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노땡큐

나는 가끔 A선배와 소주 한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나 나나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다. 특히 A선배는 1분 이상 말을 지속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하다.
둘 사이에 화수분처럼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다.
둘이 공감할 만한 소재라고는 한때 음악 매니아였던 A선배에게 라디오헤드가 어떻고, 그린데이가 어떻고, 니르바나가 어떻고 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깊이 있는 음악평론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아는 곡 이름이나 들이대고, 커트코베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정리하면 술자리에서 떠들썩하거나 종종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 따위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뭐 그런 '썰렁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A선배에게 '소주나 한잔 합시다'라고 전화한다.

A선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그런 연락을 취할 때에는 대개 우울하거나 슬플 때이다.
그럴 때 가장 편하게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A선배이다.

나는 A선배와 소주를 마시면서 아주 짤막하게 정리된 문장으로 나의 힘듦을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A선배는 현명한 해결책은커녕 어떠한 위로의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소주병을 들고 나의 잔을 채워줄 뿐이다.
그러고 딱 한 마디.

"술이나 먹어"

딱 한번 "나도 그런 적 있어. 네 마음 알아."라고 했을 뿐이다.

'어쩌다 그리 되었느냐', '왜 그랬냐'는 식의 질문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A선배는 묵묵히 듣고 소주병만 내밀 뿐이다.
A선배나 나나 구구절절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들에 대한 것들, 다시 내 입으로 내뱉게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안 좋았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문제들을 궁금해 하고 질문하기를 참지 못한다.
무엇보다 걱정되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일테다.

그런데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질문과 궁금증이 당사자에게는 또다른 고통이라는 사실을.
아픈 기억을 복기해야 하고, 또다시 복잡한 마음을 설명해야 한다는 고통.
그냥 '힘들겠지'라고 속으로만 생각해줘도 되는데,
묵묵히 응원하고 지켜봐주면 되는데,
당사자가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보다는 '괴로움'에 관심 가져주면 되는데,

연예인 사생활 대하듯 추정하고 상상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거,
나름 관심이고 애정이라 생각하기에 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노땡큐'다.

나도 지금까지 누군가의 아픔에 대하여 '괴로움'보다는 '왜'에 집중해버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인내가 필요할 때 조급한 태도를 들켜버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