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후배 A에게

선배라는 존재의 기능 중 하나는 후배에게 뭔가 배울 점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좋은 점을 배워서 그 본을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점을 보고 '나는 안 그래야지'하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자의 기능을 하는 선배가 되고 싶었으나, 살다보니 후자의 기능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잘 되는 모습(그것이 꼭 돈을 잘 번다거나, 번듯한 직장을 구한다거나, 좋은 조건으로 결혼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을 후배에게 보여주는 것은 선배로서 좋은 기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반대도 선배의 좋은 기능이 된다. 전자보다는 좀 떨어지지만.
잘 안되는 모습, 늘상 실패하는 모습, 궁상맞은 모습이 다반사인 선배도 후배에게 좋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도 살고 있으니 용기 내라고 할 수 있잖은가.
되는 일도 거의 없고, 성공보다는 실패로 가득하고, 내세울 것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큰 소리 치고 살고 있지 않느냐고. "인생, 1박2일에 안 끝나!" 허풍도 떨고, 허구헌날 큰 소리만 요란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 버티고 서 있지 않느냐고. 그래도 훌훌 털고 다시 옷깃을 여미며 길을 나서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후배 너는 나약한 소릴랑 집어치우고 다시 걸어라. 지금은 네가 약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조금 잔인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느냐고. 이 따위 말은 하지 않는다. 믿지 마라.
둘러보아라. 어디에 희망이 있냐. 세상은 원래가 절망스러운 거다.
세상은 원래가 씨바스럽다. 남몰래 눈물 찍고, 담배 한모금 빨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마저 씨바스럽게 놔두기는 좀 그렇잖아. 그 정도 힘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럼 무너질 일 절대 없다.

내가 후배 너의 인생을 책임질 능력도 생각도 없지만, 가는 길에 잠시 한사발 술 건넬 정도는 책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