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함께 살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영웅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딱 하나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십개의 최루액 폭탄을 퍼붓고 24시간 쉬지 않고 공장 주변을 선회하고 선무방송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짧은 수면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고약한 경찰헬기도 아니고,
도장2공장 옥상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노동자들을 개패듯이 폭행하는 깡패짓도 아니며,
물과 전기를 끊고 의료진의 출입마저 허가하지 않았던 경찰의 반인권적 짓거리도 아니다.
'노사간의 문제다'라며 팔짱만 끼고 있는 '척' 했던 정부의 '수수방관'도 아니고,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사측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한 동료 노동자들에게 새총을 겨누는 마음 아픈 장면도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짧은 구호 하나다.
"함께 살자"

쌍용차 파업은 단순히 개별 사업장의 노사간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오늘은 GM대우차, 현대차 노동자들의 미래다. 금속노조의 미래이고, 민주노총의 미래다.
씨발, 결국 우리의 미래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수수방관한 책임이 있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부가 해결을 위한  어떠한 정책적,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정부는 결코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심을 하고 쌍용차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두들겨 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가장 작고 힘없는 쌍용차 노조를 본보기로 현대차 등 금속노조의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게 경고를 보낸 셈이다.

이 정도쯤은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쌍용차 노조에 대한 연대파업 결의에 현대차 노조는 파업안 부결로 답했다.
이게 무슨 산별노조냐. 그럴려고 그렇게 힘들게 산별노조 만들었나.

이미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세밀하게 분할하는 데 성공했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마음 속으로나마 그들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라도 있었다.
직접 연대까지 할 엄두는 못 내더라도 마음의 지지나 동조는 있었다.
나도 예전에 주변 사람들이 대기업 노조의 파업을 '돈도 많이 받으면서 무슨 파업이냐'고 손가락질할 때면,
'그래도 노조가 있어 투쟁할 수 있는 저들이 있으니까 그러지 못하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작은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제는 노동자끼리 싸우고, 대립한다. 이것도 처음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더니 이제는 정규직끼리도 싸운다. 남의 일터가 어찌되든 내 일터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남의 일터를 박살내서라도 나의 일터 만큼은 살려야 한다는 생존의 절박함이 노동자들을 옥죈다.

'해고는 살인'이다. 잃을 것이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맞는 말일지 모르나, 잃을 것이 별로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다른 곳에서 다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쌍용차 파업투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교훈은 '함께 살자'는 구호에 담겨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함께 살든가 각자 죽든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살자'는 곧 연대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동력이 없다.
힘 있는 노조들은 모조리 자기 사업장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고(이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고),
민주노총은 아무런 힘도 없고 정치력도 없으며,
자신들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절박함과 생존에 관심은커녕 '저 사람이 잘려야 내가 들어갈 자리라도 생긴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답은 있되 답을 써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이 우리의 미래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