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번째 가을
diary

서른 세번째 가을

012

서창의 들녘은 며칠 사이에 누런 빛으로 바뀌고 있다. 수확의 계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여름 마지막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하늘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가을 하늘의 대부분을 좋아한다. 하긴 가을하늘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한국 국가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가을하늘.
첫새벽의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또 좋아한다.
태어나 서른 세번째 가을을 맞이하는 중이다. 저녁무렵 가을하늘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뭔가 문제 있는 삶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았다.

가을하늘의 절정은 저녁 무렵 뉘엿뉘엿 저무는 해다. 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시 한편 있다.
서른 세번째 맞이하는 가을, 저무는 해 앞에서 시를 읊조리고 돌아오다.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 안고 가야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