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공중전화

2005년 11월 10일

공중전화.
군대 시절, 공중전화 앞에서 몇 십분 동안 줄 선 수고 끝에,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떨렸던가. 별로 나눈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카드의 잔액은 왜 그렇게 뚝뚝 떨어졌는지. 휴가 첫날, 부대를 나서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아 아는 이들에게 '휴가 나왔다'며 신나게 떠들기도 했다. 휴가 마지막날, 부대 복귀 직전에도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착잡함이란!
제대 이후로 공중전화에 대한 애틋함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갑 속에서 전화카드는 사라지고, 우리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졌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는 편리함과 신속함은 공중전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요즘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신용카드를 대신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핸드폰이 없으면 생활(인간관계를 포함해서!)이 무척 곤란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핸드폰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가져보지 못했다. 공중전화를 통해 가질 수 있었던 복잡다단한 감정과 정서(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 자체가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우리는 쉽게 잊었다. 핸드폰의 편리함과 세련됨은 그만큼 힘이 세다.
편리해지고 신속해질수록 스타일은 윤택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초조하고, 지루하고, 다급하고, 그립고, 안타깝고, 애절한... 수많은 인간의 정서는 시나브로 잔인하게 생략된다. 편리와 속도가 인간행복의 절대지수가 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