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학

지난 몇년 동안 방학 때면 나오는 단골 언론보도 중 하나가 밥 굶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학기 중에는 급식지원을 받지만, 방학이 되면 그마저도 끊긴다고 지적하는 보도들. 근데 올 여름방학 때에는 다른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난한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재미없는' 공부방이나 PC방을 전전한다. 부자 부모를 둔 아이는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영어, 수학, 피아노, 논술, 수영 등 사교육마저 전인교육(?)을 받는다. 이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력 있는 스펙을 소유하게 되고, 외고나 과학고, 자립형사립고 따위에 진학할 것이며 결국 최상위 서열의 대학을 졸업해서 돈과 권력의 노른자위를 어렵지 않게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지배계급은 세습될 것이다.
가난한 부모는 자신의 인생을 사는 건 둘째 치고 금쪽 같은 '내 새끼' 얼굴 볼 시간마저 희생하며, 악착같이 돈벌이를 한다. 내 자식 뒤쳐지지 않도록 이런저런 캠프에, 학원에, 무리해서라도 해외연수까지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는 '관리의 부모'가 된다(아니,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와 자식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런 현실에서 가난한 부모는 부자 부모를 이길 수 없다. 가까스로 자식을 경쟁에 참여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차갑지만 이게 진짜 현실이다. 설사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게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는 못하겠다.

2006년이던가. 파리에 있는 OECD 본부에서 PISA 순위 발표를 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핀란드가 부동의 1위를 했고, 한국이 2위에 올랐다. 당시 한국언론들은 '2위'라는 성적만 부각시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세계 언론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데 있었다. 협동과 지원을 기조로 한 핀란드와 치열한 경쟁과 엄청난 학습시간이 특징인 한국의 교육정책은 정반대인데, 어떻게 비슷한 성적이 나올 수 있었는가.
OECD 교육국 관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들에 속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아이들은 아니다.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고 아이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은 핀란드에 비해 공부하려는 의욕이 많이 낮다. 그래도 성적은 좋다. 바로 경쟁 때문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스펙 높여주는 비싼 캠프 따위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 스킨쉽을 나누고 대화하고 신나게 노는 시간이 아닐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보다는 '경쟁을 왜 해?' 뭐 이런 자세를 가질 때, 부모와 자식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초딩시절에는 방학이면 미친 듯이 노는 게 일이었는데. 방학 하면 할머니집, 외갓집에서 며칠씩 먹고 자고 놀고 그랬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방학 때 시골에서 놀던 기억이 가장 흐뭇하고 즐겁다. 여름이면 가재 잡고, 깨 벗고 물장구 치고. 겨울이면 비료 푸대 하나 들고 눈덮인 산과 들을 누비던. 놀다 지쳐 배가 고프고 밥은 먹어야겠는데 더 놀고 싶고. 그래서 알약 하나만 먹으면 하루 종일 밥 안 먹어도 배부르는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막 하고. '아이들은 노는 게 의무다'라고 했던가. 평소에도 그러한데, 방학 했으면 미친 듯이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에는 내버려둬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4대강과 아이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욕과 '짜증나'가 3초에 한번씩 튀어나온다. 부모와 국가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성적보다는 아이들의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