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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료해지기는커녕 미궁과 의혹이 꼬리를 문다. 알고 있을만 한, 아니 알고 있어야 하는 쪽에서 설명하기를 회피하고 있으니 인민들은 음모론에 솔깃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찌나 답답한지 저쪽에서 원하는 게 음모론으로 정국이 혼탁해지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저쪽에서 뭔가 감춰야 할 게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그들의 은폐를 위해 무고한 병사들의 목숨이 희생당한다는 것이 참 가카스럽다.
어떤 추악한 음모 때문이든 아니면 위기관리의 무능력 때문이든, 이 상황에서 분명해지는 건 딱 하나다. 대한민국 군대가 인민의 자식들에게 '애국' 어쩌고 '조국' 어쩌고 하는 게 개지랄이었다는 걸 국방부 스스로 자백한 꼴이다.
오늘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니 실종자 가족 인터뷰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엊그제 2함대 사령관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 와중에서 어떤 기자가 뭐라고 물어보니 그 자리에 있던 투스타(소장급) 장성이 '여러분이 참아달라, 국익을 위해서'라고 하더라. (병사 46명을 실종시켜놓고) 국익이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물론 곤란한 상황에서 투스타가 임기응변으로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저 말에는 윗대가리들의 진심이 담겨 있다. 병사 46명의 목숨보다 '국익'이 우선한다는 진심. 인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국익'이 어디 있냐. 윗대가리들은 자기들 아쉬울 때면 '국익' 어쩌고 하시는데, 마음 같아서는 <'국익'어휘사용금지특별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들이 말하는 '국익'은 인민의 희생으로 윗대가리들이 챙겨가는 '사익'에 불과하다.
'조국'은 항상 인민의 희생이 필요할 때만 요긴하게 등장한다. 정작 인민이 '조국'을 필요로 할 때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 조국을 기억하는 인민은 있어도, 인민을 기억하는 조국은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랬다. 아무리 분단국가라지만 이 따위로 후진 나라가 '조국'을 들먹이며 징병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불가사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