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얼마짜리입니까?

"이거 얼마짜리냐?"
한국 사회는 '얼마짜리냐'는 질문에 무척 익숙하다. 나는 일상에서 그 질문을 많이 겪는다.
내가 어떤 새로운 물건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은 묻는다.
"그거 얼마야?"
대부분 이것이 첫 질문이다. 첫 질문이 아닌 무척 드문 경우에도 결국엔 이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건 뭐가 좋냐', '네 마음에 드냐', '이걸로 뭘 하고 싶냐' 등과 같은 좀더 인간적인 질문을 우리는 왜 잊어버린걸까?(나는 그걸 잊어버렸거나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얼마짜리냐'는 궁금증이 차지했다고 믿는다.)
물론 '얼마짜리냐'고 묻는 사람들이 특별히 돈을 밝힌다거나,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묻는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거다. 무의식적이라는 것. 그렇게 길들여졌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얼마짜리냐'는 질문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그 사물의 사용가치, 그것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같은 건 거의 배제된다.
그것이 '얼마짜리'라는 식으로 화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는 기어이 '연봉'으로 평가된다.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사안인 북한의 '핵실험'을 두고 증권시장에서 '몇천억원'을 잃게 만들었다는 나름대로 '경제적인' 분석을 들이댄다.
이 뿐인가. 학자의 연구조차 학문적 가치나 사회적 영향보다 그것이 벌어다 줄 돈의 향방에 초점이 모아진다. 황우석씨의 줄기세포연구가 광적으로 지지받은 배경에도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가 있었다.
모든 것을 화폐화함으로써 가치를 판단해버리는 사회에서 '당신은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질문조차 머지 않아 익숙해질 수도 있다.

내가 왜 그 사물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그 관계에 대한 나의 심정은 어떠한지, 그 관계의 미래는 어떻게 기대되고 있는지, 그 사물은 나에게 어떠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이런 게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은 미래에는 '내 딸은 OOO원짜리야'라고 자랑스러워할 날이 올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