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회찬은 무죄다

12월 4일. 내일은 중요한 날이다.
먼저 임용시험 1차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다. 이건 뭐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고. ㅠㅠ
내일은 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다. 노회찬은 안기부의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전현직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하여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징역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러면 내년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삼성을 비롯해 검은 권력자들이 개입된 사건이기 때문에 사법적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을 할 공산이 커 보이는데.
검찰의 기소도 참으로 코미디다. 노회찬의 말마따나 담을 넘는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더니, 소리 친 사람에게 도둑질 하는 거 봤느냐며 도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처벌하려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냐. 가카의 정권 사람들이 맘에 안 드는 사람 콕콕 찍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라 이번 기회에 마음 먹고 노회찬을 찍어내려고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삼성 이 분들도 워낙 '관리'에 능하신 분들이라 이미 판결에 대해서도 세팅 완료 해두셨을 거고. 부디 노회찬이 살아남아야 할 터인데.
그나저나 홍석현이는 '바쁘다'는 이유로 끝까지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감방에서 좀 쉬셔야 할텐데 걱정이다.

1심 결심공판에서 노회찬의 최후진술 2009.11.02

제가 이 사건과 관련해 말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저는 이 사건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 제가 이해하는 바, 이 사건은 한 밤중에 남의 집 담을 넘어서 나오는 사람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소리를 지른 건데 도둑에게는 ‘도둑질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니 훈방하고, 저에게는 ‘도둑질 한 것을 봤느냐, 담을 넘은 것만을 본 것이 아니냐’며 허위사실 유포라고 기소한 것과 같다.

원심 판결문을 다시 읽어봤다. 저에게는 두 개의 죄목이 있다.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과 관련해 납득하기 어렵다. 원심은 고소인의 진술과 보도자료 내용에 포함된 검사의 실명이 들어간 X파일을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순순히 다른 증거 없이 시인한 사례가 있는지 묻는다.

고소인의 증언만을 증거로 무죄로 단정하기 어렵다. X파일 내용에는 뇌물을 준 계획만 있는데, 제가 줬다고 말함으로써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주장이다. 그런 식의 주장이라면, 한 편으로는 삼성이 뇌물을 줬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보도자료를 통해 계획만 있을 뿐 주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가 스스로 준 게 된다. 보도자료의 대부분의 내용,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졌던 내용은 저의 주장이 아니라 X파일의 실제 내용이다. 보도자료의 실제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하는 내용으로서 거론된 검사들이 뇌물을 받을 계획만 있을 뿐 실제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1심 판결문에서 당시 언론보도는 파일을 근거로 한 것이어서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파일은 불법도청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제가 삼성이 돈 줄 계획만 있었다는 것은 실현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검찰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면서, 제가 허위사실을 이야기한 증거로서 X파일을 인용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자가당착이 아닌가.
 
사실 검찰은 고소인에게 제가 얘기한 내용대로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 물어봤을 뿐이다. 검찰이 진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수사했는지 묻고 싶다. 안기부의 내용을 보면 문제의 97년도에는 1년간 무려 170회의 도청이 있었다. 150회 정도의 녹취 보고서가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97년 9월의 녹취 보고서다. 그 중에서 3월, 9월, 10월의 보고서만이 세상에 나돌았고, 그 중 한 개의 것만을 이상호 기자와 제가 입수해 듣게 된 것이다. 이미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여기 등장하는 이학수와 홍석현은 매번 실행계획을 논의하고 그 다음에 만나서는 이전의 논의사항에 대해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쳤다. 그렇다면 공개된 녹취록 이외도 더 많은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계획대로 실행됐는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녹취록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보관돼 있다. 당시 법무부 차관이 법사위에 출석해 ‘당신이 파일에 들어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당시 검찰 내부에 의해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는 자신들을 방어할 목적으로 그 내용을 알려주면서, 수사를 위한 단서로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 역시 제가 발표한 내용이 제대로 된 내용인지 수사하지도 않았다. 단지 제가 제출한 녹취록과 파일의 내용을 유일한 증거로, 실행됐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허위사실이라 판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원심은 저에 대해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파일의 내용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해 수사를 촉구한 것과 관련해서, 허위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보인다고 판결했다. 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당시 관계자들의 파면을 요구한 것이다. 원심 재판부 스스로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 녹취록을 증거로 허위사실을 알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8월 이전에 7월 말까지 여야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특별법안이 제출됐다. 왜 그랬나? 이 사건에 검찰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기에 검찰에게 스스로 수사를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천정배 법무장관조차 ‘정·경·검·언 구태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여기 이미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정부와 국회, 국민의 판단이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누가 거기 포함됐느냐가 문제였지, 사실일까 아닐까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의 정당한 행위였음을 말씀 드린다.
 
마지막으로 면책특권과 관련해 말씀 드린다. 원심판결에서 장소와 대상의 한정성을 벗어났다고 판결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 판결은 1992년의 판례를 근거로 한다. 지금은 이미 92년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국회에서 하는 모든 회의는 생중계되고 있다. 과거처럼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들에게 알리고 다음날 신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속기록은 바로 공개된다. 그리고 IT시대다. 어떤 식으로든 발언하면 모든 방식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런 환경이 전혀 아니었던 92년 상황을 그대로 적용해 장소와 대상을 국회 내 기자단들에게, 회의시간 30분 이전이라는 규정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회 운영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
 
똑같은 상황에 닥치면 국회의원으로서 어떻게 판단했을 것인가 말씀 드린다. 수차례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8월 19일에야 법사위가 열렸다. 관련된 검사 중 1인의 출석이 예상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파일의 내용을 제시하면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법사위원으로서 국회의원으로 정당한 일이었다. 오히려 몰랐다면 모르되, 알면서도 입을 닫고 있었다면 했다면 역사의 심판대에서 유죄를 선고받아야 한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저는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다. 이번 재판의 판결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를 판결하는 것이다. 부실한 수사를 바로잡고 원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