진보정당은 우리 신문들로부터 배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문들이 진보정당에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김중배에 따르면 “‘보수언론’이라는 이름붙이기마저 민망한 이 땅의 미디어들은 여전히 철저한 관심의 소외를 고집한다”. 관심의 소외는 무관심과는 구별된다. 보수적일수록, 수구적일수록 진보정당의 움직임에 관심이 없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보수신문’은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을 소외시킨다.

<중략>

그러나 진보정당에 대한 정당한 보도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보수신문을 개혁하는 운동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보수신문들은 자본주의 기업으로서 자신들의 이윤추구 동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신문은 단순기업이 아닌 그 자신이 거대자본으로서 권력을 갖고 있고 다른 자본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관철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본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신문은 진보정당에 대해 우호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의 제도언론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를 위해 언론상품을 수용자에게 파는 기업이다. 따라서 언론기업은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의 이윤을 끊임없이 확보하기 위해 다른 언론기업과 경쟁하는 구조 속에서 가치중립이나 공공성 등의 가치는 사실상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대자본으로서 언론기업이나 다른 대자본의 이익과 대치되거나 별다른 이윤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들은 언론에 의해 선택되지 못하고 배제당한다. 젠더, 섹슈얼러티, 환경, 사상, 노동, 계층, 지역 문제 등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대한 진보적 입장과 관점들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언론에 의해 진실되고 진지하게 보도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보수신문들에 대항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결국 대안언론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길이 유일한 궁극적 해결책이다. 대안언론은 기본적으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대안언론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 동기에 의해 편집권이 유린당한다거나 진보적 의견을 배제하는 것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성유보는 대안언론의 기본 철학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대안언론의 기본철학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통제된 미디어에 의해 왜곡된 말길을 바로잡아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비쳐내고 자유적, 민주적인 의사전달의 연결망을 구축시켜 공정하고 객관적인 담론구조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안언론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안언론의 유형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