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 & <시민의 소리> 게재 기사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 게재 기사 (2000년 5월~2001년 9월)
5.18은 관광이 아니다
故 김남주 시비 제막식
5.18 폐막식 '락 2000'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①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②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③
5.18은 바람에 지는 풀잎인가?
'NL-PD연대'가 해결책이 아니다
신문보면 13만원짜리 비데를 준다고?
내 애인은 '페미니스트'!
"우리가 무슨 초식동물인가?"
한국 노동절 소식을 만방에 알린다
광주 민주노총 집회에서 일어난 일
비정규직 파업현장을 가다
노동절에 병원으로 달려간 노동자들

'캐리어폭력사태' 경찰 개입?
전남경찰청 캐리어폭력사태 공식입장 밝혀
경찰에 둘러싸인 5.18 21주년 기념식
광주 금남로는 또다시 해방구!
녹색조끼를 입은 '오월의 빛'
주)캐리어 난동에 짓밟힌 언론자유
블레어와 대처리즘과 '조선'
분수대 위의 '비정규직 철폐!'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떴다! '추미애 지지'사이트!
일본의 양심적인 영화 한 편
'혁명'처럼 어려운 지역신문 개혁
"네티즌의 권리청원..'평화'
언론권력, 마당극에 오른다
<시민의 소리> 게재 기사 (2001년 4월~2001년 7월)
'주둥이'의 족벌언론 꼬집기
누가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가?
캐리어 파업 현장을 가다<1신>
'직장폐쇄' 캐리어 담장 안엔 긴장감이<2신>
캐리어 비정규직 잃어버린 권리찾기<3신>

노동절-오늘은 참 서글픈 날이다
억울한 죽음 씻기 위해 미국은 말하라
언론개혁도 5월정신 계승
전통문화 홍보보다는 교류로...
<시민의 소리>에 실린 '주둥이' 소개 기사 --> 전남대 언론개혁 모임 '주둥이'
<한겨레> 왜냐면<한겨레> 2002대선 특집
'최저 투표율' 언론 책임도 크다후보들은 정책으로 말하라
<좃선일보>에 이름을 올리고야 만 조원종
*링크를 걸려고 했으나 회원 로그인을 해야 검색 기사를 읽을 수 있는 '디지틀조선'의 정책상 부득이 그냥 긁어 옴.

전국 대학생 참여 '통일' 학술회의 (2001.05.09)
대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문제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전남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소장 임채완 교수)는 14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전남대 국제회의동 제1, 3세미나실에서 제1회 전국대학생 통일문제 학술회의를 갖기로 했다.
최영관 전남대교수가 ‘21세기 한반도 통일과 대학’을 주제로 강연한 다음, 주제별 발표와 토론을 할 예정.제1세미나실에서는 김상범(동국대 북한학과3)씨가 ‘대학생 통일의식의 현황과 분석’, 임한필(조선대 통일21학회)씨가 ‘대학생 통일운동의 내용과 방향’을 발표한다.
박성주(전남대 정외과3).홍성래(충남대〃).김영미(전북대 정외과4)씨와 토론한다. 제3세미나실에선 송혜순(전북대 정치학과 석사과정)씨가 ‘통일과정에서 인터넷의 역할’, 김영국(경북대 정외과3)씨가 ‘대학신문의 통일논의분석’을 발표하고, 박승한(조선대 정외과3), 김수진(충남대 정외과2), 조원종(전남대 신방과3)씨와 토론을 벌인다.
(권경안기자 gakwon@chosun.com)


<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 게재 기사> 2000년 5월 ~ 2001년 9월

■5·18은 관광이 아니다
<두 얼굴의 5.18 전야제>
2000년이다. 그래서 5.18은 20주년을 맞이했다. 다시 그래서 5.18 전야제 무대는 '천년의 빛 5.18'이라는 글자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무대 위의 사회자는 인권, 평화, 통일을 외쳤다. 그리고 80년 당시의 차량시위가 재연되었다. 자원봉사 고등학생들을 태운 버스 한대를 선두로 택시대열, 꽃상여, 대형 태극기, 만장행렬, 횃불대열이 뒤를 이었다.
5.18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듯 횃불대열에는 동아시아 인권대회를 위해 광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참가하였다. 무대 앞에 세워진 계엄군의 탱크와 꽃상여가 서로 대치하기 시작했고 꽃상여의 항쟁에 계엄군은 물러갔다. 주위의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를 부르며 당시의 상황에 빠져드는 듯했다.
상황재연이 끝나고 무대위에서는 판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시민들은 무대위의 축제에 빠져들었다. 축제는 가수 안치환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안치환의 노래에 시민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앵콜을 외쳤고 안치환은 이에 노래로 대답했다. 안치환이 노래를 끝내고 무대뒤로 사라지자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시민들의 등을 향해 마지막 멘트인 '광주여 평화와 통일의 이름으로 영원하라!'를 외쳤다. 사물놀이패의 풍물소리가 금남로에 퍼지면서 전야제는 끝이 났다.
도청앞에서 '천년의 빛'이 쏘아지고 있을 때 반대쪽 금남로에도 또 다른 무대가 있었다. 두 무대는 거리를 둔 채 정확히 마주보고 있었다. 5월 민중항쟁 정신계승 대동한마당이 그것이다. 5.18 전야제라는 점에서는 도청앞 무대와 똑같았다. 그런데 그 무대에는 '천년의 빛'대신에 '양민학살 광주학살 미국은 가라!!'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도청 앞 무대와 분위기가 다르다. 사이사이에 '미국은 물러가라', '민중생존권 쟁취하자'라는 구호가 합창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유명한 가수는 나오지 않았다. 열광하는 환호도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 농민, 학생의 진지함과 끝나지 않은 항쟁에 대한 다짐만은 가득했다. 5월 민중항쟁 정신계승 대동한마당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보성에서 올라온 농민분을 만났다.
보성군 율어면에서 농민회 활동을 하는 이은만씨이다.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5.18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5.18전야제 행사가 분리되어서 열리는 것에 걱정스러움을 나타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느낌을 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5.18 본연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끝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모든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고 미국개입문제의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5.18전야제가 화해와 인권, 평화라는 어설픈 이름으로 포장된 축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5.18은 관광이 아니라는 말로 갑작스런 인터뷰를 끝냈다.
광주=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편집시각 2000년05월18일16시19분 KST

■故 김남주 시비 제막식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노래' 故김남주 )
민족시인 김남주 기념사업회(공동대표 정철웅)와 (사)광주·전남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김준태)가 공동 주최한 김남주 시비 제막식이 20일 오후 5시 광주 비엔날레 동산(본전시관 옆)에서 열렸다. 제막식에는 미망인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군, (사)민족문화작가회의 이문구 이사장, 박석무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송기숙 교수, 문병란 교수, 시인 김용택씨 등 300여 명의 문인들과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시비는 김남주 시인의 시 '노래'가 새겨져 있는 중앙석과 그 좌우에 대나무를 형상화한 다섯 개의 돌기둥, 뒤편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앞쪽 오른편에는 시인이 무언가를 듣는 듯한 모습의 흉상으로 구성되어있다. 공원법상 시비가 세워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광주 비엔날레 행사에 포함시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시비 제작에는 화가 홍성담씨, 소설가 서해성씨(하니리포터 칼럼니스트), 화가 홍성민씨, 건축가 박동준씨 등이 참가하였다.
소설가 서해성씨는 시비(청송녹죽비) 설명에서 '시비의 주제는 <소리>이며 청송녹죽비의 의미는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나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는 김남주 시인의 모습, 즉 그가 언제나 우리의 소리를 계속 듣고 있음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김남주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투쟁일 정도로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전사였다. 그는 구속된 이후 감옥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화장지나 우유각에 못으로 새긴 시편들을 면회때 박광숙씨가 몰래 가지고 나와 세상에 어렵게 알려지게 됐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의 야사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한데 시비에서는 그런 이미지 보다는 상당히 서정적 이미지가 느껴진다. 작가는 이 시비를 통해 시인의 어떤 사상을 표현하고자 한것일까? 직접 만나서 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홍성담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미술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말은 소설가가 더 났다고 하며 옆에 있다가 끼어든(?) 서해성씨와 인터뷰를 하였다.
문> 이 시비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김남주 시인의 사상은 무엇인가?
홍성담> 이 시비는 김남주 시인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다. 그를 추모하거나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은 아니다. 7, 80년대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인들, 그러니까 우리들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이 시비는 현재진행형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김남주 시인이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소리는 그의 생가 뒤에 있는 대숲의 바람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섯 개의 돌기둥에는 대나무를 양각했다. 7, 80년대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인들의 인생과 삶의 목표, 그들의 모습을 대나무를 빌려서 형상화한 것이다. 대나무는 7, 80년대의 김남주 시인과 동시대인들의 모습이자 얼굴이다.
문> 시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죠.(이때 옆에 서있던 서해성씨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
서해성> 시비에 형상화한 대나무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 뒤편에 있는 것으로 시인이 태어날 때 처음 들었을 소리라고 생각한다. 대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는 7.80년대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시인과 동시대 사람들의 인생과 삶의 여러 가지 목표나 모습이며 바로 우리의 얼굴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시인이 무언가를 듣는 듯한 흉상은 우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옆에 있던 한 분이 "작품을 만든 화가보다 소설가가 작품설명을 더 잘 한다"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이어졌다. 곧이어 서해성씨와의 인터뷰가 계속되었다.
문> 김남주 시인의 대나무 하면 죽창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전투적인 시를 많이 쓰셨는데요.
서해성> 대나무는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배고플 때 베어먹을 수 있는 죽순이고, 둘째는 민중이 들고 일어설 때 쓸 수 있는 무기, 즉 죽창, 셋째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생활도구이다. 현재에서의 대나무의 의미는 방금 말했던 세 가지를 공통으로 뜻한다. 김남주 시인의 시도 단순히 전투적인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투적 서정시나, 연애시 같은 서정시도 있다. 바로 대나무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문> 김남주 시인은 80년 5월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항쟁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5월을 이야기한 시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의 시비는 이곳 비엔날레 동산보다는 망월동 5.18 묘역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서해성> 그렇다. 김남주 시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월의 시인이다. 그는 광주학살에 대해 정면으로 말했다. 에둘러 쓰거나 비유법도 쓰지 않았다. 가장 직설적으로 오월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시비가 망월동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항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도 있다. 항쟁정신의 일상화, 일상 속에서 그 가치를 보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대중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을 택했다.
다음은 주제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시인의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이어가야 할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문> 5.18전야제가 두 곳에서 열렸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해성> 그건 중요하지 않다. 5.18은 그 정체성이 중요하다. 5.18의 정체성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김남주 시비는 그것이 관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18 정신을 예술 형식으로 형상화했고, 리얼리즘의 경직된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20주년을 맞이한 5.18은 그 항쟁정신을 보편화하는 것, 그리고 21세기에는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광주는 '지역'이 아니라 가치이다. 그 가치의 전국화, 세계화를 이루어야 한다. 물론 5.18에 대한 개량적 국면을 극복해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제작자인 화가 홍성담씨의 말처럼 시비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김남주 시인은 청송녹죽 사이로 들려오는 '민중의 소리', '벗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김남주 시인에게 우리는 어떠한 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가.
새천년 5.18공동취재단 <오월에서 통일로>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하니리포터 조지호 기자 pdjoe@orgio.net
하니리포터 모철홍 기자 mochulong@hanimail.com
편집시각 2000년05월22일16시46분 KST 

■5.18 폐막식 '락 2000' 
5.18 20주년 기념 폐막행사인 '락 2000 콘서트'가 27일 전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번 콘서트는 오후 6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천관계로 인하여 1시간여 지난 7시쯤에 시작되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많은 시민들이 행사를 관람하기 위하여 행사장을 찾았으며 대구지역 인디밴드인 '815'의 무대를 시작으로 콘서트는 진행되었다.
이어 인디밴드인 '스틸'의 공연이 이어졌으며 '델리스파이스', '김경호', '시나위', '크라잉 넛'의 무대가 뒤를 따랐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배철수씨는 공연 중반부터 진행을 보았고 관람객들은 각 그룹의 공연이 시작될 때마다 환호를 보냈다. 개인 콘서트 도중 부상으로 인해 이번 공연의 참가가 불투명했던 김경호씨는 부상한 몸으로 열창을 하여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신중현씨의 피날레를 끝으로 장장 5시간에 걸친 공연을 마쳤으며 객석이 따로 준비되지 않은 스탠딩 콘서트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을 지켜 보았다.
한편 일부 시민들은 5.18 행사의 마지막을 '하나의 놀이'로 마무리짓는게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하니리포터 5.18 공동취재단은 락 2000 콘서트를 취재하면서 락 음악과 5.18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 행사를 준비한 5.18 기념재단과 출연진 그리고 시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5.18 기념재단 이사장인 김동원 교수를 만났다.
하니리포터 : 오늘 5.18 기념행사 폐막식의 일환으로 락 콘서트를 기획했는데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김동원 교수 : 20년이 지난 5.18은 이제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20년 동안 5월 정신은 광주의 5월만이 아닌 20세기 후반 한국 민주주의의 총체적 발달사를 조명하는 것으로 발전해왔다. 이제 5.18의 전국화를 위한 접근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 이번 5.18 20주년 기념행사는 정치투쟁이나 사회운동보다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문화 이벤트로 기획했다. 오늘 락 콘서트도 그 일환이다.
하니리포터 : 5.18 20주년 기념행사들이 너무 축제 분위기로 가는 건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요....
김동원 교수 : 축제로 느낄 사람은 그렇게 느낄 것이고 20년 전 그 때를 느끼는 사람은 그럴 것이다. 오늘 락 콘서트는 청소년을 위한 행사다. 이런 문화행사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5.18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다. 우리는 단 한번도 5.18이 축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늘 출연하는 가수들의 노래와 말 가운데는 5월 정신이 나온다. 신중현씨의 노래중에도 '5월'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이것이 문화화다. 지금 투쟁분위기라면 젊은 사람들 안 올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게 만들어야 한다.
하니리포터 : 내년 5.18 기념행사도 올해와 같은 방향으로 나갈 예정입니까?
김동원 교수 : 행사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될지 모르니 그렇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 옆에 앉아 있던 5.18 기념재단 이사인 양강섭씨(80년 5월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총무부장)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강섭 : 5.18은 더 이상 고통받는 5월이 아니다. 그 고통에 묶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풀어줘야 한다. 5.18 행사로서 락 콘서트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5.18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고통받는 5.18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행사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연 중반부터 사회를 본 배철수씨를 만났다.
하니리포터 : 락 음악과 5.18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배철수 : 5.18은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락 음악도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 즉 자유와 저항이라는 정신에서 만난다고 생각한다.
하니리포터 : 5.18 기념행사의 폐막식을 락 콘서트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철수 : 지금의 젊은이들, 특히 10대들은 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라서 5.18에 대해서 생생하게 느끼지 못한다. 이런 젊은이들과 락 음악을 통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니리포터 : 5.18 행사가 너무 축제분위기로 간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한 생각은...
배철수 : 추모식이나 추도분위기만으로는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기념행사 기간에 추모식과 같은 엄숙한 행사도 많이 있었지 않나? 이런 행사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니리포터 : 5.18이 전국화되지 못하고 지역의 문제로만 국한되어 있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배철수 : 5.18은 충분히 전국적인 행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감정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 앞으로 전국민적인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니리포터 : 5.18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시지요.
배철수 : 처음에 언론에서 폭동이라고 말했을 때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서는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지고나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 '광주'에 대한 마음의 짐을 가지게 되었다.
배철수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대기실에서 장난을 치고 있던 크라잉 넛을 만났다. 다음은 크라잉 넛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이상혁(25)씨와의 인터뷰이다.
하니리포터 : 5.18 기념행사 폐막식에 락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데 너무 축제분위기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상혁 : 이 행사에 나오는 밴드들은 축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주류음악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원할 것이다. 우리는 신나게 노는 것이 목적이다. 아마 여기 모인 사람들의 절반은 그냥 놀기 위해 왔을 것이다.
하니리포터 : 요즘 젊은 사람들이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상혁 : 아예 5.18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른다. 특히 중학생들은 가요같은거나 좋아하지 5.18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5.18을 역사교과서식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들이나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하지 않을까.. 너무 진지하게는 말고...
마지막으로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을 만났다. 먼저 송영수씨는(33. 전기기사) 이런 행사가 축제분위기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5.18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연철씨(20. 전남대학생)는 이 행사가 5.18에 대해 신세대들이 다가가는데 좋은 것 같지만 너무 오락적인 분위기로 가는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개 락 음악에는 저항정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5.18 민중항쟁은 군부독재를 비롯한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오늘 이 두 저항정신이 만났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보러 온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가수들의 콘서트장에 단순히 '5.18'이라는 이름을 빌려준 꼴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크라잉 넛의 말처럼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이 놀기 위해서 왔다면 '5.18'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 그냥 '락 콘서트'라는 간판만을 걸어야 한다.
새천년 5.18공동취재단 <오월에서 통일로>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하니리포터 조지호 기자 pdjoe@orgio.net
하니리포터 모철홍 기자 mochulong@hanimail.com
편집시각 2000년05월29일18시19분 KST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①
지난 6월 28일 정부는 일본 대중 문화 3차 개방조치를 발표했다. 소문에 따르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쯤이면 전면개방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민감한 주제인 일본. 기자는 동신대학교(전남 나주시) 일본어학과 유재연 교수를 만나 이번 3차 개방과 일본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신대학교로 가는 길에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모텔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심상치 않았다. 논밭 한가운데 모텔??!! 갑자기 웬 모텔이야기? 두 번째 올릴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면 알게 되니 너무 걱정마시라... 기사가 좀 길어서 세 차례에 나누어 올린다.
첫번째는 3차개방 이후의 영향과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제를 하는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수님이 정말 재미있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야기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니리포터 : 이번 3차 개방내용을 보면 애니메이션(극장용), 음반, 게임, 방송 부문이 최초로 개방되고 대중가요 공연은 전면개방되는 등 점점 전면개방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이번 3차 개방 이후에도 별 영향이 없을까요?
유재연 교수 : 실제적으로 큰 영향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 애니메이션의 실상을 봤을 때 애니메이션의 경우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 '철도원'을 개방했을 때 일본에서는 '쉬리'를 개방했다.
언론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가장 관객을 많이 동원했던 영화를 교차적으로 상영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 하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쉬리'가 훨씬 성공했다. 절대 관객수를 보더라도 쉬리가 동원을 많이 했고 1억2천만대 4천만이라는 인구를 비교해도 그렇다.
그런데 나는 호들갑을 떤 그 뒷면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쉬리'란 영화는 한국어버전의 헐리우드 영화라고 본다. 예를 들어 신무기를 고속도로에서 탈취한다? 한국사회에서 그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론 허구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나치게 헐리우드에서 많이 들여온 것 같다. 축구장을 폭파시킨다거나.. 우리가 많이 봐왔던 것들을 한국배우들만 집어 넣어가지고 적당히 버무려 놓은 영화라고 본다. 흥행에 대해 딴죽을 걸려는 게 아니라 실제 그 알맹이는 철저하게 헐리우드 스타일로 만들었다.
'철도원'은 완전히 일본식이다. 정서자체가 우리한테 안 먹힌다. 나는 '철도원'을 전후 일본경제를 이끌어 온 아버지세대들에 대한 경배, 진혼가로 보았다. 화해의 문제로 풀어갔다. 죽음이란 문제에 대해서 서양적 사고와 다르다. 사자(死者)들이 늘 곁에 있고 자신들과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이 일본인들 의식 속에 들어 있고 전후 일본경제를 이끌어온 아버지를 대표하는 세대들의 이야기, 그야말로 일본적이다.
'쉘 위 댄스'란 영화의 일본 원판 포스터에는 '쉘 위'는 영어로 '댄스'는 일본어 '가따까'로 표기했다. 그 영화에서 '댄스'는 철저하게 일본화한 댄스다. 샐러리맨들의 일탈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하나의 서구문화로 보는 것이지 '서구식 댄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딸과 아내가 아버지를 보러 온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사람을 보고 놀라서 파트너의 드레스를 밟아서 치마가 홀라당 벗겨진다. 아버지가 옷을 밟아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일탈도 여기까지 하고 제어를 하는 것이다. 가정으로, 회사로 돌아와야 한다고 잡아끄는 효과를 보여준다. 아무리 일탈욕구가 있더라도 '당신 여기까지만 해'하고 '쉘 위 댄스'는 보여준다. 나름대로 일본화시키는데 천재적인 영화라고 본다. 일본색이 짙게 배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대중문화란 것은 기성품 감동을 안겨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열린 영화, 열린 문화를 주는 게 아니라 관리된 형식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철도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억지 감동을 불러일으킬려고 무척 노력했다는 게 보인다. 그것이 일본대중문화의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분위기라고 본다.
그래서 3차 개방이 아니라 뭐 별거 다 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고 노래를 듣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긴 안목으로 봤을 때 별 영향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경계해야할 부분이 있다. 위험스런 요소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란다. 일본의 억지감동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2.30십대에 비해서 어렸을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게 되는 아이들은 그런 거부감조차 없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됐을 때 일본화되기 딱 좋은 게 애니메이션이다. 사실은 가족 전체가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초중등학생이 실사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다르다. 아이들한테 직격탄으로 날라 가는 것이다. 맹목적인 일본화의 위험이 있다.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산업들과 전반적으로 연결되어서 우리 시장에 침투하고 있지 않은가. 캐릭터산업 같은 경우... 포켓몬스터는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부수적인 효과가 오히려 주효과가 되어 버렸는데 그런 문제를 봤을 때 애니메이션 문제는 우리가 신중한 판단을 해야하고 정책적인 면에서 배려가 있어야할 것이다.
X-JAPAN같은 것은 너무 막아놓으니까 호기심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DJ DOC 5집의 '포졸이' 같은 노래는 일본에서 도저히 못 만든다. 일본은 언어자체가 좋은 말로 순화되어있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관리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거친 말이 없다. 일본은 상하 위계질서가 너무 엄격하고 위계질서에서 상승기회가 제거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천착해 들어가는 것이 일본인의 특성이다. 자기세계에 칩거해 들어가고 수평적인 관계도 폐쇄적이다. DJ DOC처럼 활기있는 노래는 한국이니까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인디, 얼터뮤직 이런 것들은 표현의 자유만 더 주어진다면 우리가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하니리포터 : 문화란 것은 다른 문화를 편입하고 또 자신의 문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깨지고, 생성되고... 그러면서 성장,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주체는 대중일진대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그 역할을 독점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막는다 해도 안되는 게 있죠...
유재연 교수 : 국민들이 알아서 거르고 할 문제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을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주었으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살벌해졌겠는가. 헐리우드나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제도나 법적 장치를 통해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측면으로 왜 이런 식으로 여론을 호도해가는 것인지 파헤쳐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간통죄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런데 시청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질문 사항이 참 애매하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 시기상조냐, 당장 폐지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식이다. 일본대중문화 개방 논쟁도 그랬다. 시기상조냐, 당장 개방이냐... 여론을 반대논리로 유도하는 것이다.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자꾸 본질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자본과 정부 사이에 복잡한 논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일본대중문화를 전면개방한다고 뭐 다 보여주나? 개방의 파장 때문에 자본과 정부가 개입하여 반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화는 대중들이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권리이다. 나중에 최소한의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왜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통제하는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논리를 파악해야 한다. 무조건 정부가 나서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일본대중문화의 단점을 걸러 줄 수 있는 방안에 접근하려는 대중의 여론이 생겨나야 한다.
[필자주]다음에 올릴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로 이야기되는 문란한 성, 폭력성, 극우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일본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편집시각 2000년07월26일17시20분 KST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②
다음은 기자가 동신대학교(전남 나주시) 일본어학과 유재연 교수와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 중 두번째 올리는 기사이다.
하니리포터 : 일본대중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근거가 문란한 성과 폭력성입니다. 무조건 선악의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대중문화의 모든 게 그렇지는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재연 교수 : 학생들이 일본어학연수를 가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부모님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가 심한데 부모반대로 인해 연수를 못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내가 상담하는데 대개 나오는 말이 일본사회가 얼마나 성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인데 우리 딸 망치면 책임 질거냐 뭐 이런 얘기다. 나는 7년 동안 일본에서 살아봤는데 일본에 가서 성에 빠져 망칠 애라면 진작 한국에서 망쳤다고 말해준다. 오히려 거기가 훨씬 더 안전하고 도덕적이다.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도덕적이고 성에 엄격한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다. '붉은 시편'이라는 영화에서 농민들이 군대의 무력에 저항하기 위해 여자들이 윗옷을 벗고 원무를 춘다. 그 때문에 미성년자관람불가이다. 단지 그 때문에 왜 18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도덕적이고 성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회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런가?
우리 학교 오다보면 논 가운데 모텔이 있다. 아니 논 가운데 모텔이 왜 필요하나? 농사일 하다 피곤하면 가서 주무시라고 만들었나.(기자가 처음에 느닷없이 모텔이야기를 한 까닭이다.) 도처에 그런 것들이 있다. 은밀하게 유통하는 성이, 그런 환경들이 청소년들을 오염시킨다.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나라가 없다. 일본에서는 포르노잡지를 자판기에서도 살 수 있다. 물론 18세 이상이라고 나와있지만 자판기니까 막을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와있다. 그런 드러난 것만 가지고 일본의 성질서가 문란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도덕적으로 경건하고 엄격하고, 영화에 대해 제재하듯이 그런 사회였다면 일본 성문제, 폭력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문제는 우리사회의 문제이다. 일진회문제도 그렇다. 언론에는 우리나라 불량 청소년 뒤에는 일진회 만화가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이런 보도들이 자꾸 그런 현상을 만들었다고 본다. 물론 그런 상상도 가능하다. 그런데 일본의 폭력 청소년들을 다룬 만화들은 엄청나게 많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진회 만화같은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만화의 30%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3배 이상이 일본에는 청소년 폭력이 많아야 한다. 일진회 만화보다 더한 만화가 많으니까 그런 만화 본 학생들은 다 불량청소년이 되어야지. 그 개연성이 설명되어야한다. 그런 폭력만화를 본 학생은 폭력청소년이 된다는 개연성이 설명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자체에 있다. 나는 우리 나라 불량청소년.. 솔직히 불량청소년이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불량하지 않은 사람들이 불량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억압적이고 살벌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그런 쪽으로 내달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지 않은가. 불량청소년들이 일진회같은 만화를 보고 모방행동을 했을 때는 만화 속의 현실과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혼동해버린 것이다. 엄연히 만화 속에 있는 것은 픽션에 불과한데 그걸 자기 현실하고 혼동해서 거기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왜 우리 청소년들은 그 픽션을 현실과 혼동해버리는가. 이것이 우리의 큰 문제이다. 일본학생들은 그 일진회 만화를 보고 폭력청소년이 되지 않았다면 만화 속의 픽션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혼동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청소년들이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한국적 현실문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무턱대고 일본 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하는 것은 한국현실을 은폐하는 것이고 일본대중문화가 지니고 있는 폭력적인 성격을 부각시켜 한국의 현실에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그런 혐의들이 느껴진다.
실제적으로 오히려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근거를 마련해주지만 개방되어버리면 그런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 것들이 뻔하니까. 더 많이 들어오면 오히려 한국 청소년들이 만화 속의 픽션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접해버리면 덜 해진다는 것이다. 개방 반대의 근거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들여다 보는 계기로 삼아야지 자꾸 일본 탓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오히려 헐리우드스타일의 폭력과 섹스가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니리포터 : 일본의 극우주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시히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같은 인사도 극우주의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대중문화 속에 담겨 있는 극우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재연 교수 : 일본에 극우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너무 침소봉대한다고 할까. 헐리우드영화에도 미국사회의 보수논리가 깔려 있다. 그런 것들이 같이 토론 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 이런 식으로 일본은 자기들 논리를 전개하는구나 하고 오히려 일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텍스트라고 본다.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자꾸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만 했지 논리적 대응은 못했다. 그냥 쪽바리라고 싫다고 한다.
우리 과가 체육대회에 나가면 다른 과에서 쪽바리라고 비난하고 그런다. 논리성 자체가 배제된 상태에서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야마모또 함대같은 만화를 보고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침략논리를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고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극우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부를 돌아봐야 한다. 극우파시즘의 문제점들을 우리 내부에서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극우주의가 있다고 배제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 경험의 문제는 착잡한 일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여타의 외국중에 하나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나. 자꾸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패배주의라고 본다. 한국에서 실제 유독 일본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은 상당히 보수극우적이고,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유연한 사고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세번째로 올릴 이야기는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일본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편집시각 2000년07월27일16시31분 KST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③
다음은 기자가 동신대학교(전남 나주시) 일본어학과 유재연 교수와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 중 마지막 세번째로 올리는 기사이다.
하니리포터 : 미국문화에 보이는 국민의 반응과 일본문화에 대한 그것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유독 일본대중문화에 민감한 것은 일제 식민지 지배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겨레21 316호 쾌도난담에서 김규항씨가 말했듯이 그것은 한국 민중과 일본 군국주의자들 사이의 문제이지 일본 민족 전체와 한국 민족 전체의 모순은 아닙니다. 이젠 일본대중문화를 다른 나라의 그것처럼 동등하게 바라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유재연 교수 :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로 통역일을 했다. 신한은행과 조선일보가 역사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한국이 일본에 전파한 문화유산을 둘러본다. 거기에는 쟁쟁한 인사들이 온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한다. CD를 사달라. 무슨 만화를 사달라... 나는 알지도 못하는... '우리 애들이 이런 거 없으면 친구들하고 어울리질 못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날에 그 사람들이 쓴 글이 신문에 나있는데 읽어보면 완전히 일본 때려죽일 태세다. 차라리 일본을 100% 거부한다면 이해라도 한다.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일본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일본욕 많이 한다. 그런데 조용히 나한테 와서 "우리끼리 있으니까 말인데 일본애들 대단해" 한다. 오히려 일제 때 정말 모질게 고생하신 분들이 실제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우리는 당해도 싸.." 해방되고 나서 우리 사회 돌아가는 걸 보고 그런 소리를 한다. 지나친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욕하는 사람들은 일제 시대 때 뭔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본다.
대체적으로 한국사회 내에서 그 사람들 지위를 보면 지주세력이었다. 거부감이 강할수록 과거의 역사가 은폐되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잘 봐야한다. 그러니까 제발 일본을 여타의 다른 외국 중에 하나로 보자. 냉정하게 일본을 볼 필요가 있다.
하니리포터 : 마지막으로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유재연 교수 : 특별히 일본대중문화에만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제발 주체적인 시각으로 봤으면 좋겠다. 포스트모던이고... 그런 말들 많은데 대중문화가 문화자체를 민주화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옳다고 본다.
그런데 비판이론에서는 지나치게 대중문화소비자들을 수동적으로 본다. 대중문화 속에는 자본의 상품화 논리에 무반성적으로 매몰되어간다고 보는... 대중문화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나는 그 양쪽을 적절하게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젊은이들은 개성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면서도 개성없는 것이 개성인 것 같다. 유행에 대해서 거기에 따라가 버리는데 그건 개성이 없는 것이다.
대학 교수들도 요즘 학생들이 소설 같은 것도 안 읽는다고 그러는데, 소설 읽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다. 나는 영화로 수업진행을 많이 하는데 실제 학생들의 반응에 변화가 빠르다. 나는 학생들한테 재미있다, 재미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말라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렇게 보고 싶다는 거, 이렇게 읽고 싶다는 거... 항상 자기 시각으로... 유행도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와는 상관없이 나는 내 멋대로 살겠다는 것에서 생겨야 한다고 본다.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DJ DOC 5집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하위 문화를 가지고 자꾸 제도와 사회 질서에 대항할려고 하지 않은가. 물론 장사속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문화 속에서 자기를 구현해낼 수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기를 세울 수 있다면 대중문화가 지니고 있는 힘은 대단한 것이라고 본다. 자기만의 시각, 결국은 대학생활자체에 있어서 자기생활을 계속해서 사유하고 반추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게 갖추어진다면 우리가 굳이 일본대중문화를 어떻게 봅시다 할 필요없이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제대로 읽어낸다면 일본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일본을 여타의 다른 나라 중 하나라고 본다면 굳이 일본대중문화라고 국한시키지 말고 오히려 그렇게 됬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 시각을 가지고 독특한 일본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궁극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넓은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방학 때 만화방에 가서 일본만화 몽땅 읽어보고... 대체적으로 많이 접해봐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시각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이 없고 집단만 있다. 그 집단 내에도 사회성은 없고.. .지금이니까 일본대중문화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하지 옛날 같았으면 당장 화염병 날라왔다.^^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다양해질수록 결국은 거기에 따른 개인들도 다양해진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결핍되어 있는 사회는 우리 문화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결과이다.
이제는 다양성이 있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정부가 관여해서 제재하고 그럴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권리이다. 요즘 한국사회가 근대를 이뤄야한다든지, 탈근대를 해야한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 많다. 주된 과제가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대중문화가 문화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한다면 이런 것들이 시민사회를 형성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전면개방이 빨리 실현되어야한다고 본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편집시각 2000년07월28일17시15분 KST

■5·18은 바람에 지는 풀잎인가?
돌이 날고 최루탄이 터졌다.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95년은 5·18 학살자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해였다. 그 해 여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없다'라고 했다. 광주는 다시 거센 싸움을 시작했다. 학살자 처벌! 진상규명! 전국이 함께 외쳤다. 그리고 기만적인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되었다. 전직대통령 두 명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그 싸움을 벌였나? 그 싸움이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나?
96년 5월의 금남로. 돌과 최루탄은 없었다. 도청 앞과 금남로에는 대형 멀티비전들이 설치되고 모여든 사람들은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면서 5·18 전야제를 '즐겼다'. 그 때 한 선배가 말했다. '해결된 것도 없는데 너무 축제로 가는 거 아냐?'라고.
그리고 99년 5월 17일. 제대한 지 얼마 안된 나는 친구들과 금남로에 나갔다. 경찰들이 나서서 교통을 통제하고 무대 앞 질서를 유지해주고 있었다. 그 때 친구가 말했다. '역시 전야제가 본행사 보다 재미있어.'라고.
다시 2000년 5월 17일. 5·18 20주년은 '천년의 빛'이라고 했다. 인권과 평화라고 했다. 도청 앞 무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가수 안치환씨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가 노래를 마치고 무대 뒤로 사라지자 시민들은 사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회자는 마지막 구호로 '광주여 평화와 통일의 이름으로 영원하라!'를 외쳤다.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의 등을 향해서. 그 때 금남로에서 만난 한 농민회 분이 말했다. '5·18은 관광이 아니다'라고.
요즘 5·18이 삐거덕거리고 있다. 몇 달 전에는 5·18 기념재단 관계자가 연루된 5·18 허위 피해신고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는 5·18기념재단이 추진한 '한국 민주주의 20년사'라는 다큐멘터리 제작 관련 계약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시비가 일었다. 이 사건으로 5·18기념재단은 이사장과 사무처 직원들의 내분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김동원 이사장이 재단의 명예를 실추한데 책임을 지고 사퇴함으로써 갈등이 일단락된 듯 하다. 지난 26일에는 고재유 광주시장이 조비오 신부 등 전직 기념재단 이사장과 재야 인사들을 초청하여 신임 이사장 선출 등 재단 정상화를 논의했다. 이 논의에서 재단의 내분이 오랜 감정대립에 따른 것이라고 인식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걸로 끝난 걸까? 관계자 몇 명이 물러나고 기념재단이 정상 운영되면 5·18도 '정상화'되는 걸까? 아니다. 지금의 5·18은 전혀 성숙되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가 사면되었을 때 광주는 이미 싸움의 힘과 의지를 잃어버렸다. 정략적인 사면복권에 별 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전·노와 '화해'하고 5·18은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다. 정작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채 맞지도 않는 인권과 평화의 옷을 입으려 하고 있다. 무작정 5·18이라는 '간판'을 여기 저기 내걸고 있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외국 운동가에게 상을 주면 5·18이 세계화 되는가?
5월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그것은 망월동 묘역의 주차장을 넓히고(묘역으로 가는 유일한 시내버스는 40여분 간격으로 다닌다), 묘역 주변을 대리석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운동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지금 광주는 진보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진보진영의 입지가 좁다. '5·18' 때문에 광주를 진보도시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이러한 현실을 참된 5월정신의 회복과 계승으로 극복해야 한다. 항쟁의 정의로움, 대동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현해야 한다. 5·18은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5월 정신의 계승이 아닐까? 기념재단을 정상화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지만 5월 정신을 올바로 계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어설프게 5·18의 문화화를 주장하거나 기념사업 중심에 그친다면 우리에게 5월 정신은 없다. 오월의 시인 고 김남주 시인은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편집시각 2000년10월29일17시07분 KST

■'NL-PD연대'가 해결책이 아니다
[필자주] 이 글은 하니리포터 김웅기 기자의 '학생운동이여! 같은 것만이라도 행동하라!'에 대한 반론입니다.
김웅기 기자의 기사는 NL과 PD로 나뉘어져 있는 학생운동이 '같음'에 대하여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주장을 끌어내기 위한 몇 가지 진단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김웅기 기자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시기와 광주민중항쟁 시기에 학생운동이 'NL과 PD계열의 사상·이념적 차이를 초월해 자연스런 연대를 이루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학생운동진영에서 NL과 PD라는 정파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이다. 80년대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그 유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이 있었다. 여기서 한국사회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볼 것이냐 아니면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로 볼 것이냐에 따라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라는 운동노선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곧 학생운동진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둘째 학생운동이 90년대 들어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90년을 전후한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96년 연대 사태로 인한 한총련의 정당성 위기, 97년 12월 IMF,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삶의 목을 조르는 세계적 신자유주의의 물결 등'을 위기의 원인으로 내놓는다.
이것은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을 빼놓음으로써 학생운동의 위기를 시대적인 필연 내지는 학생운동 내부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오류를 낳는다. 90년대 학생운동이 위기를 만난 것은 물론 김웅기 기자가 지적한 위의 원인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한 원인은 정권과 언론의 탄압이었다. 이것을 빼놓으면 학생운동의 위기는 여러 객관적, 상황적 조건 탓 아니면 학생운동 내부의 탓으로 돌려질 뿐이다.
91년 정원식 교육부장관에 대한 대학생들의 '달걀, 밀가루 투척 사건'이 당시 언론에서 어떤 식으로 보도되었는가? 정원식 장관이 저질렀던 만행(당시 수많은 전교조 관련 교사들을 해직시켰다)은 온데 간데 없고 오로지 학생들만이 '패륜아'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학생운동은 그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93년 이후 김영삼 정권 때 국가보안법 관련 양심수의 수치는 5, 6공 시절보다 더 많았다. 역시 김영삼 정권 시절인 96년 한총련 연세대 시위는 86년 '건대항쟁'의 기록을 갱신하였다. 5천여명의 학생이 연행되고 4백명이 넘는 학생이 구속되었다.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 '언론'은 없었다. 진정 '언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총련의 씨를 말리기 위해 정권은 뛰었지만 언론은 그 위를 날았다. 그 후로 대학 새내기들은 한총련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보였고 학생운동은 그 위기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셋째 현재 학생회 장악 현황을 말하면서 '결국 수치상으로 본다면 여전히 학생운동지형은 97년 연대 사태 이후에도 NL과 PD의 대립구도를 못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진단한다.
마치 위기가 닥쳤으니 노선 따지지 말고 힘을 합치자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야 학생운동이 잃어버린 학생사회의 헤게모니를 되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예전의 그 신화를 되찾자는 것인가? 이것은 바로 다음의 말로 드러나고 만다. '학생사회에서 학생운동이 헤게모니를 점차적으로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럼에도 양 계열은 서로 '다름'만을 주장하며 '같음'에 대해 연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헤게모니를 되찾는 것은 김웅기 기자도 언급했던 90년대 학생운동의 위기를 가져 온 여러 원인들을 극복함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극복이 NL과 PD가 연대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NL과 PD는 학생회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파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까닭, 즉 운동의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연대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학생운동 위기의 해결책인 양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오히려 위기 상황일수록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더욱 공고히 세우고 변화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NL과 PD는 실제적인 힘과 기반이 거의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의 복원과 변화이다. 일단 각자의 조직을 건실하고 튼튼하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NL과 PD가 연대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사고이다. 김웅기 기자는 '서로 다른 세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리고, 연대가 결코 자기 '밥그릇'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학생운동이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 부분만 따로 떼 놓고 보면 말이다. 그러나 전체 글의 맥락에서 보면 결국 학생운동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NL과 PD의 연대를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옳은 말들이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주제에 묶인 글이 되면서 그러한 오류를 낳게 된 것이다.
각 대학마다 학생회 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학생운동의 위기'라는 말이 더 이상 긴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오래 동안 들려왔다. 지금 정작 중요한 것은 아주 기초적인 신뢰와 애정의 회복이다. 이것은 NL과 PD가 연대함으로서 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조직을 건실하게 세우고 그 속에서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원칙적으로 관철시킴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건강하게 경쟁하고 연대하는 것은 또 다른 교훈으로 가져야 할 일이다.
[덧붙임] 김웅기 기자의 글에서 잘못 표기된 부분이 있어 지적합니다. 
NL(민족민주) : 민족해방 
97년 연대 사태 이후에도 : 96년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ejen@kebi.com
편집시각 2000년11월06일18시07분 KST

■신문보면 13만원짜리 비데를 준다고?
3,247건이다. 99년 한해 동안 한국신문협회에 접수된 공정경쟁규약 위반 사례 중 강제투입 건수이다. 이 중에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위반 건수는 2,572건이다. 세 신문사의 경품제공 건수는 145건이다. 물론 접수된 사례들에 한해서이다. 접수되지 않은 건수까지 더하면 얼마나 더 많아질지 모른다.
지난 주 MBC 100분토론에는 한 신문사의 지국장이 나왔다. 그는 일선 지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품제공과 무가지 살포, 이삿짐 날라주기를 증언(?)했다. 본사가 강요하는 불법과당경쟁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던 그는 본사에 직접 항의했고 MBC에 인터뷰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본사의 한 간부로부터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언론은 못 건든다"는 말만 듣고 결국 잘렸다고(?) 한다.
우리 신문시장에는 건전 경쟁의 룰이 없다. 승부는 신문의 질이 아닌 믹서기냐 리모콘식 선풍기냐에 달렸다. 이삿짐을 얼마나 잘 날라주느냐에 달렸다. 가만 내버려두면 조만간 신문 봐주는 대가로 마티즈 승용차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이여! 조금만 기다리자! 마티즈가 눈앞에 있다. 흐흠.... 설마 진짜로 그럴 독자는 없을 거라 믿는다. 사회발전을 까짓 마티즈랑 바꿀 순 없다.
한달치 신문구독료는 대개 1만원 안팎이다. 그런데 거대신문사들은 수만원짜리(어느 신문사는 13만원짜리 비데도 준다고 하더라. 어딘지 아는 사람 없수?) 경품을 제공하고 게다가 몇 개월은 돈도 안 받고 신문을 넣어준다고 한다. 제정신으로 가능할까?
물론 제정신이 아닌 거대신문사이긴 하지만 돈벌이에 대해서는 탁월한 두뇌회전을 발휘한다. '판매에서 돈을 뿌리고 광고에서 더 많이 거두어 들이려는' 속셈인 것이다. 또 하나 속셈이 있다. 부수의 확장은 곧 사주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확장이다. 이런 속셈 때문에 거대신문사들은 그 난리를 치는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반문이 있다. 맞다. 그런데 시장이 독과점상태가 되었고 건전경쟁의 룰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지난 96년 7월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지국장 사이에서 부수확장을 둘러싼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의 이사현장에서는 각 신문사 지국에서 파견된 부수확장 사원들끼리 각목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물론 이것은 구조적으로 불법과당경쟁을 강요하는 본사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신문의 질이라는 상품력이 아닌 판매력에 의해서 신문시장을 장악하려는 거대신문사들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이미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의한 신문시장의 독과점은 결국 여론독과점을 형성하고 이 세 신문사에 의해 우리 사회의 여론이 휘둘리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과 같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신문시장 독과점 속에서 신문의 편집과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 사회적 책임은 외면되고 논조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의견의 유통은 사라진다. 이미 시장은 깨졌다.
그래서 신문공동판매제도(이하 공판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공판제는 일선 지국이 각 신문을 한꺼번에 받아 일괄 보급하는 제도이다. 공판제는 한 구역에서 배달사원이 각 신문 독자별로 배달을 총괄하기 때문에 부족한 배달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각 신문을 함께 보급하므로 경품제공과 무가지 살포, 구독료 할인 등의 출혈과당경쟁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언론통제'나 '좌파적 주장'이 아니다. 공판제는 정치권력의 언론탄압보다 더욱 무서운 언론의 독과점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등 5개 신문사가 신문공동판매를 하는 신문배달전문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한다.(미디어 오늘 275호) 여기에 대한매일이 뒤늦게 합류했다. 간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여전히 배짱이다. 그들은 공판제라고 하니 무슨 농수산물 공판장인줄 알았나 보다.
각 신문사는 신문공동판매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는데 적극 나서 깨진 시장을 복원해야 한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2월07일18시10분 KST

■내 애인은 '페미니스트'!
내 애인(이하 벗이라고 하겠다)은 페미니스트다.
나는 26개월 군생활을 했던 예비역 학생이다. "꽤나 골치 아프겠군. 애인이 페미니스트라니.." 벌써 이런 반응이 있을 것 같다. 맞다. 내 페미니스트 벗 덕분에 골치 아프다. 일상을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내 벗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의 입장과 연대하는 것은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기센 여자', '꼬치꼬치 따지는 여자', '잘난 척 하는 여자'... 대개 페미니스트 하면 이런 식의 대접외밖에 할 줄 모르는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 벗과 연애한다는 것은 역시 골치 아픈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아주 즐겁다. 내 벗은 나를 페미니스트(나는 극구 부인하지만)라고 대접해주고 나의 고정관념을 무참하게 박살내주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에 좀 늦어서 유머러스하게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이 서방님이 비지니스가 바빠서..."라고 농담을 던졌다가 바로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다. '서방님'이라는 봉건적인 말 때문에 그 자리에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괜히 터프하게 무드 잡으려고 "야! 이리 와봐(최민수 버전으로)"라고 했다가 무드는커녕 산통 다 깬 적도 있다. 이쯤되면 또 누군가는 "거봐. 꼬치꼬치 따지는 거 좋아하잖아. 그냥 웃고 넘기면 될 일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은 구별하자. '꼬치꼬치 따지는 것'과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 말이다. 나는 후자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웃고 넘길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강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웃고 넘길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억압이라는 건 취업전선이나 가부장적 가족구조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여성억압과 성차별은 아주 일상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이른바 문화적 장치를 통해 작동한다는 말이다. 우리들의 농담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는 왜곡된 성의식이 숨어 있다. 내 페미니스트 벗은 그것을 박살내준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것까지 '꼬치꼬치 따져준다'. 나는 그게 고맙고 즐겁다.
페미니스트들의 투쟁덕분인지 아니면 조금씩 진보해 온 사회적 분위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여론이 페미니스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살벌한 시기는 지난 것 같다. 하긴 내 주변에도 '여성해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성평등'을 부정하고 노골적으로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는 마초들은 없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두렵다. 도대체 적들을 분간해내기가 어렵다. 공격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뭘 그런 일 가지고 그러느냐,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공동체의 즐거움을 없애려고 하지마라 따위의 반응을 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페미니스트 벗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 눈총을 받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언젠가 내 페미니스트 벗이 자신이 싸움닭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당하고 권위적인 것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 페미니스트 벗에게는 하루에도 수없이 대하는 농담이나 장난도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런 내 페미니스트 벗을 지지하고 연대한다. 나는 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내 페미니스트 벗의 '따지기'를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를 '기세고 따지기 좋아하는 여자'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호들갑이네', '농담도 못하냐', '말은 맞다. 인정해. 그런데 좀 심하지 않아?'라는 반응은 이제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3월04일10시06분 KST

■"우리가 무슨 초식동물인가?" 
 "겨울엔 시원하고 여름엔 따뜻한 강의실?"
지난 3월30일 오후 전남대에서는 [수업료 5% 삭감, 등록금 제도 개선, 국립대 발전계획 철회, 전남대 교육대개혁을 위한 학생총회]가 열렸다. 이번 학생총회 개최는 전남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대회에 안건으로 상정되어 가결된 것이다. 회칙상의 절차를 밟아 학생총회가 열린 것은 전남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4시 전남대 총학생회는 최종인원 집계 결과 1915명이 참석해서 정족수 1495명이 넘었음을 알리고 학생총회 성사를 선언했다. 학생총회는 교육재정 6%확보, 국립대발전계획 철회, 등록금 제도 개선, 주요 교육환경개선 5개년 계획 수립, 대학운영에 학생참여 보장, 학부제 중단 등이 포함된 학생총회 7대 요구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자유발언 시간에는 20여명의 학생들이 나와서 '불쌍한 예비역에 대한 슬픈 이야기'부터 '총장님께 한 말씀'까지 평소의 생각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재정지원이 없다고 우리 과(미술교육학과)는 폐과 위기.. 학우들의 도움과 지지 부탁"
"학부제로 인해 모르는 사람들과 학교 다녀.. 개강잔치도 못한다.. 전공수업 7, 80명이 들어 뒤에서는 글씨도 안 보인다. 교수님들은 공부하고 싶으면 앞에 앉으라고 하지만 앞자리는 금새 차버린다. 교수님들은 학부제 안 하면 돈이 안 나온다고 한다. 학부제 반대에 나서야 한다."
"학생들이 본부에 요구할 수 있는 열린 창구가 없다. 대학본부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있다. 언제까지 무시할건가. 등록금 인상에는 불만 없다. 문제는 인상 후 우리 교육환경이 얼마나 좋아졌는가이다. 총장에게 한 말씀 올린다. 교육환경 개선된다면 등록금 더 많이 내겠다. 그렇게 안되면 등록금 돌려달라. 누군가 우리를 3류라 했는데(전남대 총장의 '학생은 3류'발언) 전남대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은 1류다.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예술대에 이젤이 없어서 1학년들이 수업을 못하고 있다. 공간이 부족해서 가건물에서 작업한다. 건물이 무슨 닭장도 아닌데 비좁아서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도 못한다. 만일 불이라도 나면 우리는 다 죽는다"
"레포트 쓰려고 도서관에서 동성애에 관한 책을 검색했는데 단 한 권도 없었다. 한 분야에 관련된 책이 한 권도 없는 곳이 무슨 도서관인가"
"학생자치활동에 대해서 교수님들이 인정을 안 한다. 과행사가 있어서 결강사유서를 내도 안 받아준다. 강의실은 겨울에는 시원하고 여름에는 따뜻하다. 강의실 환경 좀 개선 해달라"
"전산실에는 바보같은 컴퓨터만 있다. 3년 동안 업그레이드 한번 안 한 것 같다. 군대 갔다오니 그대로다. 고장난 컴퓨터도 항상 그대로다."
"학부제 때문에 아는 선배나 후배들이 별로 없는 예비역들은 아는 사람들끼리 구석진 곳에서 우유곽으로 족구하고 논다. 강의실에 자리가 없어서 뒤에 서서 듣고, 강의실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다."
"기숙사비가 타대학에 비해 너무 비싸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다. 반찬에 고기가 없다. 우리가 무슨 초식동물인가. 기숙사에 지문인식기가 왜 필요한가(관련기사 전남대 기숙사, '지문인식기 설치' 논란) 잘못해서 삐 소리 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7대 요구안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 투표인원 1547명 중 찬성 1533(반대10, 무효4)표를 얻어 요구안이 가결되었다. 학생들은 이 요구안을 총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본부로 향했다. 학생들은 본부건물 유리벽에 압류자보를 붙였다. 압류자보에는 '매년 등록금은 오르는데 교육환경은 개선되는 것이 없어 대학본부에 있는 집기들을 압류하여 학생들의 교육환경개선 사업에 쓰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총장을 대신해 김재율 학생처장 등 본부 관계자들이 나왔다. 이도형 부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 학생회장 등은 학생총회가 가결한 7대 요구안을 전달하면서 학생처장에게 답변기한을 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학생처장 등은 "최선을 다해 빨리 답변해야지.. 빠른 시일 안에.. 성의를 보여야지.."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결국 부총학생회장이 2주 안에 답변해 줄 것을 요구하고 본부 관계자들은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부총학생회장은 2주 안에 성실한 답변이 없을 경우 더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요구안의 내용은 작년에 이미 전달되어서 학생처장 명의로 합의 된 것인데 '작년 일은 작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한총련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과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사진제공: 하니리포터 모철홍 기자 mochulong@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4월02일18시01분 KST

■한국 노동절 소식을 만방에 알린다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는 세계노동절 111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노동절 2001 사이트 (http://mayday.nodong.net)'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국노동네트워크는 지난 2000년부터 세계노동절을 맞이하여 한국의 노동절 관련 소식을 전국의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서 '한국 노동절 사이트'를 만들어왔다.
'한국 노동절 2001 사이트'는 노동절의 유래와 한국 노동절의 역사, 2001 노동절 행사, 현장 미디어 중계 등 노동절을 널리 알리고 올해 행사와 투쟁의 현장을 즉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알릴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또 한국 노동절과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영문 페이지도 준비중이다.
이 사이트는 한국 노동절 2001 행사와 투쟁의 현장에서 역사를 체험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원봉사의 내용은 영문번역, 현장 소식 취재, 현장사진·동영상 취재, 노동절 사이트 운영, 기타 아이디어 제공 등이다. 특히 5월 1일 메이데이 대회 때 30분 단위로 현장에서 취재자원봉사자의 전화중계를 토대로 실시간 텍스트 중계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한국 노동절 행사는 각 권역별로 열리기 때문에 서울까지 올라오지 않아도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노동절 111주년을 기념하여 제1회 민주노총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참가자격은 2001 세계노동절을 뜻깊게 보내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된다.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2001년 4월 29일(일요일) 오전 9시에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결해서 종묘공원까지 약 5.1km을 달리게 된다. 앗! 참가비 2,000원은 들고 오시기 바란다.
자원봉사 지원자나 마라톤대회 참가희망자는 '한국 노동절 2001 사이트'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고 바로 참가신청도 할 수 있다.
한국노동네트워크 사무국 : 02-757-8627 
E-Mail : mayday@nodong.net
통신 ID : labornet(참세상)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4월23일17시54분 KST

■광주 민주노총 집회에서 일어난 일 
21일 토요일 오후 2시 광주공원. 광주공원은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이 모여 날마다 다를 것 없는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비슷한 곳이다. 그러나 그 곳보다는 훨씬 더 우울하고 찝찝한 기분을 주는 곳이 광주공원이다. 대낮부터 얼굴이 뻘개진 채 확 끼쳐오는 술냄새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혼자서 늘어놓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눈치껏 슬금슬금 피하는 할아버지들이다. 사회적 소외에서 또 다시 소외받는 어르신들의 그러한 일상이 이뤄지는 광주공원.
이곳에서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가 주관하는 '살인적 폭력만행 규탄! 구조조정 반대! 노동기본권 쟁취! 공공의료쟁취! 김대중정권 퇴진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우차 투쟁선봉단과 캐리어 하청노조 등의 투쟁사업장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창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할아버지가 집회장 가운데로 들어와서 마이크를 붙잡으려고 하면서 발언을 방해했다.
"딴데 가서 해" 그 할아버지가 했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중에 간신히 건져낸 말이다. 주변에 있던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만류했지만 할아버지는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계속해서 집회를 방해했다.
광주공원 집회가 끝날 때까지 집회장 주변은 이런 할아버지들로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이런 할아버지들을 일단 제지하고 그 분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집회를 방해한 한 할아버지와 민주노총 관계자의 대화 가운데 한 토막.
할아버지 : "김대통령... 우리가 협조해주세.." 
민주노총 관계자 :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해주는 게 김대통령을 위한 일이에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집회는 계속되었다.
집회 사회자는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탄 나라에서 어떻게 무자비한 폭력진압이 있을 수 있는가라며 경찰의 대우차노동자 폭력진압과 최고 책임자인 김대통령을 규탄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할아버지가 "(노벨평화상을) 탈만한께 탔제.. 진작 탔어야제.. YS땜에 여태 못 탄거여...(탈만 하니까 탔다. 진자 탔어야 했다. YS 때문에 여태 못 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또 다른 대화.
할아버지 : "왜 여기서 데모하는거여? 광주에서 이런 거 하면 안돼." 
민주노총 관계자 : "왜 김대통령이 잘못하면 집회하면 안돼요?" 
할아버지 : "다 알아서 판단한거여."
실랑이는 계속되고 도무지 안되겠는지 민주노총 관계자는 웃었다. 다른 할아버지가 또 사회자의 발언을 제지하려고 하자 민주노총 관계자는 음료수 하나를 건네면서 할아버지를 만류했다. 다시 아예 음료수 한 상자를 드리자 할아버지는 자리를 떠났다.
집회참가자들이 투쟁가를 부를 때면 한 할아버지는 나무 막대기를 양 손에 들고 맨 앞에서 지휘자 흉내를 냈다.
집회장 주변에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던 할아버지들과 청소부 할아버지에게 민주노총 관계자가 음료수와 사탕을 하나씩 나눠드리는 모습도 있었다. 집회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청소부 할아버지는 조용히 "DJ나 됭께 이만큼이라도 하제. 안글면 안돼.(DJ나 되니까 이만큼이라도 하지. 아니면 안돼)"라고 혼잣말을 했다.
윤영민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장이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한 할아버지가 "김대중 선생한테 그러면 돼?"라고 하자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도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할아버지는 청와대에 항의전화한다며 민주노총 관계자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본행사가 끝나고 집회참가자들은 예정대로 시내행진을 나섰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전투복이나 진압복이 아닌 근무복을 입은 경찰들이 행진대열을 호위했다. 시내까지 평화로운 행진이 계속되었다. 광주공원 집회장에서 계속해서 소리를 치면서 집회를 방해했던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시내까지 행진대열을 쫓아왔다. 수많은 시민들이 지켜 보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민노총! 왜 도로로 가?" "민노총땜에 광주경제 다 망한다." 라고 소리치면서 민주노총을 굉장히 못마땅해 했다. 행진대열은 구호를 외치면서 예정된 길을 따라 행진을 계속했다. 광주동부경찰서와 전남도경찰청이 있는 도청 부근으로 통하는 길에는 근무복이 아닌 진압복을 입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행진대열이 지나는 인도에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잠바차림의 4, 50대 형사들이 따라다녔다. 그 수는 20여명 쯤 되었다.
행진대열이 광주 양영학원과 전남도청 사이 도로까지 오자 경찰들은 도청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전면 봉쇄했다. 행진대열 바로 앞에는 근무복 차림의 경찰들을 세우고 그 뒤에 진압복을 입은 경찰들을 세웠다. 행진대열이 없는 반대 차선 쪽에는 파란색 근무복의 교통경찰들이 빽빽히 서 있어 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행진대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행진대열은 앞뒤로 경찰들에 의해 에워싸여 마치 시민들과 고립되어 있는 듯 보였다. 행진대열과 경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중에 나는 경찰들이 서 있는 뒤편으로 갔다. 그 곳에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형사들이 여기저기 서 있고 카메라를 든 경찰측 채증요원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어폰을 꽂고 있던 한 형사가 4,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에게 이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 아주머니들과 다른 아저씨 3명은 행진대열을 가로막고 있는 경찰들 바로 등 뒤에 1열 횡대로 쭉 서더니 폼을 잡았다. 기념사진 찍자고 했다. 눈을 돌려보니 맞은 편에는 카메라를 든 50대 아저씨가 이쪽에 렌즈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과 카메라를 든 아저씨 사이로 차들이 계속 지나가서 사진을 찍을 틈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지시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 긴 것인지 한 교통경찰이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로막았다. 그 순간 찰칵 기념사진은 찍혔다. 기념사진이 찍히고 나서야 시민들을 태운 시내버스는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는 그 아주머니들에게 물었다. 무슨 사진을 찍은 거냐고. 화사하게 단장을 한 그 아주머니들은 그냥 기념사진 찍은 거라고 했다. 무슨 기념사진을 경찰들 뒤에서 찍냐고 도대체 어디서 오신 분들이냐고 물었다. 무슨 모임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잠시 당황해 하더니 "그냥 계모임이에요. 여수에서도 오고, 순천에서도 오고.." 다시 물었다. "아니 무슨 계모임 사진 찍는데 경찰이 버스까지 막아줘요?"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우리가 부탁한 거에요." 그 아주머니들은 정확한 답변을 피하고 그냥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 지켜봤지만 그 아주머니들이 교통경찰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주던 그 아저씨는 행진대열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행진대열에 있던 몇몇 대학생들이 그 아저씨에게 자신들 사진찍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도 보았다.
오후 5시 예정된 시간에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광주공원에서 할아버지들의 집회에 대한 반발. 이 일을 보고 '나이드신 분들 다 그렇지'라고 그냥 실없는 소리로 치고 웃으면 될 일일까.. 아니면 김대통령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굴절된 심리를 엿보게 해준 것일까. 그리고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머니들의 '기념사진'촬영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한민국 경찰은 아주머니들의 사진촬영을 위해 시내버스까지 막아줄 정도로 친절해야 하나? 도대체 그 아주머니들은 누구였길래 그런 독특한 친절서비스를 받았을까.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나는 궁금하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4월23일16시50분 KST

■비정규직 파업현장을 가다 
25일 오전 10시 50분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단내 캐리어 공장을 찾았다. 지난 16일부터 캐리어 하청노조가 이곳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파업은 전국 제조업 사업장 가운데 최초로 일어난 비정규직 파업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2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 철폐를 위한 공대위'가 23일 오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비정규노동자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한 뒤 레미콘노동자, 보험모집인,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등이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모형을 부수고 있다. 이정우 기자woo@hani.co.kr
취재하려고 캐리어 공장을 방문한 나는 정문 경비실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경비원은 캐리어 노동조합(정규직)이 아닌 하청노조(비정규직)와 사전에 연락하고 찾아왔기 때문에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하청노조와 연락한 것은 소용없다는 입장이었다. 들어가려면 캐리어 노동조합과 연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비실 앞에서 나를 구출하러(?) 온 하청노조측 사람들과 한창 실랑이를 벌였지만 경비원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나는 캐리어 노동조합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노조측 사람이 와서 들어가게 해주었다. 내 신분증과 방문증을 교환해주면서 들은 경비원의 당부.
"하청노조 쪽에는 가지 말아요. 서로 입장 곤란해지니까.."
나는 노조 사무실에 가서 잠시 인사를 나눈 뒤 경비원의 입장을 곤란케 할 일을 저질렀다. 막 집회를 마치고 천막농성장 쪽으로 오던 하청노조원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지난 2월 18일 출범을 선언하고 2월 22일 신고필증을 받은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2월 22일 (주)캐리어는 사내하청 노조 집행부 전원을 해고했다. 이에 하청노조측은 노조설립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임을 지적했다.
캐리어 하청노동자들은 이른바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청우실업, (주)대명, 한보산업개발, 명신실업, 캐리어냉열, 광진실업 등 6개 용역업체에 의해 간접고용되어 이 업체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노동자들이다. 하청노조측은 지난 3월 용역업체인 청우실업이 작년 10월에 들어온 조합원들은 임금이 인상되어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며 '일이 없을 때는 즉시 나가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경석 사내하청 노조위원장은 비정상적인 노무관리와 정규직과의 임금과 처우 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면서 사측과 13차례의 협상(실질적으로는 4차례)을 했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는 캐리어 원청이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아 결국 결렬되었다고 말했다. 캐리어 원청측은 법적으로 하청노조측과 협상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파업 전 협상을 통해 기본약정서 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노동3권 보장 등 이미 노동관계법에 보장된 부분들에 대해 추상적인 합의만 이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파업 이후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 '무대응 전술'을 펴면서 조합원들이 지치게 하고 있고 경영진측의 보신주의 때문에 사태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하청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480여명이다. 캐리어는 808명의 정규직과 7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높은 이직률과 사측의 자료공개 거부 등으로 하청노조가 정확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같은 생산라인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달 평균 임금 68만원을(기본급+상여금) 받는다고 말했다. 정규직과의 임금차이는 2.5배에서 4배까지 벌어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도 여성노동자들은 한달 평균 60여 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어 월급여를 기준으로 보면 최저임금제에도 어긋나고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6개 용역업체에 간접고용된 상태이기 때문에 매달 임금에서 1인당 30∼40만원씩 용역업체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과의 차이는 임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보여주었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은 회사에서 지급한 검은색 작업화였는데 앞부분이 다 벗겨져 흰색을 띠고 있었다. 정규직은 입사할 때 새 작업복과 작업화 등을 지급받는데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헌 것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명절 보너스는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확산이 야기하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분열이 생기고 결국 노동조합의 약화를 초래한다. 사측에서 노동자들 간에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에게 캐리어 노동조합과 하청노조 사이의 관계를 슬쩍 물어보았다. 이 위원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하청노조설립 단계만 해도 원만했는데 그 뒤로 약간 냉랭한 관계가 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3월 9일에는 캐리어 노동조합 확대간부회의에서 하청노조와의 연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 후 같이 사용하던 노조사무실에서 나와 천막을 하청노조 사무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노조를 돕다가 혹시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그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애써 감췄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하청노조를 세운지 2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조합원들의 결의도 높고 집행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성공적인 평가를 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장기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생계문제로 이탈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말했다. 또 비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해서 사측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조합원들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면서 캐리어 원청에 계속해서 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4월26일15시42분 KST

■노동절에 병원으로 달려간 노동자들 
5월 1일 오후 2시 광주역 광장. 111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하루전까지만해도 대회에 온다고 했던 한 노조가 오지 못했다. 캐리어 하청노조이다.
전세계 노동자의 날인 1일 오전 하남산단 캐리어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캐리어 하청노조는 이날 오전 캐리어 관리직 직원과 용역 구사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공장점거농성 중인 하청노조원들을 무차별 폭행한 뒤 공장에서 끌어내 경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사측과 협의하기 위해 공장 안에 들어가 있던 박병규 민주노총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은 '구사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등과 허리를 맞고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하청노조원들은 심하게 다쳐 경찰은 이들을 하남성심병원으로 급하게 옮겼다.
이 사태를 들은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광주역 광장 노동자대회 후 금남로 YMCA까지 갈 예정이었던 거리행진을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마무리했다. 이날 오후 5시 행진대열은 대기중이던 전세버스를 타고 캐리어 공장으로 향했다. 5시45분 캐리어 정문앞에 도착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바로 대오를 정비하고 규탄집회를 열었다. 캐리어 공장을 둘러싸고 있는 철망 안쪽과 건물 옥상에는 캐리어 관리직원들이 이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윤영민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장은 30일 사측과 대화하는 중에 '하청노조와는 교섭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측을 규탄했다. 송영진 캐리어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111주년 세계노동절인 오늘은 참으로 서글픈 날이다'며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이 싸움은 하청노조와 구사대의 싸움이 아니라 총자본과 총노동자의 싸움'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오후 6시40분 노동자와 학생들은 집회를 마무리하고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폭행 당한 하청노조원들이 입원해 있는 하남성심병원으로 이동했다. 10분뒤 성심병원에 도착해보니 전경들이 중앙현관과 응급실 입구를 빈틈없이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앞에 도착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모든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과 대치했다.
이 때 쇠파이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진 박병규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의 부인이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는 '남편이 쇠파이프에 맞아 허리를 다쳐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며 경찰에게 들여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거부했다.
오후 6시5분쯤 다친 노조원과 면회를 요구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를 묵살하는 경찰측에 분노해 현관을 막고 있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조합원들은 팔짱을 낀채 병원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을 하나둘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다친 사람 면회도 못하게'하는데 몹시 화가 난 조합원들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며 계속해서 전경들을 끌어냈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돌아다니면서 '끌려나온 전경들은 절대 때리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며 만일의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애썼다. 흥분한 조합원들도 이에 수긍하여 끌려나온 전경들은 조합원들 뒤쪽에서 별다른 제지를 받지않고 서 있었다.
오후 7시5분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헬맷과 방패 등으로 무장한 전경들이 전면에 배치되었다. 이때에도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하며 전경들을 끌어냈지만 끌려나온 전경들은 잠시후 경찰쪽으로 돌아갔다. 성심병원 주변에는 점점 더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었고 병원안에도 상당수 병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조합원과 학생들은 다친 사람들과 면회를 요구하며 병원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오후 7시38분 경찰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자 조합원들은 세 번째 몸싸움을 했다. 이때 변함없는 경찰의 태도에 몹시 흥분한 조합원들은 더욱 격렬해져서 현관 유리문까지 밀고 들어갈 정도로 많은 전경들을 끌어냈다. 뒤에서 대열을 짓고 서있던 다른 조합원들과 학생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비정규직 철폐하자'를 계속 외쳤다. 10여분 동안 몸싸움이 있다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열을 정비하자고 소리쳤지만 몇몇 조합원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곧 조합원들은 스스로 '대열정비'를 외치며 경찰에게서 물러났다. 조합원들은 다시 연좌농성을 벌이며 거듭 면회를 요구하고 공장안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킨 캐리어자본을 규탄했다.
오후 8시51분 네 번째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와 광산경찰서장의 면담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그 자리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대신하며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면담결과를 기다리면서 전경과 몸싸움하면서 땅에 떨어진 시계와 안경 등 분실물들을 모았다. 경찰쪽에서도 시계 등을 잃어버렸다며 조합원들에게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오후 9시쯤 민주노총 지도부가 광산경찰서장을 면담하고 응급실에서 다친 하청노조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전한 면담결과.
"담당의사가 다친 조합원 9명중 3명은 꼭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9명 모두 하루만이라도 입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산경찰서장은 빨리 경찰서로 연행해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가 내일 점심이라도 먹이고 데려 가라고 말했다. 오늘은 간호에 필요한 인원만 남기고 해산하기로 했다.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5명(이경석 하청노조위원장과 하청노조 집행부)은 치료 후 연행하고 나머지 4명은 치료 후 우리가 데려가기로 합의했다."
이 결과에 대해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마뜩치 않아했다. 그들은 공장점거 이후 '위원장님 얼굴 한번 못봤다'며 이렇게 물러나는 것에 불만을 내비췄다. 9시 20분쯤 하청노조원들이 직접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 위해 다시 광산경찰서장과 면담에 들어갔다. 면담결과 하청노조원 4명만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한 하청노조원은 '우리는 뭐냐. 위원장님 얼굴 못본지 20일도 넘었다'며 면회인원이 4명으로 제한된 것에 안타까움을 보였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조합원 4명의 양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송영진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이 비닐 속에는 우리 동지들의 피묻은 옷이 들어 있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하청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위원장님! 동지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라고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9시55분 조합원들은 마지막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를 마쳤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 1일 오전 공장점거농성장에서 '구사대'에게 폭행당한 부상자 명단(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투쟁속보 게시판 참조)
1) 박병규 :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 감금상태에서 쇠파이프로 맞음. 오른쪽 상하반신 마비상태. 오늘 하루 경과를 두고 봐야.
2) 김대희 : 캐리어노조 조합원. 혼수상태. 일단 1차 CT촬영결과 이상은 나타나지 않으나 오른쪽 다리 감각없음. 오늘 경과를 지켜봐야 함.
3) 송세종 : 하청노조 조합원. 머리 두곳 심하게 찢어짐. 6-7cm 기웠으며 다른 한 곳의 부상은 3-4cm정도. 깊게 파여 오늘 경과를보고 내일 뇌수술실에서 수술예정.
4) 김희철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 왼쪽 눈 부상. 심하게 부어 앞을 보지 못하고 눈동자 굴리는데 어려움 호소.
5) 김시영 : 하청노조 조합원. 오른손목 부상. 전신타박상
6) 이경석 : 하청노조 위원장. 머리부상. 전신타박상.
7) 김남균 : 하청노조 교선부장. 얼굴타박상. 코 왼쪽 눈 부어 오름. 오른손, 왼쪽다리 부상.
8) 김경민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상. 얼굴에 상처
9) 고강삼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
[사진제공]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광주 =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02일14시58분 KST

■'캐리어폭력사태' 경찰 개입?
4일 오후 5시50분 캐리어 하청노조와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산하 조합원 등 100여명은 광주 광산경찰서 정문 앞에 모여 '한승륙 조합원 경찰폭행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광산경찰서장 면담'을 요구했다. 
한승륙씨(34. 캐리어하청노조 조합원. 광주시 서구 풍암동)는 4월29일 새벽 공장점거농성중인 동료조합원들을 돕기 위해 공장담을 넘었다가 공장안 관리직원과 용역 '구사대'에게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넘겨져 경찰기동대 봉고차 안에서 다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현재 조선대 병원에 입원중이며 '때리지마. 경찰이 무서워'라고 소리치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시민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그는 "형사 하나가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며 손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내가 때리지 마라고 했더니 내 머리를 당겨 차량 철망에다 대여섯 차례 부딪히게 했다. 다시 뺨을 몇 차례 때렸고, 심한 욕을 하면서 경찰 안전모를 씌운 채 쇠파이프로 내 머리를 수도 없이 때렸다. 다시 머리 숙이라고 한 뒤 발로 마구 차고 짓밟았다. 지금도 그 얼굴들 다 기억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날 광산경찰서 정문을 봉쇄하고 있던 전경들을 현장지휘중이던 조순창 경비계장은 '경찰은 억울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기자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대우차 사태 이후 자꾸 경찰한테 폭력혐의를 떠넘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회사측이 '캐리어 직원이 담 넘어 들어온 조합원 한 명을 붙잡았다'는 신고를 해와 출동했으며 공장 안에서 형사들과 캐리어 직원들이 다 보는 가운데 한승륙씨의 옷을 벗겨보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그를 넘겨받기 전에 이미 '맞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그는 한승륙씨가 탔던 봉고차는 전경이 아닌 형사들이 타는 차량이기 때문에 헬맷이나 쇠파이프는 있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경찰과 민주노총 사이에 '경찰의 집단폭행 의혹'에 대한 입장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이날 광산경찰서장이 면담에 응했다. 조합원들이 경찰서 앞에서 면담을 촉구한지 1시간여 만에 면담이 이뤄진 것이다. 
면담은 강진성 광산경찰서장과 정보계 형사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관계자 등 대표단 5명, 그리고 경찰측에서 불렀다는 광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산경찰서 회의실에서 열렸다. 
대표단은 당시 경찰봉고차에 탔던 형사들의 명단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지만 강서장은 '밝혔다가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이사를 가야할 판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며 공개불가 입장을 밝혔다. 
봉고차 안 쇠파이프 여부에 대해서 강서장은 조합원들로부터 회수한 쇠파이프 23개를 그 차에 실으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말을 해 '봉고차 안에는 쇠파이프가 없었다'는 애초 경찰측 주장을 뒤엎었다. 경찰헬맷에 대해서도 강서장은 '기동대는 항상 갖고 다닌다. 형사들은 헬맷 없다'고 말했다. 
강서장의 당시 정황설명을 요약하면 당시 경찰은 공장에 상주한 것이 아니라 회사측 신고를 받고 40분쯤 뒤에 현장에 도착했고 회사측으로부터 한승륙씨를 넘겨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옷을 벗겨 확인했더니 온몸이 흙투성이고 이미 무수하게 맞아 있었다는 것이다. 한승륙씨는 이미 회사측 직원들에게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가 있어 이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강서장은 한승륙씨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아침식사 다 했고, 아무 이상없이 진술 다 했는데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관계자들이 면회를 다녀간 뒤 점심을 먹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한승륙씨가 병원에서 친형에게 전화를 걸어 '형. 나 좀 도와줘. 옛날 병이 재발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조대병원 박모 의사는 CT촬영 결과 '머리부분 이상없다'고 했고 정모 의사도 MRI촬영 결과 '뇌출혈 및 구타 흔적 없다'는 소견을 내놨다고 밝혔다. 강서장은 특별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 의사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시민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한승륙씨의 담당의사 송진규 교수는 'CT촬영 결과 머리에 외상은 없지만, 뇌 전두부쪽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됐다'며 '이것은 한씨의 주장대로 헬맷을 쓴 채 맞았을 경우 가능한 증상으로, 머리 전체로 충격이 퍼지다보니 외상없이 뇌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강서장이 밝힌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대표단은 지난 1일 오전 공장점거농성단이 사측의 공장진입 현장에서 캐리어 직원들이 공포탄과 최루분사기를 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어떻게 일반인들이 경찰장비를 지닐 수 있는지를 추궁했다. 강서장은 '경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경찰개입을 부인했다. 
공장 안팎 경찰병력 상주 의혹에 대해 강서장은 동향파악 차원에서 2명의 정보계 형사를 교대로 근무케 했다고 말했다. 1일 공장진입 당시 경찰이 대비하고 있었다는 대표단의 의혹에 대해서도 강서장은 '우리는 신고에 의해 출동했다, 진입 당시 경찰병력은 없었다. 단 체포영장이 나와 있는 조합원 4명 때문에 경찰차가 공장에 들어간 적은 있다.'고 답했다. 
강서장은 '캐리어 토마스 사장이 수차례 공권력 투입을 요구했지만 대우차 사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투입하지 않았다'며 경찰은 폭력사태를 피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대표단은 '한승륙씨 사태에 대해 경찰은 전혀 상관없다는 입장으로 알고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면담을 끝냈다. 
면담 결과 강서장이 직접 '봉고차 안에 조합원들로부터 회수한 쇠파이프 23개가 있었다'고 인정해 애초 경찰측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의사 소견 내용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캐리어 '직장폐쇄'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공장안에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고 실제 목격했다는 조합원들이 있어 캐리어 폭력사태에 대한 경찰측의 개입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와 금속연맹은 이날 오후 4시 캐리어 정문 앞에서 '캐리어 사측과 경찰측의 5월1일 캐리어 하청노조에 대한 폭력만행'에 대한 기자회견과 규탄집회(▶사진참조)를 개최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05일20시31분 KST

■전남경찰청 캐리어폭력사태 공식입장 밝혀 
전남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株)캐리어 하청노조 불법파업 관련 진상'(전문보기 ▶http://www.jnpolice.go.kr/carry.htm)이라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민주노총 등이 제기하고 있는 '캐리어폭력사태 경찰개입 의혹'을 공식적으로 반박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금속연맹 등 노동단체에서는 노조원 연행과정에서의 [경찰가혹행위], 농성자 해산과정에 [사복부대 투입] 등 허무맹랑한 허위사실을 인터넷 및 언론매체에 공개, 경찰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 했다며 민주노총의 의혹제기를 '공권력 무력화 시도'라고 규정했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한승륙씨(34. 캐리어하청노조 조합원. 광주시 서구 풍암동)에 대한 의사 소견 부분에 대해서 전남지방경찰청은 '5월4일 15:30 정00, 송00 의사의 소견이 일관성이 없는 것과 관련 방사선과 의사 진료부장을 참석시키고 최초 촬영한 CT, MRI 필름을 판독한 바 '이상이 없다'는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를 확인하고, 병원장 직인이 날인된 송00의사 명의 [소견서] 발부'했다고 밝혔다. 한승륙씨가 경찰조사를 받다가 '머리가 아프고 구토기운이 있다'고 호소했음에도 경찰이 이를 묵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런 사실이 없고 그를 면회한 민주노총 관계자들도 '외상치료를 요구한 적은 있으나 두통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난 1일 오전에 일어났던 공장점거농성단에 대한 사측 직원들의 집단폭행과 해산 과정에 경찰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지난 30일 오후부터 공장 안에서 노사협의가 진행중이어서 '경찰에서는 대화로 원만히 해결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서 공포탄과 최루분사기가 동원된 것을 목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공장에 진입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독수리마크가 새겨진 모자 등 경찰복장과 유사한 차림으로 경비봉 1개씩과 가스총 1정, 가스분사기 1정을 소지하고 진입하였다'고 밝혀 경찰과는 관련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장에 투입됐던 경비업체 박00(가스총 소지), 김00(가스분사기 소지) 등의 자술서를 통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이후에도 경찰에서는 평화적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 폭력 시위는 엄정 대처할 것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국민여론을 호도하여 경찰명예를 훼손,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혀 '진실'을 둘러싸고 노동단체와 격렬한 공방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지난 4일 강진성 광산경찰서장과 면담한 결과 애초 경찰의 주장을 뒤엎는 '경찰 봉고차 안에 쇠파이프 23개 있었다'는 사실확인은 집단폭행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단서라고 보고 있다. 한승륙씨와 함께 경찰 봉고차에 탔던 형사들을 밝혀내는 것도 진상조사에서 중요하게 보고 있다. 지난 1일 공장안 폭력사태 현장의 공포탄과 최루발사기 등에 대한 세밀한 진상조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와 금속연맹, 캐리어 하청노조는 이번 면담내용과 노조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정밀검토해 검찰고소 등 법적 대응을 신중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광주=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06일15시03분 KST

■경찰에 둘러싸인 5·18 21주년 기념식 
5·18 묘역 정문에서 학생들과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남대 학생들이 기념식장에 들어가려는 것을 경찰이 막고 있었다. 출입증이 없다는 까닭이다. 일반시민들은 별다른 제지없이 출입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경찰의 통제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인터넷방송국 캐스트러시 국원들로 기념식 촬영을 위해 왔다고 했다. '5·18민주유공자 예우법'의 국회통과가 무산되어 이에 격앙된 5월단체 회원들과 정치인들 간에 충돌이 예상되어 묘역 주변은 사복전경과 경찰로 가득했다. 결국 학생들은 40여분 동안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야 들어갈 수 있었다.
5·18 민중항쟁 21주년 기념식은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광주시민들과 윤영규(5·18기념재단 이사장) 5·18 21주년 기념행사위원장, 조비오 신부, 김중권 민주당 대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 이한동 국무총리, 이근식 행자부 장관, 고재유 광주광역시장, 허경만 전남도지사 등 정부관료와 정치인, 사회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회창 총재와 김중권 대표, 홍사덕 의원이 나란히 분향과 헌화를 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식장에 장엄하게 퍼지면서 여러 인사들이 차례로 헌화했다.
윤영규 행사위원장은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5·18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엄중히 항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이 시간 5월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착잡한 심정이다"고 밝혔다. '5·18민주유공자 예우법'이 정치권 논리에 묶여 국회통과가 무산된 것에 대해 여야 정치인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유감과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이회창 총재와 김중권 대표는 따가운 햇살 탓인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한동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정부와 국회는 5·18민주유공자 예우법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민의에 따라 조속히 처리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5·18묘역의 국립묘지 승격과 여러 기념사업들이 더욱 많이 추진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해 광주 민심을 붙들려는 모습이었다.
문병란 시인의 5·18 헌시 '찔레꽃 만가(輓歌)'가 낭독되고 기념식이 끝났다. 이회창 총재는 수행원들과 함께 직접 묘역을 돌았다. 이총재는 세 군데 묘 앞에서 잠시 설명을 듣고 유영봉안소로 발길을 돌렸다. 이동하면서 이총재는 주변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총재는 유영봉안소에서 박관현(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윤상원(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사살됨) 열사 등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듣고 봉안소 안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또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이총재가 봉안소에서 나와 묘역입구 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5월단체회원으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갑자기 이총재에게 할말이 있다며 다가가려 했다. 그는 이총재를 둘러싸고 있던 수행원들에 의해 순식간에 떠밀려 구석진 곳으로 몰렸다. 수행원들은 "오늘 하루만 참소. 불미스런 일 있으면 안되잖아."라며 그를 봉쇄했다. 이총재 일행은 곧바로 묘역입구로 빠져 나왔다. 입구 밖에서 동광주병원 노조원들이 고용승계보장과 진정한 오월정신계승을 주장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금새 입구에 배치되어 있던 사복전경들에 의해 포위되었고 이총재 일행이 지나가도록 사복전경들이 길 양옆으로 쭉 들어섰다. 노조원들을 사복전경들이 둥그렇게 둘러싸자 노조원들은 선전물을 두 손 높이 들었다. 사복전경들은 이것을 가리기 위해 똑같이 두 손을 들었다. 이총재 일행은 금새 입구를 빠져나갔고 잠시후 경찰도 철수했다.
기념식에 참석했던 정치인들이 모두 떠나자 묘역은 활기를 되찾고 수많은 광주시민과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자유롭게 순례를 했다. 묘역 곳곳에서 단체순례단들이 오월영령들에 참배하고 진지하게 항쟁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이 보였다. 정치인들은 떠났고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은 정치인과 다른 방식으로 5·18 21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18일16시10분 KST

■광주 금남로는 또다시 해방구! 
광주 금남로는 다시 해방구다. 5월 17일 오후 7시를 즈음해서 광주 도청앞과 금남로 일대는 '해방'이다. 5·18 민중항쟁 21주년 기념 전야제가 열리는 도청앞과 금남로의 아스팔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방구를 이뤄내고 있다.
▶[관련기사]경찰에 둘러싸인 5·18 21주년 기념식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 노조원들이 구속되고 폭행을 당한 캐리어하청노조, 기나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광주병원 노조, 한국통신 계약직노조가 준비한 사진전시회. 범민련이 마련한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두 정상과 멋진 포즈를'이라는 기념촬영 행사, 보라빛 스카프를 두른 민가협 회원들의 '공동체 실현을 위한 주먹밥 나누기'행사,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 사진 전시회. 우리 사회의 시대적 상황들이 총집결한 듯한 금남로에는 금새 사람들로 가득찼다. 금남로 곳곳에 설치된 전시물들은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끊임없이 잡아 끌었다.
도청앞 무대에서 남총련 노래단 '한반도'가 나와 흥겨운 노래공연을 펼치자 시민들은 무대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대앞 아스팔트 위에는 금새 사람들로 넘쳐났고 전야제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집체극 [오월의 길]이 막을 올리자 시민들은 천천! 히 80년 5월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집체극은 해결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오월정신 계승을 통해 극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5·18기념행사가 비판받아왔던 행사의 이벤트성과 보여주기식 공연 형태를 거부하고 항쟁의 주체인 시민들의 참여를 중심에 두고 마련된 것이다.
80년 5월 당시 차량시위와 횃불시위가 재현되었고 예비역 대학생들로 이뤄진 계엄군도 도청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항쟁하던 시민들은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쓰러지고 그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듯 흰 꽃으로 꾸며진 상여가 무대 공중에 떴다. 오월정신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 5·18 가짜 유공자 사건 등이 나레이션과 대형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왔다. 과거 5·18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새 각오이다. 무대위의 오월 영령들은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고통받는 농민들, 일방적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동자 등 민중의 요구들을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집체극은 어느새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공중에 매달려 있던 상여는 다시 무대로 내려오고 오월영령들은 무명열사신위와 민주인권열사신위를 앞세운 채 상여를 들고 무대앞으로 걸어나왔다. 무대를 내려온 상여는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오월의 길]은 무엇인가에 화답했다.
본행사 중 윤영규 5·18민중항쟁 21주년 행사위원장?인사말을 통해 "5·18 정신은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통일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오월정신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만식 제주도 행정자치위원회 4·3 특별위원장은 연대사에서 "광주시민과 제주도민은 끈끈한 연대의 정신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9시 50분쯤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시민들은 모두 일어서 전야제의 마지막 차례인 대동한마당을 즐겼다. 시민들은 대동정신을 재현하는 강강술래를 하면서 매우 즐거워했다.
흥겨운 대동한마당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난 오미란씨는 "우리 또래 30대들의 표정은 어둡다"라는 의외의 말을 했다. 그는 "이렇게 기념행사장에 와 있지만 기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무엇인 그들을 기쁘지 않게 했을까? 그는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으니" 그렇다고 했다. 시민들이 긴장감 갖지 않고 거리에 나올 수 있는 건 좋은데 80년 당시의 주역들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의 빚'일거라고 말했다.
이번 21주년 전야제는 예전과는 달리 축제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신남수(24. 용봉동)씨는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서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5·18이 축제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퍼지는 것 같다"며 "5·18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시민들이 제기할 수 있는 오월정신"이 거듭나야함을 강조했다.
광주 / 글 =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그림 = 하니리포터 최인수 기자 artoonist@hanmail.net 
편집시각 2001년05월18일14시50분 KST

■녹색조끼를 입은 '오월의 빛'
해마다 5·18이 다가오면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은 수많은 참배객들이 몰려온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대학생을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순례단을 구성해 망월동을 찾는다. 그들은 단지 대규모로 지어진 5·18묘역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다. 80년 당시의 항쟁을 알고자, 그 정신을 배우고자 망월동을 찾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묘역을 직접 안내하고 항쟁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안내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 곳곳에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망월동 5·18묘역을 찾아오는 5·18항쟁주간조차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항쟁주간에 5·18묘역을 방문했다면 '녹색조끼'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묘역 곳곳에는 녹색조끼를 입은 젊은이들이 친절하고 자세히 항쟁의 역사를 설명하며 묘역순례를 돕는다. 이 녹색조끼의 젊은이들은 5·18 시민봉사단 '오월의 빛'회원들이다.
'오월의 빛'은 지난 99년 3월6일에 회원 25명으로 창립되었다. 이들은 항쟁주간에 5·18묘역 안내를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위한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올해도 변함없이 '오월의 빛'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단을 모집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도 '오월의 빛'은 5·18묘역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과 타지역 순례단을 위해 더운 날씨에도 밝게 웃으며 묘역안내와 항쟁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항쟁이 일어났던 80년에 태어난 박현숙씨.(호남대 환경원예학과) 따가운 햇살에 얼굴이 탔는지 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 있었다. 묘역 입구에서 안내를 하고 있던 그는 더운 날씨를 잊게 하는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열심이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선뜻 지원서를 쓴 그는 5·18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수줍어했다. 그는 '오월의 빛' 활동을 하면서 광주시민으로서 5·18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게 있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는 정말 순수한 분노를 지닌 듯 했다. 그는 단순한 분노에 그치지 않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며 '4대 과제'를 역설했다(?).
그가 말한 '4대 과제'는 ① 암매장 당한 사망자 발굴작업 및 신원미확인 사망자 재확인 ② 학살책임자 명확히 규명하고 처벌 ③ 5·18민주유공자 예우법 무산 등 정치권의 잘못 비판 ④ 통일이다. 결석사유서를 내고 수업도 못 들어가고 있지만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그가 제시한 '4대 과제'는 꽤 설득력이 있다.
그는 5·18정신의 전국화가 더딘 상황에 대해 가장 먼저 언론을 꼬집었다. 처음부터 5·18을 왜곡, 축소하고 심지어 은폐까지 자행한 언론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으로 국사교과서가 문제라고 했다. 국사과목은 선택과목이 되버렸고 5·18에 대한 내용은 단 몇줄 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이 5·18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며 퍽 안타까워했다.
그는 주위의 친구들도 5·18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오월의 빛'활동이 끝나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5·18을 알리겠다며 포부를 밝히는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남동생도 5·18묘역에 꼭 데려오고 싶어하는 그에게 5·18을 알려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는 나중에 자식에게도 꼭 5·18을 알려주겠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를 끝내려는데 그가 한마디만 더하겠다고 해서 나는 볼펜을 다시 잡았다.
"내년에도 '오월의 빛'활동을 할 거에요."
2002년 5·18 22주년에 5·18묘역을 방문하면 꼭 녹색조끼를 입은 '오월의 빛'을 찾길 바란다. 80년에 태어난 박현숙씨가 거기 서서 맑은 눈웃음으로 그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 때는 그의 눈에 더 깊어진 5·18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 장애우를 대신해 전화를 걸어주는 그의 모습에서 '오월의 빛'을 보았다면 거짓말일까.
광주 =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20일15시07분 KST

■(주)캐리어 난동에 짓밟힌 언론자유 
지난 21일 아침 (주)캐리어 정문 앞에서 언론자유는 '구사대'폭력과 경찰의 '수수방관'에 짓밟혔다. 21일 아침 7시쯤 캐리어 하청노조와 청년진보당, 전국학생회협의회(전학협) 소속 대학생 등 50여명은 캐리어 정문에서 선전전과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 공장 안에 있던 일부 캐리어 관리직원과 용역들로 이뤄진 '구사대'들이 정문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고 있던 [대학생신문] 김조영혜 기자에게 '사진 찍지마라'며 시비를 걸어왔다.
김조영혜 기자가 사진을 계속 찍자 공장 안에 있던 '구사대' 300여명이 몰려와 캐리어 하청노조의 농성장인 천막을 부수고 주변에 걸려 있던 프랭카드를 찢었다. 이 과정에서 '구사대'는 하청노조 조합원와 연대농성중인 대학생 등 50여명을 힘으로 몰아부치면서 이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다.
민주노총 봉고차 위에 올라가 이 장면을 캠코더에 담고 있던 하니리포터 조상영 기자는 순식간에 '구사대'에 의해 허리가 꺾이면서 봉고차 위에서 끌어내려졌다.(▶[사진참조]) 직후 조상영 기자가 '구사대'에게 캠코더를 탈취당하고 폭행당해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사대'는 역시 봉고차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김조영혜 기자에게 심한 폭언을 하고 목에 매고 있던 카메라의 줄을 끊어버리고 탈취해 갔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이날 10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상황을 계속 지켜보기만 하던 경찰은 오후 2시쯤 '폭력사태를 막는다'며 집회대오 50여명을 포위하고 '구사대'로부터 격리했다. 현장에 있던 하청노조원과 청년진보당원들은 이러한 경찰의 행위를 실제 '감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전한다.
오마이 뉴스 강성관 기자는 이 장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려다 '구사대'로부터 "너 뭐야"등 폭언을 듣고 그들에게 '기자증'을 보여주었다. '구사대'는 강기자의 '기자증'을 보더니 "이런 거 필요없어"라며 구겨버리고 카메라를 탈취했다. 강기자가 '구사대'에 항의하고 카메라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강기자의 안경과 핸드폰이 파손되고 약간의 찰과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
강기자가 탈취를 목격했던 경찰에게 카메라를 찾아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와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강기자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강진성 광산경찰서장에게 피해상황을 설명했고 강서장은 "나중에 와서 피해자조사를 받아라"고 말했다. 강기자는 26일 오전 광산서에 가서 피해자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조영혜 기자는 50여명의 대오 안에 있다가 '구사대'에게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가서 집단폭행을 당했다. 그는 점퍼 안에 숨겨서 매고 있던 카메라 가방을 탈취당하고 '구사대'의 계속되는 집단폭행에 그만 정신을 잃었다. 주위에 있던 (주)캐리어 여성직원들이 쓰러진 그를 강제로 공장 안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 때 '구사대'들이 필름을 찾으려고 탈취한 카메라 가방을 뒤지자 김조영혜 기자는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고 결국 여경들에 의해 풀려날 수 있었다. 그의 카메라 가방은 이미 풀어헤쳐진 뒤였다.
이날 (주)캐리어측의 폭력사태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청년진보당 봉고차가 '구사대'에 의해 타이어가 펑크나고 유리가 박살나고 지붕이 내려앉는 등 심하게 파손되었다.
(주)캐리어의 폭력사태는 이번으로 벌써 네번째다. 특히 지난 5월1일 노동절 아침에, 공장점거농성 중이던 하청노조원들이 캐리어 '구사대'의 집단폭행에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후송된 사태는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의 거센 분노를 산 적이 있다.
(주)캐리어는 지난 4월25일 '직장폐쇄'이후 공장 안 출입을 통제하면서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방해까지 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캐리어 하청노조의 공장점거농성을 취재하기 위해 공장 담을 넘었던 하니리포터 최대현 기자는 캐리어 관리직원들에게 붙잡혀 카메라를 빼앗기고 가방까지 수색당했다. 그는 경찰에 넘겨져 경범죄(무단침입)로 범칙금 2만원을 냈다.
캐리어 하청노조원이고 하니리포터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트 '워킹보이스'에서 활동하는 조상영 기자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협박성 전화와 집회현장에서 '구사대'의 폭언과 욕설 등에 시달렸다. 지난 4월29일 새벽 조상영 기자는 하청노조원들이 공장점거농성 중인 동료들을 돕기 위해 공장 안 '구사대'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캠코더에 담고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되어 형사기동대 차량에 감금된 적이 있다.
조상영 기자에 따르면 21일 현장에서 카메라 촬영 중이던 모 방송국 기자에게도 '구사대'가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댔고 다른 방송국 기자들은 (주)캐리어의 취재거부로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한편 신문개혁국민행동광주전남본부(본부장 임동욱)는 (주)캐리어 측의 기자폭행과 카메라 탈취 등 만행에 대해 23일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기자의 취재활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침해하고 저지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며 (주)캐리어의 공개사과와 책임자 문책, 부상자 및 파손된 차량 등에 대한 배상, 탈취 카메라 복귀, 사건 관련자에 대한 경찰의 신속한 수사 등을 요구했다.
지난 25일 오후 5시20분에 광주 민언련 회의실에서 열린 신문개혁국민행동광주전남본부 7차집행위원회는 이번 (주)캐리어의 취재기자 폭행사태에 관한 대책회의로 진행되었다.
이 회의에서 차혁렬 참여자치21 사무국장은 (주)캐리어 모그룹인 미국 UTC에 공개항의서한 보내기와 미국 현지 언론에 이번 사태에 대한 기사투고를 제안했다. 한편 이 회의에 참석한 하니리포터 조상영 기자는 "맞은 데가 아직 아프지만 끝까지 캐리어 하청노조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구사대'에게 캠코더 4대와 디지털 카메라 1대를 빼앗겨서 오늘은 자동카메라를 가져왔다"며 "그래도 끝까지 기록을 남길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를 마치고 임동욱 본부장을 비롯한 집행위원들과 오마이뉴스 강성관/이주빈 기자, 하니리포터 조상영 기자 등 10여명은 광주우체국 앞과 충장로 일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전단지 3000여 장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사진제공]:'대학생신문' 김조영혜 기자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5월26일13시10분 KST

■블레어와 대처리즘과 '조선' 
영국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사상 최초로 재집권했다는 소식으로 국제면이 뜨겁다. 많은 신문들이 이 소식을 다루면서 노동당 압승의 원인과 의미 등을 헤아려주고 있다. 자칭 1등신문 조선일보는 언제나 그렇듯이 좀 튀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단 6월8일치 국제면에 실린 기사제목에서부터 충격을 준다.
[英총선, 노동당 압승...블레어 再집권 '右傾化정책' 英국민 압도적 지지]
내 눈은 '右傾化정책'이라는 단어를 보고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지식과 교양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영국민들이 블레어의 '우경화정책'에 압도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물론 영국 노동당수이자 총리인 토니 블레어의 정책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그가 이끈 노동당은 지난 1997년 총선에서 '제3의길'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들고 나와 전체 의석의 2/3에 가까운 419석을 차지했다.
당시 영국민들이 블레어의 노동당에 그런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은 대처리즘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었다. 97년 총선 당시 블레어는 '철의 재상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대처리즘'을 추종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솔선수범,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 검소함과 소박함 등 대처의 통치스타일과 인품에 대한 존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덧붙이자면 시장의 역동성에 기반한 경쟁력 강화라는 대처리즘의 일부 정책에 대한 지지일 뿐이다.
서구 좌파에게 있어서 절망의 시기인 1980년대는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던 때다. 그 중심에는 복지삭감과 시장원리의 극대화를 꾀하는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있었다. 이 속에서 서구 좌파는 역사의 폐기물 취급을 당했고 특히 영국 노동당은 더욱 그랬다. 대처는 1979년 "파업으로부터 국가 경제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정권을 잡고 강력한 통치를 펼쳤다. 그는 노동법을 고쳐서 부당한 파업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노조에 배상책임을 묻도록 하는 초강경수를 두며 경제성장정책을 전개했다.
또 노동자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기업측의 권한은 확대하고 국영화된 기업들을 민영화했다. 3선까지 한 대처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빈부격차 심화와 빈곤층의 확산 등 원인으로 결국 정권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대처리즘에 대한 영국민들의 거부표현은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압승을 안겨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내용에 눈을 감고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블레어는 과거의 노동당이 좌파적 이념에 치우쳐 중산층들의 지지를 못 받았던 실패를 거울삼아 '신노동당', '제3의길'을 외치며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주요 이유로는 집권기간 중 인플레이션 억제와 실업률 감소, 노조 힘 약화 등 보수당 출신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전 총리가 펼친 '대처리즘'을 잘 구현한 점이 꼽힌다."
블레어의 노동당의 정책적 이념은 '제3의길', 중도좌파,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 등으로 표현된다. 이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레어의 노동당은 전통적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이다. 블레어 노동당은 97년 집권 전부터 좌파로부터 '우경화'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비판은 좌파의 관점에서 나올 수 있다. 우파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블레어의 노동당은 좌파이다. 이런 이유로 블레어의 노동당이 '우경화'되었다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극우의 대변지인 조선일보가 블레어의 노동당을 '우경화'라고 표현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면 그 특유의 '좌파활용술'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남의 정치적 성향까지도 이용해 먹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경화'였을 것이다. 오른쪽으로만 가야 옳은 것이다는 조선일보식 발상. 좌파들을 사냥해왔던 조선일보는 '우경화되어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우경화가 옳다. 그러니까 너네들은 오른쪽만 봐야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 기사가 이번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 원인으로 내놓은 '대처리즘을 잘 구현한 점'은 '우경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쓰인다. 블레어가 이번 총선을 통해 '대처리즘을 극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는데 만약 영국민들이나 토니 블레어가 조선일보의 이 기사를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Oh, my God!?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6월09일14시58분 KST

■분수대 위의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전남도청앞 분수대 위에서 터져나왔다. 4일 낮12시 5분쯤 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원 3명이 전남도청앞 분수대를 기습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분수대의 강한 물줄기를 뚫고 분수대 위로 올라가서 비정규직 철폐, 불법 사업주 캐리어 처벌, 노동운동 탄압 중단, 구속자 7명 석방 등이 적힌 프랭카드를 펼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주변에 있던 몇몇 기자들도 분수대로 뛰어갔다.
조합원 3명이 분수대 위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계속하자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전남도경찰청 안에 있던 전경들이 투입되었다. 분수대에서 계속 물이 뿜어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진압에 들어갈 경우 서로 부상당할 우려가 있어 즉각적인 해산작전을 펼치지는 못했다. 현장에 출동한 형사가 조합원들에게 분수대에서 내려오라는 경고를 하고 이내 전경들의 해산작전이 시작되었다. 분수대의 물줄기가 계속 뿜어나오는 상황에서 해산작전은 2분 안에 끝났다.
분수대에서 끌려나온 조합원 3명은 흠뻑 젖은 몸으로 경찰에 의해 광주동부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캐리어사내하청노조의 기습시위는 이렇게 15분여만에 끝났다.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있는 (주)캐리어는 제조업사업장 중 최초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주)캐리어에서는 지난 4월29일 한승륙씨(사내하청노조)에 대한 경찰의 폭행 의혹을 비롯해 5월1일 노동절 아침 캐리어 구사대에 의한 폭력사태, 5월17일과 21일 천막농성장 폭력행사와 취재기자 폭행 등 수차례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주)캐리어는 지난 5월21일 광주지방노동청의 불법파견 시정지시와 2년 이상 근무자에 대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캐리어는 파업 중에 지역 공업고등학교 실습 학생들을 대체근로에 투입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비정규직 노동자 188명을 해고하는 등 사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는 (주)캐리어에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승계, 노조인정, 2년 이상 근무자에 대한 정규직 채용, 한승륙 조합원 경찰 폭행 책임자 처벌, 용역깡패 폭력만행 즉각 구속, 폭력사태에 대한 경찰 직무유기 책임자 처벌, 광주지방노동청의 시정지시 이행, 구속자 7명 석방 등 요구사항을 내걸고 이번 기습시위를 벌이게 되었다고 밝혔다.
글/사진 =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7월04일14시55분 KST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 http://access.jinbo.net)는 지난 9일 여러 시민사회단체에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 서명운동의 목적은 은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책 마련. '이동권'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동권연대는 '이동권'을 장애인에 대한 특수교육과 재활서비스의 효과를 높이고 장애인 스스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 '쟁취의 대상'이다.
지난 1월 22일 서울특별시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지체장애인 3급인 70대 노부부가 장애인용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다가 로프철심이 끊어져 남편은 크게 다치고 부인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설치한지 6개월밖에 안된 사고 리프트는 잦은 고장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차례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 이 사고가 던진 충격은 피해당사자 보상문제 뿐만 아니라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사고 직후 장애인 및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오이도역장애인수직형추락참사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부에 피해보상, 관련법률개정, 공식사과 등을 요구하였고, 또 서울역 철로 점거농성과 정부종합청사 앞 '휠체어1인시위'를 펼치면서 국민적 관심을 이끌기 위해 애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복지팀 조사결과에(2000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의 64.5%가 집밖에 나가 활동하는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권연대가 각 역의 편의시설 현황표를 재구성하여 만든 자료에 따르면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된 역의 비율이 철도청 43.7%, 도시철도공사 54%, 서울지하철공사 37.3%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철도청이 운영하는 국철 구간의 경우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2.9%로 나타나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의 열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동권 연대는 이번 서명운동을 통해 지하철 모든 역사에 승강기 설치, 장애인 대중버스 이용대책 강구,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개정·강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정부와 장애인단체가 함께 협의할 '(가칭)장애인이동권위원회'를 설치 등을 요구한다.
이동권연대는 오는 14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인이동권확보를위한백만인서명운동'을 전개한다. 또 23일 오후 1시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장애인이동권확보를위한공익소송기자회견'을 하고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서울시청별관 옆 지하철역 입구에서 '장애인이동권확보를위한무기한천막농성'을 계획하고 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7월12일16시18분 KST 

■떴다! '추미애 지지'사이트!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이어 민주당 추미애 의원에게도 비슷한 지지모임이 생겼다. '추미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추사모)이 사이버공간에서 결성된 것이다.
'추미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추사모) ▶http://www.freechal.com/withchoo/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http://www.nosamo.org/nomu/index.html
[관련기사] 노사모와 노무현,대전에서 만나다
지난 7월12일 인터넷종합서비스업체 (주)프리챌 사이트에 둥지를 튼 추사모에는 현재 회원 8명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는 인사모(인물과사상독자모임) 회원들이 주로 찾아오고 있다. 추사모 사이트를 개설한 김동균씨도 인사모에서 활동 중인 회원이다. 사이트를 연지 며칠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회원수도 적고 사이트가 담고 있는 내용도 부족한 편이다.
추사모는 첫 화면에 "추미애와 함께 살만한 세상 만들기에 뜻을 함께 할 사람을 모시고 싶습니다. 지역차별, 성차별 등 모든 부당한 차별을 없애기에 함께 하실 분을 모십니다"라고 모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추사모 자유게시판에 소문을 타고(?) 들어온 회원들이 남긴 글을 살펴보면 추미애 의원에 대한 애정과 지지도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역감정 철폐에도..앞장서고..정부는 없어도 신문은 건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문열 같은 문제아 지식인들과... 문제아 신문들에게... 따끔하게..충고할 줄 아는.. 그런...강직하고..멋찐...언니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임니까? 할말은 하는 정치인...추미애 언니를 진정으로 따름니당" -뒤라스
"추 : 추미애 의원을 사랑하는 것은
사 : 사람다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요.
모 : 모두가 참여하여야할 우리모두의 의무이며, 권리라네." -조성용
"분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사람..손해 볼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추미애 의원! 인물과 사상이 훌륭하신 분이쉽니다.~ 사 랑!" -이승로
추사모 사이트 운영자인 김동균씨는 아직 초기단계인 추사모를 발전시키기 위해 추사모가 해야 할 일과 사이트 활용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추미애 의원(민주당 지방자치위원장)은 지난 3일 당 회의자리에서 "조중동 신문에 기고하는 필진들을 보면 언론의 사회적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 시대의 양식있는 지식인들이 언론의 지면을 할애 받아 성장한 뒤 곡학아세해서야 되겠느냐"고 발언해 지식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것은 조선일보에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소설가 이문열씨를 겨냥한 것으로 이후 '추미애-이문열 곡학아세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문열씨에 대한 추의원의 일침은 다음날에도 계속돼 "지식인들이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고 유명세를 이용해서 애매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번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인 것처럼 현혹시키는 말과 글을 쏟아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추의원은 지난 5일 술자리에서 자신과 이문열의 공방에 대해 동아일보기자와 논쟁을 하다 험한 말을 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이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조선일보 등 신문에 크게 보도돼 파문을 일으켰다가 사과발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날 추의원의 행동에 대해 '욕설은 잘못이지만 할 말은 했다'는 평가도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추미애의원 취중발언 파문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7월16일17시26분 KST

■일본의 양심적인 영화 한 편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 일본의 '양심적' 영화 한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교토 정도(定都) 1천200년 영화를 만드는 모임'이 제작해 지난 1995년 일본에서 개봉했고 같은 해 8월14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도 상영된 적이 있는 '아시안 블루'가 그것. 영화 '아시안 블루'는 1945년 8·15광복 직후 강제징용자 등 조선인 수천명을 태운 채 우리나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가 바다위에서 폭발, 침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른바 '우키시마호(浮島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일본군이 고의로 갑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고 당시 일본정부는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해 배가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992년 8월에는 한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이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사과 및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교토지방법원에 내기도 했다.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일본은 북쪽 가장자리 땅 아오모리 현(靑森縣)의 시모기타(下北) 반도에 있는 오미나토 항에 조선인 귀환자들을 끌어모아 강제로 승선시켰다. 이들은 일본군에 의해 일본 북해도 땅에 끌려와 노동력을 혹사당한 조선인 강제징용자들로 승선인명부에 기록되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우키시마호에 태워졌다. 따라서 당시 수장된 사망자 수 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승무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진상규명회(회장 전재진)' 등 시민단체는 사망자 수를 약 5천여명에서 7천여명까지 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우카시마호가 폭발하기 전에 일본 해군 300여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고 ●찢겨진 배의 갑판 등 철판이 바깥쪽으로 향해 있는 것은 폭발물이 배 안에서 터진 증거이고 ●일본정부의 발표대로 미군에 의한 촉뢰사고일 경우 있어야 할 높은 물기둥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일본군에 의한 피폭침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아시안 블루]는 이러한 '우카시마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죄의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는 1995년 일본 개봉 당시 30여만명의 관객을 끌었다.
이 영화는 지난 해 일본에서 우연히 광주시민연대(공동대표 김양래)와 만나게 되었고 제작자인 이토 마시아끼씨는 아무 조건없이 필름과 국내판권을 광주시민연대에 건네줬다. 이 영화는 지난 7월 수입통관을 마치고 현재 영화진흥공사와 문화관광부의 심의를 거치고 있다.
광주시민연대는 심의절차가 끝나는 대로 8월23일과 24일 광주와 서울에서 시사회를 열고 9월부터는 전국 극장에 상영할 예정이다.
1995년 종전 50주년을 기해 제작된 이 영화의 제작비에는 일본 각지에서 올라온 시민모금액 5천만엔과 정부지원금 2천500만엔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폰을 잡은 호리카와 히로미치 감독은 영화인생 초창기 '라쇼몽', '가케무샤', '7인의 사무라이'로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7월16일19시01분 KST

■'혁명'처럼 어려운 지역신문 개혁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문순)가 26일 광주 북구 문화의 집에서 「위기의 지역신문, 대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광주전남언론노조협의회와 부산경남언론노조협의회가 공동주최로 참가하여 각 지역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광주를 찾았다.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송정민 교수(전남대 신문방송학과)는 발표에 앞서 직접 겪은 일화를 통해 지역신문의 실태를 꼬집었다. 송교수가 IMF구제금융 시기 모 지역신문사주에게 경영을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맞을 거라고 말했더니 "당신이 교수만 아니었으면 큰일 났었 줄 알아라"는 '막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송교수는 발제를 통해 "광주지역에서는 1980년대 말 이후 '이상한 신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지방신문사가 많다는 점, 'IMF구제금융' 이후 신문사 경영이 어려워졌는데 신문사가 더 생겨났다는 점, 신문사 또는 그 모기업이 부도처리 되었음에도 신문 발행은 중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또 송교수는 "광주지역 신문의 독자 시장 점유율도 92년이래 줄곧 떨어지고 있고 재무구조는 지난 97년을 전후해 급격히 악화됐다"며 "한마디로 광주지역의 지방신문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거의 상실해 고사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신문발행을 고집하다 보니 "저널리즘의 본질이나 사회적 기능이 도외시되고 지면의 상업성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지역에는 10개의 신문사가 난립하고 있다. 이것은 인구규모나 경제규모 등을 따져 다른 광역시와 비교해 보면 현저하게 많은 수이다. 송교수는 심각한 경영파탄으로 인해 경제적 이윤 창출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신문사들이 난립하고 있는 까닭을 "광주지역 신문사주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권위를 갖고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했다.
송교수는 이러한 광주지역 신문의 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경영능력이 없는 신문사를 사회가 퇴출시키는 강력한 구조조정, 신문사들이 부조리를 통해 유지돼는 것을 막는 신문시장 질서 바로세우기, 신문사간 부분적 통합(예컨데 인쇄, 판매 등) 또는 특성화 통합이나 계열적 통합(통합 신문들의 내용을 특성화 또는 계열화), 지역신문이라는 정체성 세우기, 독자들의 감시 기능 강화 등을 제시했다.
발제를 끝내면서 송교수는 "지역신문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인 스스로 깨달아 직접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송교수는 "혁명같은 자기혁신이 없으면 지역신문의 개혁은 이룰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해 지역신문 개혁의 어려움과 절실함을 한꺼번에 전했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7월27일18시10분 KST 

■네티즌의 권리청원..'평화'
'부시 대통령과 미 행정부에 평화와 정의를 요구하라!'
사상최대의 테러사건에 대한 보복을 위해 '전술핵 사용'까지 배제하지 않은 미국의 군사행동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평화를 위한 전세계인의 행동이 인터넷을 통해 모아지고 있다.
청원사이트인 'ThePetitionsite.com'는 '평화와 정의를 요구하라!'CALL FOR PEACE & JUSTICE!는 주장을 내걸고 전세계인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조지 W.부시 대통령과 미행정부에게 모든 나라의 무고한 시민들(the innocent citizens of all nations)을 보호하는 정의를 청원한다는 내용의 주장이 명시되어 있다.
또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모든 거주자들의 시민자유와 미국 본토와 국외의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보복공격에 대해서 '어떤 보복 이전에 테러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간청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서명운동의 목적은 '보복이 아닌 평화와 정의를 요구하는 것'(We call for PEACE and JUSTICE, not revenge.)으로 정리된다.
이 사이트에 서명한 미국인 Pam Morris는 '복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뿐이고 더 많은 테러를 낳을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 미국인 Dawn Surratt는 '테러범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국제법상의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옳고,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탐욕 때문에 불행해진 나라들에 대한 외교정책을 바꾸는 것'이라고 적었다. 일본인 Tomoko Tada는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며 미국의 군사적 보복공격을 반대했다.
현재(한국시간 9월17일 오후3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일본, 덴마크, 인도 등 전세계 네티즌 6만7천여명이 이 사이트에 들어와 서명과 더불어 각자의 의견을 남겼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9월18일10시08분 KST

■언론권력, 마당극에 오른다 
언론권력이 마당극에 오른다. 신문개혁국민행동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언론권력의 과거와 현재를 풍자와 해학으로 보여줄 마당극 '신문고를 울려라'를 함께 연다. 마당극 '신문고를 울려라'는 언론권력의 추악한 과거를 끄집어 내 흠씬 두들기고 언론의 참된 역할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내용으로 마련된다.
신문개혁국민행동은 '정기간행물법 개정 촉구'와 '신문개혁운동기금 마련'을 취지로 이번 마당극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표현법, 눈 앞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극 전개, 대중적 미의식을 담고 있는 풍자와 해학 등 마당극 특유의 공연형태는 언론개혁이라는 다소 무거운 과제를 배우와 보는 이 모두가 기꺼이 나눠가질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마당극의 창작과 공연을 맡은 큰들문화예술센터는 80년대에 "양반상놈 따로없다", "노동의 새벽", "우리 땅에 우리가 간다" 등 농민,노동자의 삶을 다룬 마당극을 꾸준히 공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장권 1장값은 1만원이고 1장으로 2명이 마당극을 즐길 수 있다. 이 마당극에는 가수 강산에와 윤도현밴드가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마당극은 10월 9일 오후 7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입장권을 살 사람은 국민은행 832-01-0278-371(예금주:김미영/신문고) 또는 같은 은행 832-01-0268-822(예금주:신문고)계좌로 입금 한 다음 △송금인 이름 △주소 △연락처 △입장권 매수 등을 적어 이메일(aloe99@media.nodong.org)로 보내면 입금확인 후 우편으로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
공연 관련 문의는 민언련(02-3142-0700)이나 전국언론노동조합(02-739-7285) 사무실로 하면 된다.
하니리포터 조원종 기자 communi@hanimail.com 
편집시각 2001년09월19일18시22분 KST


<시민의 소리> 게재 기사 (2001년 4월~2001년 7월)

■'주둥이'의 족벌언론 꼬집기
승인 2001.04.08  00:00:00
신문의 날은 신문권력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날/ 건전한 언론매체로 거듭나길//
4월 7일 제45회 신문의 날을 맞이하여 전남대학교 봉지주변에서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전남대학교 언론개혁모임 [주둥이]의 기획 엽기이벤트가 그것. 기획전시회는 한겨레가 연재 중인 '언론권력 심층해부' 시리즈와 전국민적인 언론개혁 여론에 대한 조·중·동의 대응에 대한 내용들이다. [주둥이]가 마련한 이번 엽기이벤트는 신문의 날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지 않고 국민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되지 못했던 신문권력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신문권력이 그들의 추악한 역사를 반성하고 건전한 언론매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제삿상차리기로 진행되었다. 제사상에는 족벌언론을 꼬집는 '족발언론'표를 단 돼지족발과 편파보도를 뜻하는 '대파', 신문권력의 '일단 터뜨려, 아님말고..'식의 보도를 상징하는 '뻥튀기', 신문사세습을 표현하기 위해 조선일보 방씨일가의 계보가 적힌 바나나 등이 올려졌다.
- 아래는 행사 중 낭독한 조문 -
이제 2001년 4월 7일 신문의 날에 전남대 언론개혁모임 주둥이와 여러 시민들은 사죄없는 친일과거, 반통일 왜곡보도, 반민주 편파보도를 일삼은 너희 신문권력, 족벌언론 앞에 고하노라. 세월이 바뀌어 일제가 물러가고 지랄 같던 군부독재도 물러가고 국민들의 민주와 통일에 대한 열망은 하늘과 같이 끝날 데를 모른다. 산이 바뀌고, 물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나니 신문권력, 족벌언론 그대들의 뻔뻔한 낯짝이리라. 우리가 보건데 금일 우리의 나라에서 승냥이처럼 사악한 무리들이 민주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음은 길 잃은 귀신 같은 신문권력, 족벌언론이 앞잡이가 되기 때문이라. 세상의 모든 사악한 것들 앞에는 바로 신문권력, 족벌언론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지나가는 견공들도 익히 아는 바. 일제가 물러가니 미국에 달라붙고, 군부가 등장하니 군견도 아닌 것이 군견인양 군인에게 충성하고, 역사의 힘에 군부가 물러가고 조금 살만해지니 사악한 개들이 주인도 몰라보고 국민들을 물어 뜯는 형국이라. 오늘이 신문의 날이라 하여 꽃잎 날리고, 폭죽 올려 막걸리라도 한잔 씩 돌리며 잔치를 벌여야 할 판에 신문개혁을 열망하는 우리들이 모여 제삿상을 차려야 하는 것은 어찌 된 이유인가? 이제는 끝장을 내보자는 것이리라. 바라건데 신문권력, 족벌언론은 즉시 마음을 돌이키어 정론과 직필을 되잡아 국민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될지어다. 정론을 버리고 어디로 가며 국민을 떠나면 어디서 살리요. 굽은 펜과 사죄없는 추악한 과거는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니 슬프다 다시 부탁하노니 국민의 개혁여론을 명심하여 즉시 회개하여 망국의 죄에 빠짐이 없도록 할지어다. 만일 반성치 못하고 구차히 잔명을 보존한들 뒷날 국민의 분노가 두렵지 아니하며 창천이 밝으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너희 신문권력, 족벌언론은 잘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그리고 오늘 생일상인지 제삿상인지 모를 망측한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맑은 술과 음식 하나하나에 신문개혁의 마음을 다해 받들어 올리니 두루 섭취하시옵소서. 전남대학교 언론개혁모임 '주둥이'
/조원종 기자는 전남대 언론개혁 모임서 활동중인 시민기자입니다. 사진 모철홍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누가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가?
승인 2001.04.20  00:00:00
동아일보여!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 것은 진정 '과격한 학내분규'인가?/ 전남대 학생총회 7대요구안 2주일 넘게 답변 없어//
지성의 요람, 상아탑이 멍들었단다. 과격한 학내분규 때문이다. 17일치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는 가슴깊은 안타까움을 전한다. "툭하면 총장실 점거-감금-기물파괴-'지성 어디로'"라며 한탄한다. 동아일보는 왜 갑자기 값나가는 1면 Top을 대학관련 기사에 할애했을까? 예의 '과격한 학생들' 때문에 '대학의 최고 어른 격인 총장'나으리께서 집무실을 빼앗겨 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전한다.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재단의 일방적인 총장 유임으로 총장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숭실대에서는 교수와 학생, 노조관계자들이 퇴근길의 총장을 가로막은 채 퇴진을 약속하라는 시위가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퇴근저지'라고 일컫는데 동아일보는 기사본문에서는 '저지'와 '감금'을 다 쓰다가 기사제목에는 굳이 '감금'을 부각시킨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멍든' 대학의 모습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동아일보는 "왜 과격해지나"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놓고 나름대로 독자의 판단을 돕고 있다. 딴에는 형평성에 신경을 쓴다고 학생회측과 학교측의 입장을 비슷한 비중으로 싣고 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학생회측은 학교측의 부실한 운영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 모색보다 대화기피 등으로 일관하는 학교측의 자세가 자신들의 과격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학교측은 일부 학생운동권이 학생들을 결속하고 스스로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내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학생들과 정상적인 대화 자체가 무리란다.
덧붙여 "정치적 협상에 나서기 전 사회적 룰과 도덕적 룰을 먼저 생각하는 학생의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는 덕성여대 권순경 총장직무대리의 말을 교훈처럼 들려준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 그런데 그 교훈이 나에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는 건 왜일까. 나에겐 한 가지 경험이 있다. 지난 달 30일 내가 다니는 전남대에서는 「수업료 5% 삭감, 등록금 제도 개선, 국립대 발전계획 철회, 전남대 교육대개혁을 위한 학생총회」가 열렸다. 전체학생대표자대회에 상정된 안건이 가결되어 학생총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회칙상의 절차를 밟아 학생총회가 열린 것은 전남대 역사상 처음이었다. 최종인원집계 결과는 1915명이었다. 자유발언 시간에는 20여명의 학우들이 나와서 교육개혁에 대한 의견들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학우들의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된 7대 요구안을 총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학우들은 본부로 갔다. 20여 분을 기다리고 "총장님! 나오세요!" 라고 함성을 질렀지만 결국 총장 대신에 학생처장과 몇 몇 직원들이 나왔다. 수백 명의 학우들과 학우들의 대표자인 부총학생회장, 각 단과대 학생회장들은 결국 학생처장에게 7대 요구안을 전달해야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총학생회장은 요구안에 대한 답변을 빠른 시일 안에 요구했지만 학생처 직원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응.. 알았어.. 빨리 해줄게.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지.. 빠른 시일 안에.. 최선을 다해야지.." 부총학생회장은 계속해서 구체적인 답변기한을 약속해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빠른 시일 안에.."라는 대답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부총학생회장이 2주일 안에 답변 해달라고 하자 학생처장과 직원들은 본부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총회를 취재중이던 나는 학생처장을 뒤따라가 한번 더 물어봤다. "언제까지 답변을 하실 겁니까?" -'너 뭐야?'라는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쭉 훑어 보더니 하는 말-(고개짓으로 부총학생회장을 가리키며)"저 쪽에다 말했으니 거기서 물어봐."
7대 요구안을 전달한지 2주일이 훨씬 지났지만 나는 학교측의 어떠한 답변도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요구안의 내용들은 이미 작년에 학생처장 명의로 합의된 것들인데 학교측에서 "작년 일은 작년 일이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부총학생회장의 말은 "사회적 룰과 도덕적 룰을 먼저 생각"하라는 덕성여대 권 총장직무대리의 교훈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나는 그 물음표를 동아일보에도 던져주고 싶다. 동아일보여!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 것은 진정 '과격한 학내분규'인가?
/조원종기자는 전남대 언론개혁모임 '주둥이'에서 활동중인 시민기자입니다.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캐리어 파업 현장을 가다 <1신>
승인 2001.05.01  00:00:00
>>>지난 16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원들이 25일 밤 10시 30분 조립룸 점거농성에 돌입, 파업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전면 차단된 채 관리직 직원들과 대치하고 있으며 캐리어로 들어가는 모든 문은 굳게 닫힌 채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또 모든 언론사 기자들도 정문과 후문 등에서 공장안 취재를 거부당하고 있다. 25일 오후 4시쯤 공고된 '직장폐쇄' 불과 몇 시간 전 공장 안에 들어간 조원종 시민기자가 생생한 파업현장을 전해왔다. <<< 전국 제조업 사업장 최초 비정규직 파업/ 출입문 막고 경찰투입 촉각, 긴장고조/
25일 오전 10시 50분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단내 캐리어 공장. 지난 16일부터 캐리어 하청노조가 이곳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 파업은 전국 제조업 사업장 가운데 최초로 일어난 비정규직 파업이다. 캐리어 공장을 방문한 나는 정문 경비실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경비원은 캐리어 노동조합(정규직)이 아닌 하청노조(비정규직)와 연락하고 왔기 때문에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하청노조와 연락한 것은 소용없다며 들어가려면 캐리어 노동조합과 연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비실 앞에서 나를 구출하러(?) 온 하청노조측 사람들과 한창 실랑이를 벌였지만 경비원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나는 캐리어 노동조합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노조측 사람이 와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신분증과 방문증을 교환해주면서 들은 경비원의 당부. "하청노조 쪽에는 가지 말아요. 서로 입장 곤란해지니까.." 나는 노조 사무실에 가서 잠시 인사를 나눈 뒤 경비원의 입장을 곤란케 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막 집회를 마치고 천막농성장 쪽으로 오던 하청노조원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지난 2월 18일 출범을 선언하고 2월 22일 신고필증을 받은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2월 22일 (주)캐리어는 사내하청 노조 집행부 전원을 해고했다. 이에 하청노조측은 노조설립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임을 지적했다.
캐리어 하청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청우실업, (주)대명, 한보산업개발, 명신실업, 캐리어냉열, 광진실업 등 6개 용역업체에 의해 간접고용되어 이 업체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노동자들이다. 하청노조측은 지난 3월 용역업체인 청우실업이 작년 10월에 들어온 조합원들은 임금이 인상되어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며 '일이 없을 때는 즉시 나가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경석 사내하청 노조위원장은 비정상적인 노무관리와 정규직과의 임금과 처우 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면서 사측과 13차례의 협상(실질적으로는 4차례)을 했지만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는 캐리어 원청이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아 결국 결렬되었다고 말했다.
캐리어 원청측은 법적으로 하청노조측과 협상할 의무가 없다며 버티고 있다. 이 위원장은 파업 전 협상을 통해 기본약정서 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노동3권 보장 등 이미 노동관계법에 보장된 부분들에 대해 추상적인 합의만 이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파업 이후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 '무대응 전술'을 펴면서 조합원들을 지치게 하고 있고 경영진측의 보신주의 때문에 사태해결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하청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480여명이다. 캐리어는 808명의 정규직과 7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이다. 높은 이직률과 사측의 자료공개 거부 등으로 하청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정확히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같은 생산라인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달 평균 임금 68만원을(기본급+상여금) 받는다고 말했다. 정규직과의 임금차이는 2.5배에서 4배까지 벌어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여성노동자들은 한달 평균 60여 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어 월급여를 기준으로 보면 최저임금제에도 어긋나고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6개 용역업체에 간접고용된 상태이기 때문에 매달 임금에서 1인당 30∼40만원씩 용역업체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과의 차이는 임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보여주었다.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은 회사가 지급한 검은색 작업화였는데 앞부분이 다 벗겨져 흰색을 띠고 있었다. 정규직은 입사할 때 새 작업복과 작업화 등을 지급받는데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헌 것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명절 보너스는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확산이 야기하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분열이 생기고 결국 노동조합의 약화를 초래한다. 사측에서 노동자들 간에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에게 캐리어 노동조합과 하청노조 사이의 관계를 슬쩍 물어보았다. 이 위원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하청노조설립 단계만 해도 원만했는데 그 뒤로 약간 냉랭한 관계가 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 3월 9일에는 캐리어 노동조합 확대간부회의에서 노조위원장은 하청노조와 연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하청노조는 같이 사용하던 노조사무실에서 나와 천막을 하청노조 사무실로 쓰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노조를 돕다가 혹시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그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애써 감췄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하청노조를 세운지 2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조합원들의 결의도 높고 집행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성공적인 평가를 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장기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생계문제로 이탈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말했다. 또 비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해서 사측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조합원들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면서 캐리어 원청에 계속해서 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원종 기자는 전남대 언론개혁모임 '주둥이'에서 활동중인 시민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 게재된 기사임을 밝힙니다.>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직장폐쇄' 캐리어 담장 안엔 긴장감이<2신>
승인 2001.05.01  00:00:00
조원종 시민기자 '파업현장서 보낸 2신' / "하청노조 연대 깨고 구사대 노릇/ 이현석 노조위원장은 역사의 죄인"// '직장폐쇄'.
지난 16일부터 사내하청노조(위원장 이경석)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캐리어 공장이 결국 굳게 닫히고 말았다. 캐리어 정문과 후문 등 모든 문은 굳게 닫혔고 문 안에는 대형 콘테이너와 나무파레트가 담보다 높게 쌓여 있다. 공장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25일 오후 3시쯤 캐리어 사내하청 6개 용역업체들은 사내하청노조에 '26일 오전 8시부로 사내하청노조 조합원에 한해 직장폐쇄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공장안 담에도 같은 내용의 공고문이 붙었다.
하청노조는 조합원들을 긴급 소집, 대책을 논의했다. 오후 5시쯤 하청노조측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캐리어 관리직이라는 신분만을 밝힌 그는 "오늘 밤 공권력이 투입될 예정이니 몸을 피하라"고 짧게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노조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전경 7개중대가 26일 오전 5시 투입될 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밤 10시. 회사 관리직 수백여명이 사내식당에 모이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되자 30분후 공장안에 있던 하청노조 조합원 80여명은 생산라인 F1 조립룸을 점거했다.
이경석 하청노조위원장과 함께 공장을 점거한 조합원 80여명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관리직 수십여명과 대치했다. 퇴근후 집에 있던 조합원들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밤 12시 30분쯤 캐리어 정문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공장안의 관리직과 용역업체 직원들은 공장밖에 있는 하청노조 조합원들에게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공장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다음날 26일 아침 8시. 출근하던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서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자신들을 못들어가게 막고 있는 관리직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때 철문이 약간 뜯겨지고 몸싸움이 계속되자 공장안에서 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 캐리어 노조(정규직)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문을 막아라.." 방송이 나가자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문을 막고 있는 관리직과 용역 '구사대'에 합세했다. 27일 오후 1시 30분. 하청노조 조합원 80여명은 여전히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체육공원에 모였다. 캐리어 정문 건너 인도에는 20여명의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모였다.
오후 3시 25분. 갑자기 경찰헬기가 떴다. 조종석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낮게 날던 경찰헬기는 캐리어 공장 주변을 10여분 동안 맴돌다 사라졌다. 오후 4시 20분. 정문 바로 옆 철망 안에는 캐리어 마크가 박힌 경비원 복장의 젊은이 5명이 목격됐다.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그들이 전경들일 거라고 주장했다. 한 조합원은 그들에게 "니네들도 제대하면 우리처럼 돼.."라면서 안타까워 했다. 그들에게 전경이냐고 물었더니 "알 필요 없다"는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은 "회사 다니면서 이런 경비원들 본 적 없다. 전경이 경비원 옷을 입고 위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4시 35분쯤 철수했다.
캐리어 정문 앞에서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내하청 노조 송영종 사무국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직장폐쇄'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사측보다 캐리어 노조에 더 격한 감정을 보였다. 그는 캐리어 노조가 하청노조의 공장 진입을 사측과 함께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 대해 "캐리어 노조위원장 이현석씨는 역사의 죄인이다"라는 말로 그 심정을 표현했다. "사측과 싸우는 것도 버거운데 캐리어 노조와도 싸워야 하다니... 어떻게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이럴 수 있나. 노동운동 역사에 이런 일은 없다. 캐리어 노조가 하청노조에 농성을 풀어라고 요구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캐리어 원청 노동자(정규직)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이현석 위원장이 그럴 수는 없다."
캐리어 노조(정규직)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어보았다. "캐리어 노조는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직장폐쇄 이후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공장진입을 막기로 했다. 우리도 (하청노조를 도우려고) 많이 노력했다. 공장점거 이후 7번이나 대화를 했다. 그런데 말이 안 통한다.회사도 죽고, 노조도 죽고 다 죽자는데 어떻게 말이 통하나..." 그는 이 통화에서 회사측의 압력 여부에 대한 질문에 "조합원들의 생각이 그렇다"며 회사측의 압력은 부인했다. 캐리어 노조는 지난 2월 하청노조 설립단계까지는 연대의 끈을 잡고 있어 '노동자는 노동자'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 3월 9일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하청노조와 연대를 중단한다고 선언하고 하청노조가 공장점거에 들어간 지금 아예 사측과 함께 '구사대' 노릇까지 하고 있어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캐리어 노조 전부가 '구사대' 노릇을 하는 건 아니다. 일부 정규직 조합원들은 점거농성단에 음식물을 들여보내는데 도움을 주는 등 하청노조를 지원하고 있다. 송영종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공장안 점거농성단과 연락은 가능하고 음식물도 들여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공장안에 있는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구속을 각오하고 있다며 밖에서도 조합원들을 투쟁대오로 짜서 적극적으로 지금 사태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하청노조측은 27일 오후 사내하청노조 이경석 위원장과 캐리어 부사장의 면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면담에서 캐리어 부사장은 '공장점거를 풀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해결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는 캐리어 원청은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공장은 완전히 폐쇄되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어제의 동지'였던 캐리어 노조가 '오늘의 적'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하청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희망은 힘든 만큼 더욱 절실해 보인다.
/조원종 기자는 전남대 언론개혁모임 '주둥이'에서 활동중인 시민기자입니다. 조원종 기자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캐리어 비정규직 잃어버린 권리찾기 <3신>
승인 2001.05.01  00:00:00
<조원종 시민기자 '파업현장서 보낸 3신'>
캐리어 정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고 성벽처럼 쌓아놓은 나무파레트도 그대로다. 29일 새벽에는 사측의 점거농성장 침탈 위협에서 동료들을 보호하려고 캐리어 후문으로 달려간 하청노조원들과 공장 안의 관리직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금새 현장에 출동한 전경들과도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하청노조 조합원인 한승육씨가 관리직 직원들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하고 경찰에 넘겨진 뒤 또 구타를 당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경찰 조사 중에 쓰러져 조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했던 '같은 노동자'인 캐리어 노조는 공식적으로 하청노조를 배격하고 나섰다. 하청노조 파업이 보름을 넘기고 있는 지금 싸움의 무대에는 캐리어 하청노조, 용역업체, 관리직 직원들, 캐리어 노조, 경찰 등이 올라와 있다. 이 무대에서는 하청노조가 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보다는 노-노갈등, 경찰/관리직 직원과 하청노조의 물리적 충돌이 주요하게 연출되고 있다. 관객들은 그런 스펙타클에 익숙해 있고 또 좋아한다. 아니 그런 스펙타클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일까? 언론도 대개 이러한 것들에 눈길을 돌린다. 30일 오전 캐리어 정문 앞에는 하청노조 조합원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몇 몇은 한 쪽 공터에서 족구를 하고 있고 듬성듬성 무리를 지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하청노조 간부들은 역시 전날 새벽에 있었던 스펙타클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빠짐없이 취재수첩에 받아 적고 나니 어디선가 밥짓는 냄새가 났다. 인도에 지어진 천막에서 몇몇 여성조합원들이 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스펙타클에서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천막 안으로 고개를 삐죽 들이밀고 보니 한 여성조합원이 바닥에 앉아서 무릎 위에 종이를 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캐리어 하청노조 조합원 정행자씨(32). 그는 지난 16일 하청노조 파업 이후 줄곧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 캐리어에서 일한지 석달밖에 안된 그가 어떻게 험악한(?) 파업현장을 사수할 수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분명했다. "옳은 일이니까. 정의는 항상 이기니까."
다음은 그와 나눈 이야기.
-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심하다고 들었는데요. 게다가 하청 여성노동자들은 더 심하다는데 임금은 얼마나 받나요?
"기본급하고 상여금 합해서 60만원 정도에요. 잔업수당은 빼고요."
- 용역업체가 그 임금에서 한달에 1인당 30∼40만원씩 가져간다고 하던데요.
"처음엔 빠져나가는지도 몰랐어요. 하청노조에서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저는 아는 사람 통해서 처음 여기 들어왔는데 나중에 한보산업개발(용역업체)에 소속됐어요. 한보에서 과장이란 사람이 와서 잔업 같은 거 열심히 하면 6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서 작성할 때 임금관계 같은 거 몰랐나요?
"한보에서 과장이란 사람이 와서 작업화랑 작업복 주고 계약서 주면서 이름 적으라고 해서 대강 보고 서명해줬어요. 요즘엔 용역들 다 그러니까.. 그 뒤에 계약서 본 적이 없어요."
-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뭐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셨나요?
"솔직히 월급 적게 받는 건 괜찮은데 좀 일하다 보면 나가라고 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어요. 관리직에게 한번 찍히면 그만둬야 해요. 이런 게 더 큰 문제에요. 고용불안이라고 하나.. 난 여자라서 그 정도 월급이면 견딜만 한데.. 임금은 그 정도면 여자니까, 아줌마들이니까 참을 만 해요. 그런데 남자 같은 경우는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은 줘야 해요. 가족과 함께 외식도 하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책도 사보고 싶은데 그런 것도 못하고 있어요."
- 공장에서 일하면서 실제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나요?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한번은 사내도서관에 책을 빌리려고 갔어요. 그런데 거기 사서가 비정규직이라서 책을 빌려줄 수 없다고 그래요. 빌리고 싶으면 정규직하고 같이 오라고. '용역(비정규직)은 안된다, 보고 싶으면 그냥 여기서 봐라'는 식으로 말을 했어요. 여자들은 생리휴가 같은 것도 눈치보여서 거의 못 내요."
- 캐리어 노조(정규직)와 관계가 좋지 않은데..
"지금 캐리어 노조가 우리가 아닌 사측의 편에 있지만 그 사람들은 이현석 위원장과 소수에 불과해요. 보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 주고 있어요. 우리는 캐리어 노조원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보이지 않게 많은 힘을 주고 있어요."
- 파업에 어떻게 처음부터 결합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이건 정말 옳은 일이니깐요. 정의는 항상 이기잖아요. 남일이 아니라 내 일이에요. 그리고 우리 애들한테까지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천막을 나오면서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종이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 종이에는 '동지들에게'로 시작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계의 굉음만 요란하고 사람 하나 없는 삭막한 공단의 인도 한켠에는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조원종 기자는 전남대 언론개혁 모임 주둥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시민기자 입니다.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동절-오늘은 참 서글픈 날이다
승인 2001.05.02  00:00:00
<노동절 스케치>
5월 1일 오후 2시 광주역 광장. 111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하루전까지만해도 대회에 온다고 했던 한 노조가 오지 못했다. 캐리어 하청노조이다. 전세계 노동자의 날인 1일 오전 하남산단 캐리어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캐리어 하청노조는 이날 오전 캐리어 관리직 직원과 용역 구사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공장점거농성 중인 하청노조원들을 무차별 폭행한 뒤 공장에서 끌어내 경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사측과 협의하기 위해 공장 안에 들어가 있던 박병규 민주노총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은 '구사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등과 허리를 맞고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하청노조원들은 심하게 다쳐 경찰은 이들을 하남성심병원으로 급하게 옮겼다. 이 사태를 들은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광주역 광장 노동자대회 후 금남로 YMCA까지 갈 예정이었던 거리행진을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마무리했다. 이날 오후 5시 행진대열은 대기중이던 전세버스를 타고 캐리어 공장으로 향했다.
5시45분 캐리어 정문앞에 도착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바로 대오를 정비하고 규탄집회를 열었다. 캐리어 공장을 둘러싸고 있는 철망 안쪽과 건물 옥상에는 캐리어 관리직원들이 이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윤영민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장은 30일 사측과 대화하는 중에 '하청노조와는 교섭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측을 규탄했다.
송영진 캐리어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111주년 세계노동절인 오늘은 참으로 서글픈 날이다'며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이 싸움은 하청노조와 구사대의 싸움이 아니라 총자본과 총노동자의 싸움'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6시40분 노동자와 학생들은 집회를 마무리하고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폭행 당한 하청노조원들이 입원해 있는 하남성심병원으로 이동했다. 10분뒤 성심병원에 도착해보니 전경들이 중앙현관과 응급실 입구를 빈틈없이 가로막고 있었다. 병원앞에 도착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모든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과 대치했다.
이 때 쇠파이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진 박병규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의 부인이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는 '남편이 쇠파이프에 맞아 허리를 다쳐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며 경찰에게 들여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거부했다. 6시5분쯤 다친 노조원과 면회를 요구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를 묵살하는 경찰측에 분노해 현관을 막고 있는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조합원들은 팔짱을 낀채 병원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을 하나둘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다친 사람 면회도 못하게'하는데 몹시 화가 난 조합원들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며 계속해서 전경들을 끌어냈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돌아다니면서 '끌려나온 전경들은 절대 때리지 마세요'라고 소리치며 만일의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애썼다. 흥분한 조합원들도 이에 수긍하여 끌려나온 전경들은 조합원들 뒤쪽에서 별다른 제지를 받지않고 서 있었다. 7시5분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헬맷과 방패 등으로 무장한 전경들이 전면에 배치되었다.
이때에도 조합원들은 몸싸움을 하며 전경들을 끌어냈지만 끌려나온 전경들은 잠시후 경찰쪽으로 돌아갔다. 성심병원 주변에는 점점 더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었고 병원안에도 상당수 병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조합원과 학생들은 다친 사람들과 면회를 요구하며 병원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7시38분 경찰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자 조합원들은 세 번째 몸싸움을 했다. 이때 변함없는 경찰의 태도에 몹시 흥분한 조합원들은 더욱 격렬해져서 현관 유리문까지 밀고 들어갈 정도로 많은 전경들을 끌어냈다. 뒤에서 대열을 짓고 서있던 다른 조합원들과 학생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비정규직 철폐하자'를 계속 외쳤다.
10여분 동안 몸싸움이 있다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열을 정비하자고 소리쳤지만 몇몇 조합원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곧 조합원들은 스스로 '대열정비'를 외치며 경찰에게서 물러났다. 조합원들은 다시 연좌농성을 벌이며 거듭 면회를 요구하고 공장안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킨 캐리어자본을 규탄했다. 8시51분 네 번째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와 광산경찰서장의 면담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그 자리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대신하며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면담결과를 기다리면서 전경과 몸싸움하면서 땅에 떨어진 시계와 안경 등 분실물들을 모았다. 경찰쪽에서도 시계 등을 잃어버렸다며 조합원들에게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9시쯤 민주노총 지도부가 광산경찰서장을 면담하고 응급실에서 다친 하청노조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전한 면담결과. "담당의사가 다친 조합원 9명중 3명은 꼭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9명 모두 하루만이라도 입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산경찰서장은 빨리 경찰서로 연행해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가 내일 점심이라도 먹이고 데려 가라고 말했다. 오늘은 간호에 필요한 인원만 남기고 해산하기로 했다.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5명(이경석 하청노조위원장과 하청노조 집행부)은 치료 후 연행하고 나머지 4명은 치료 후 우리가 데려가기로 합의했다."
이 결과에 대해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마뜩치 않아했다. 그들은 공장점거 이후 '위원장님 얼굴 한번 못봤다'며 이렇게 물러나는 것에 불만을 내비췄다. 9시 20분쯤 하청노조원들이 직접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 위해 다시 광산경찰서장과 면담에 들어갔다. 면담결과 하청노조원 4명만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한 하청노조원은 '우리는 뭐냐. 위원장님 얼굴 못본지 20일도 넘었다'며 면회인원이 4명으로 제한된 것에 안타까움을 보였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조합원 4명의 양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송영진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이 비닐 속에는 우리 동지들의 피묻은 옷이 들어 있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하청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위원장님! 동지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라고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9시55분 조합원들은 마지막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를 마쳤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 1일 오전 공장점거농성장에서 '구사대'에게 폭행당한 부상자 명단(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투쟁속보 게시판 참조)
1) 박병규 : 금속산업연맹 광주전남본부장 감금상태에서 쇠파이프로 맞음. 오른쪽 상하반신 마비상태. 오늘 하루 경과를 두고 봐야.
2) 김대희 : 캐리어노조 조합원 혼수상태. 일단 1차 CT촬영결과 이상은 나타나지 않으나 오른쪽 다리 감각없음. 오늘 경과를 지켜봐야 함.
3) 송세종 : 하청노조 조합원 머리 두곳 심하게 찢어짐. 6-7cm 기웠으며 다른 한 곳의 부상은 3-4cm정도. 깊게 파여 오늘 경과를보고 내일 뇌수술실에서 수술예정.
4) 김희철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 왼쪽 눈 부상. 심하게 부어 앞을 보지 못하고 눈동자 굴리는데 어려움 호소.
5) 김시영 : 하청노조 조합원 오른손목 부상. 전신타박상
6) 이경석 : 하청노조 위원장 머리부상. 전신타박상.
7) 김남균 : 하청노조 교선부장 얼굴타박상. 코 왼쪽 눈 부어 오름. 오른손, 왼쪽다리 부상.
8) 김경민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상. 얼굴에 상처
9) 고강삼 : 하청노조 조합원 전신타박.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억울한 죽음 씻기 위해 미국은 말하라
승인 2001.05.20  00:00:00
도청앞 반미시위/
한국전쟁 피해자 유가족 미국만행 규탄//
"50년엔 양민학살 80년엔 광주학살 90년대엔 경제학살 미국놈들 물러가라!" 유명한 반미구호 가운데 하나다. 
오늘 광주 금남로에서는 미국독립기념일도 아닌데 여기저기 성조기가 펄럭였다.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의 'MD'를 상징하는 대형미사일 모형까지 도청 앞에 설치되었다. 도청 앞 금남로는 온통 '반미'였다. 무슨 일일까?
20일 오후 1시30분 도청앞 광장에서 [코리아 국제전범재판 성사를 위한 양민학살 피해자 및 유가족 전국대회]가 열렸다. '미국 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가 주최한 이 대회에는 한총련과 전농,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산하 지역단위들이 모두 참가했다. 
이종린 전민특위 남측본부장은 대회사에서 6월23일 뉴욕 맨하탄에서 있을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에 대해 설명하고 미국 학살만행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반드시 이 민족의 한을 풀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며 "미국의 양민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전민특위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에서 국제검사단을 맡고 있는 렘지 클락씨(전 미국법무부장관)는 "1945년 한반도에 첫발을 디딘 이래 지금까지 저질러진 미국의 만행과 학살을 온 세계에 폭로하고 규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해서 1950년∼1953년 3년 동안 북한에서 벌어졌던 미국의 양민학살을 조사했다. 19일부터 21일까지는 남한에서 조사활동을 한다. 그는 "미국의 만행은 전쟁시 학살만 있는게 아니"라며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로 여러분의 동포들이 굶어 죽고 있는 사태도 미국의 만행"임을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 함께 북한을 방문하고 온 브라이언 벡커 국제행동센터 공동대표는 미국 학살만행 문제의 해결에 대해 "사죄와 배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시행정부가 지금 여러분의 통일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우리가 싸울 대상은 북한이나 남한에 있는 게 아니라 워싱턴 D.C.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5·18에 대해서 "미국을 재판대에 세우지 못하면 광주학살의 진상은 규명될 수 없다"고 말해 80년 5월 광주학살에 미국이 개입했음을 강조했다.
전국에서 모인 미국 학살만행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저마다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경남에서 온 이정일씨는 "오늘같은 뜨거운 열기가 6월23일 전범재판까지 이어지도록 노력하자"며 전범재판의 성사에 힘을 보태줄 것을 호소했다. 
부산에서 온 양기순 할머니는 "1950년에 남편잃고 말한마디 못하고 살아왔다"며 기막힌 억울함을 꺼내놨다. 그는 "그 때는 왜 나쁜 놈들 처벌하는 법도 없었나"며 한탄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남북통일 되도록 기도만 했다"고 말했다. 
이교순 할머니(대전)는 전쟁 때 폭격당해 발을 다쳤는데 아직도 진물이 나온다며 붕대로 감아놓은 자신의 발을 직접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50년 동안 너무 기가 막히게 살아왔다"며 가슴에 맺힌 한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정부는 단돈 10원도 안주고 병원 한번 안데리고 갔다"며 정부의 무관심에 일침을 놨다.
익산에서 온 이찬근 할아버지는 "폭격기가 삐라를 뿌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폭탄이었다"고 말하고 그 때 그의 부모를 잃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미국측에 항의했는데 "한국지리를 잘 몰랐던 조종사의 오폭이었다"는 답변이 왔다. 그는 "어떻게 200km나 거리차이가 나게 오폭할 수 있느냐"며 미국측의 답변이 허구임을 지적했다. 그는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정부 관련부처에 관련서류를 요구했는데 이미 '폐기되었다'고 했다. 
그는 "2년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살았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정부는 미국 눈치만 본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안상복 경남대책위 상임대표는 결의문에서 "정부는 유가족의 심정을 헤아려 미국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당당히 요구하라"고 말하고 "6월23일 국제전범재판에서 미국의 학살만행을 만천하에 알릴 것"을 결의했다. 결의문 낭독이 끝나고 전범재판에 참가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은 미국심판에 함께 한다는 의미로 하얀 천 위에 손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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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도 5월정신 계승
승인 2001.05.21  00:00:00
조선일보 광주 5월 곡필 규탑집회/ 민언련, 인사모 회원 광주서 거리행진//
5·18이 올 때마다 과거가 들춰지는 것을 꺼리는 부류들이 있다. 그 선두에는 안타깝지만 언론이 서 있다. 특히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의 80년 5월 '광주르포'기사는 언론이 저지른 추악한 과거의 상징처럼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김대중 주필은 항쟁주체인 광주시민들을 "바리케이트 너머 총을 든 난동자"로 왜곡하고 현장취재는 과감히(?) 생략하고 그 특유의 상상력과 '받아쓰기'를 동원해 곡필을 날렸다. 이를 두고 월간 [말] 정지환 기자는 "계엄군이 총칼로 양민을 도륙할 때 그들은 펜과 입으로 확인사살을 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펜을 쥔 '학살자'들은 지금에 와서 이렇게 항변한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총칼을 든 군인들이 서슬퍼렇게 지키고 있어서 그들이 시킨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 변명을 인정할 수도 있다.
역사와 민중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한다면 말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우리 언론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칭 '1등신문' 조선일보는 여전히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보도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변명이 한낱 허튼 소리로 들리는 까닭이다.
이처럼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조선일보를 '응징'하기 위해 전국의 언론개혁 전사들이 광주에 왔다.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회원들과 인물과사상 독자모임(인사모) 회원들 중 일부는 19일 오후 7시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5.18 신문개혁 강연회'에 참석하여 성유보 신문개혁국민행동본부장과 정지환 월간[말]기자의 강연을 듣고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20일 아침에는 망월동 5·18묘역에서 참배를 하고 광주시내로 와서 '조선일보 반대'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했다. '근 조선일보 조'라고 쓰인 관을 선두로 이들은 도청 앞 금남로까지 행진을 하고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무등빌딩 앞에서 조선일보 규탄집회를 가졌다. 정지환 월간[말]기자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오월영령들의 뜻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민주성지 광주에서 조선일보를 추방하자"고 말했다. 성유보 본부장은 "아직도 우리 언론은 노동자, 농민들을 외면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족벌언론개혁에 모두가 나서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전주, 광주, 부산, 서울, 인천 등 각 지역에서 온 민언련과 인사모 회원들은 지나는 시민들에게 언론개혁에 함께 할 것을 외치며 조선일보 광주지사로 발길을 돌렸다. 조선일보 광주지사는 공교롭게도 항쟁의 사적지인 전남도청 바로 옆에 있다. 회원들은 건물 앞에 모여 '5·18 왜곡보도 조선일보는 각성하라', '오월정신 계승하여 언론개혁 쟁취하자' 등 구호를 외치며 조선일보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조선일보 관'을 건물 앞 가로수에 매달고 주위 시민들에게 조선일보 반대 표시를 보여주었다.
언론개혁의 뜻을 모아 이들이 조선일보를 향해 힘껏 내지른 함성은 5·18 21주년을 맞고 있는 광주에 언론개혁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겨주는 듯 했다. 집회가 끝나고 가로수에 매달아 놓은 관을 내리려고 하자 한 회원이 그냥 조선일보에 주고 가자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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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홍보보다는 교류로...
승인 2001.07.19  00:00:00
17일 제헌절 하루 동안 광주에 사는 캐나다, 네팔, 인도, 파키스탄, 호주, 베트남, 미국 등 '다국적' 외국인과 한국인 자원봉사단이 전통문화체험을 함께 하며 '교류'했다. 
(사)광주국제교류센터가 북구청의 지원을 받아 마련한 외국인 전통문화체험에 참가하기 위해 외국인들과 한국인 자원봉사단이 함께 제헌절 아침 관광버스에 오른 것.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이내 사적141호로 등록되어 있는 충효동 도요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체험단은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실에 들어갔다. 한국인 자원봉사단원이 유창한 영어솜씨를 뽐내며 고려말 상감청자와 조선초 분청사기에 대해 외국인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광주국제교류센터 외국인 광주문화체험 
전시실을 나온 이들은 광주시지정기념물1호 환벽당과 사적304호 소쇄원에도 들러 이 지역 전통문화재를 돌아보았다. 외국인들과 한국인 자원봉사단들은 소쇄원에서 끼리끼리 모여 살갗을 사르르 간지르는 산바람을 쐐며 담소를 나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재의 광주국제교류센터 이사는 "이런 게 바로 광주를 변화시키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힘'은 "외부와 문화적인 접촉을 통해 열린 사회로 나아가고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경쟁력"이다. 사실 광주를 아는 외국인은 드물다. 그러나 이 이사는 한가지 소중한 체험을 들려준다. 우리 나라가 IMF구제금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광주에서 학원강사를 하다 미국으로 돌아간 한 외국인이 자기가 사는 텍사스 주를 돌며 '한국을 돕자'는 운동을 펼쳤다는 기사가 현지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다.
광주국제교류센터가 하는 일은 단지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그들을 돕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베푸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로부터 '얻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교류센터 간사 김수아씨(26)가 힘주어 말하는 진짜 '교류'의 의미다. 이날 문화답사에 함께 한 자원봉사단이 안내담당 2, 3명에 그치지 않고 12명이나 참가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베푸는 것만 아니라 얻어내기도 한다
그들은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나 통역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함께 '교류'하러 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행사에 참가하는 외국인들도 공짜를 기대하면 안된다. 김수아씨는 외국인들에게도 꼬박꼬박 참가비를 걷는다. 그래야 어느 정도 책임 있게 행사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 김수아씨는 평소에도 한국인 자원봉사단을 꾸릴 때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고 외국인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교류'를 위한 노력은 외국인들도 못지 않다. 답사 내내 자원봉사단의 설명을 열심히 받아 적고 안내판 내용까지 그대로 종이에 옮기는 이가 있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는 미국인 학원강사 존 그린씨. 그가 '받아쓰기'를 그토록 열심히 하는 까닭은 "한국문화를 피상적으로 보지 않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국문화는 굉장히 독특하고 훌륭한데 외국인들이 잘 모르고 있어 내가 직접 알려주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교류'의 참뜻이 배어나고 있었다.
한국문화 피상적인 이해보다 정확한 인식을
이날 문화체험은 북구청이 광주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한 일이었다. 북구청은 이미 광주에 사는 외국인 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외국인교류사업을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오는 28일 전통공예문화학교 체험과 8월중 평촌도예방 도자기 체험 등이 잡혀 있다. 또 앞으로 대학 영어회화 동아리와 공무원 등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단을 더욱 늘릴 계획도 있다.
/조원종 기자는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재학중인 시민기자입니다<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왜냐면] '최저 투표율' 언론 책임도 크다
편집 2002.06.17(월) 18:52
6·13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예상대로 역사상 가장 낮게 나왔다. 언론은 최저 투표율의 원인으로 대개 월드컵 축구대회, 대통령 아들들의 부정부패 사건, 기존에 널리 퍼져 있던 정치 무관심 등을 꼽았다. 그런데 나는 최저 투표율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는 언론의 태도에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먼저 월드컵 열풍 때문에 투표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맞지 않다. 물론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에 지방선거일이 끼어 있어서 사회적 관심이 선거보다는 축구경기에 비교적 많이 쏠렸다는 사실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월드컵이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애초 지방선거에는 생기지 않던 관심이 월드컵에는 쏟아져 ‘열풍’으로 몰아친 것뿐이다. 지방선거 무관심과 월드컵 열풍은 별개의 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최저 투표율’의 원인은 월드컵이 아니라 정책대결을 통한 의제 설정조차 못하는 지방선거의 수준과 우리 정치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언론이 지적하는 ‘최저 투표율’의 원인들은 사실 아주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것들이다. 투표율 저조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고, 이제는 아예 투표소는 썰렁하고 공항과 골프장 등이 북적대는 지경까지 왔다. 사람들은 왜 투표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는 더 이상 썩을 곳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정치 때문이다. 언론도 이것을 모를 리 없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감시견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온갖 부정부패 사건을 파헤치고 아수라장 같은 정치를 비판해 왔다. 비리사건이 한번 터졌다 하면 언론은 날마다 현장 기자들을 혹사시키면서 전쟁 같은 특종 경쟁을 한다.
언뜻 보면 이런 언론이 있어서 이 사회에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고 정치는 금방이라도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만 같다. 그런데 언론이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대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제 설정을 하지 않은 채 일단 터진 비리사건만 붙잡고 막무가내식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정치혐오 내지는 정치 무관심을 조장한다.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정치 상업주의가 정치 무관심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서울시장 후보자 초청토론회에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 단 두 명만을 불렀다. 그래서 ‘지지율 5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민주노동당, 사회당, 녹색평화당 등 진보정당의 후보자들은 방송의 공정하지 못한 토론회 방침에 항의했고, 방송사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도 많았다. 결국 그 공영방송은 진보정당과 무소속 후보자들만 따로 모아 ‘군소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인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동당이 헌법소원을 내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정당명부식 1인 2표제는 언론의 외면과 선관위의 직무유기로 대다수 국민들의 눈과 귀에 들어오지 못했다. 김중배씨는 언론개혁 시민연대 상임대표 시절 “‘보수언론’이라는 이름붙이기마저 민망한 이 땅의 미디어들은 여전히 철저한 관심의 소외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관심의 소외는 무관심과는 구별된다. 보수적인 언론일수록, 또 수구적인 언론일수록 그 보수와 수구를 지키기 위해 진보정당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현실이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관심의 소외를 고집하는 언론 때문이다.
따라서 ‘최저 투표율’의 책임에서 언론은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국민들의 희망이 되어준 적이 거의 없는 우리 언론이 여론조사에서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고 있느냐 하는 단순한 양적 기준만으로 진보정당의 뉴스가치를 판단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평소 정치 무관심을 조장해 놓고 선거 때가 되면 아무리 투표하자고 한들 손 털고 가버린 국민이 돌아오겠는가? 언론은 이번 지방선거의 ‘최저 투표율’을 월드컵 탓으로 돌리기 전에 국민이 붙여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의 방송’, ‘1등 신문’의 자격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조원종/ 전남대생·신문방송학과

■후보들은 정책으로 말하라
[왜냐면] 대선경쟁을 바라보면서
편집 2002.12.11(수) 17:18
정치는 상징게임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통령선거라는 최대의 상징게임이 진행중이다. 각 후보들은 평소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징과 이미지를 만들어 득표전략으로 연결시켜 왔다. 시장의 상인들을 만날 때에는 정장 대신에 점퍼를 걸치고 고급 승용차를 놔두고 일부러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후보들이 부드러움과 개방적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간편한 옷차림으로 방송토론에 참석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당선을 목표로 출마한 후보들이 득표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이른바 선거과정의 투명성과 효율, 직접민주주의의 신장 등의 명분으로 미디어정치가 활성화되고 권장되는 마당에 ‘상징’과 ‘이미지’를 이용하는 득표전략을 사악한 것으로 치부할 생각도 없다. 점퍼차림으로 시장 상인들을 만나는 상징적 행위 같은 것이야 그냥 ‘쇼’로 보아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상징과 이미지가 과장되거나 심지어 조작되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과 정치능력, 도덕적 자질 등이 무시되고 왜곡된다는 점이다. 또 정책과 진실성이 결여된 채 여론의 흐름을 쫓아 표를 의식한 발언과 주장이 난무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한 후보는 젊은 층에 대한 득표력이 신통치 않다는 지적을 겨냥한 듯, 당 주최의 방송토론에 나오는 방청객을 모두 20-30대로 채웠다. 이 토론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살 사건에 대한 방청객의 질문에 그 후보는 부시 미대통령의 사과와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사건 초기 반미시위에 대해 “지나친 반미감정은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한다”며 자제를 촉구하고 평소 ‘반미’에 적대적인 언행을 보여 온 것과 비교할 때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어찌되었든 과연 우리에게 주권이라는 게 있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이런 발언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이후 제1당이라는 그 후보의 당이 소파개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임시국회를 소집해 소파개정을 현실적 대세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충분하면서도 그 후보와 당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국정원 도청 의혹’ 어쩌구 하는 폭로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제1당의 후보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집권여당의 후보도 부시 대통령에게 공식사과를 공동으로 요구하자는 진보정당 후보의 제안에는 묵묵부답이다.
다른 예를 보자. 공개적으로 지역주의가 좋다는 후보는 없다. 모두 나름대로 지역주의를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자신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역감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후보의 홍보차량에서 나는 ‘○○에서 10년을 산 후보’라는 문구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26년 동안 산 나는 어쩌라고.
‘낡은 정치 청산’을 핵심 구호로 내세우고 있는 집권여당의 후보는 거리유세에서 “영국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 총리와 러시아 푸틴, 미국 부시대통령 등 세계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50대이고 부시대통령은 나와 동갑”이라며 60대 후반인 경쟁후보를 겨냥했다. 젊은 나이를 ‘낡은 정치 청산’으로 연결시키는 해괴한 논리는 도대체 어떤 발상에서 나온 것일까.
정치개혁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여당과 야당이 합심해서 잘 해야 한다는 썰렁한 답이나 내놓는 후보에게 정책능력과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보고 표를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은 정책으로 말하면 된다. 시장 상인들의 표를 얻고 싶거든 점퍼차림의 상징에 그칠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대로 뜯어 고치겠다고 공약하고 실천하면 된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살 사건에 대한 여론을 득표전략에 연결시키려거든 말만 할 게 아니라 그 막강한 권력으로 소파개정에 나서고, 진보정당의 두 후보들처럼 ‘할 말은 하’면 된다.
이미지가 곧 실체가 되는 정치에 국민이 기댈 것은 없다. 여론을 의식한 빈말은 사기일 뿐이다. 이미지와 사기에 던진 표는 동원되고 이용된 표와 다를 것이 없다. 후보들의 정책과 사람됨의 진실성에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활짝 열 때다.
조원종/두 눈 부릅뜬 유권자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 게재 기사 (2000년 5월~2001년 9월)
5.18은 관광이 아니다
故 김남주 시비 제막식
5.18 폐막식 '락 2000'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①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②
일본대중문화! 우리는 매국노?③
5.18은 바람에 지는 풀잎인가?
'NL-PD연대'가 해결책이 아니다
신문보면 13만원짜리 비데를 준다고?
내 애인은 '페미니스트'!
"우리가 무슨 초식동물인가?"
한국 노동절 소식을 만방에 알린다
광주 민주노총 집회에서 일어난 일
비정규직 파업현장을 가다
노동절에 병원으로 달려간 노동자들

'캐리어폭력사태' 경찰 개입?
전남경찰청 캐리어폭력사태 공식입장 밝혀
경찰에 둘러싸인 5.18 21주년 기념식
광주 금남로는 또다시 해방구!
녹색조끼를 입은 '오월의 빛'
주)캐리어 난동에 짓밟힌 언론자유
블레어와 대처리즘과 '조선'
분수대 위의 '비정규직 철폐!'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떴다! '추미애 지지'사이트!
일본의 양심적인 영화 한 편
'혁명'처럼 어려운 지역신문 개혁
"네티즌의 권리청원..'평화'
언론권력, 마당극에 오른다
<시민의 소리> 게재 기사 (2001년 4월~2001년 7월)
'주둥이'의 족벌언론 꼬집기
누가 상아탑을 멍들게 하는가?
캐리어 파업 현장을 가다<1신>
'직장폐쇄' 캐리어 담장 안엔 긴장감이<2신>
캐리어 비정규직 잃어버린 권리찾기<3신>

노동절-오늘은 참 서글픈 날이다
억울한 죽음 씻기 위해 미국은 말하라
언론개혁도 5월정신 계승
전통문화 홍보보다는 교류로...
<시민의 소리>에 실린 '주둥이' 소개 기사 --> 전남대 언론개혁 모임 '주둥이'
<한겨레> 왜냐면 <한겨레> 2002대선 특집
'최저 투표율' 언론 책임도 크다 후보들은 정책으로 말하라
<좃선일보>에 이름을 올리고야 만 조원종
*링크를 걸려고 했으나 회원 로그인을 해야 검색 기사를 읽을 수 있는 '디지틀조선'의 정책상 부득이 그냥 긁어 옴.

전국 대학생 참여 '통일' 학술회의 (2001.05.09)
대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문제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전남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소장 임채완 교수)는 14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전남대 국제회의동 제1, 3세미나실에서 제1회 전국대학생 통일문제 학술회의를 갖기로 했다.
최영관 전남대교수가 ‘21세기 한반도 통일과 대학’을 주제로 강연한 다음, 주제별 발표와 토론을 할 예정.제1세미나실에서는 김상범(동국대 북한학과3)씨가 ‘대학생 통일의식의 현황과 분석’, 임한필(조선대 통일21학회)씨가 ‘대학생 통일운동의 내용과 방향’을 발표한다.
박성주(전남대 정외과3).홍성래(충남대〃).김영미(전북대 정외과4)씨와 토론한다. 제3세미나실에선 송혜순(전북대 정치학과 석사과정)씨가 ‘통일과정에서 인터넷의 역할’, 김영국(경북대 정외과3)씨가 ‘대학신문의 통일논의분석’을 발표하고, 박승한(조선대 정외과3), 김수진(충남대 정외과2), 조원종(전남대 신방과3)씨와 토론을 벌인다.
(권경안기자 gakw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