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이분법

한일합방늑약 100년을 맞아, 2006년에 기록해둔 노트에서 옮겨 놓음.
고미숙의 책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발췌해둔 것임.
거창한 기호일수록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속이 텅빈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사람의 최고권력자가 자신이 능동적으로 수행한 어떤 치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적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심각한 결락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인 힘의 배치를 읽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일본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데 있다.
조선의 지배층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적대적 긴장을 활용하기보다 러시아에 완전 밀착함으로써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일본을 자극하는 결과만 낳고만 셈이다. 민비는 이런 맥락에서 시해되었다. 민비가 명성황후라는 새로운 기호로 부각되는 현상... 일본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애국적?

이완용에 대하여.
독립협회의 주도층. <독립신문>에 애국적인 관리로 집중 조명될 만큼 유능한 관리. 그가 매국노의 상징이 된 것은 1907년 정미칠조약으로 고종이 폐위되는 순간부터 총리대신이 되어 다른 라이벌들을 몰아내고 합방조인서에 도장을 찍은 인물이기 때문.
박제순, 송병준, 이준용, 이지용 등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완용의 행적을 훨씬 능가한다. 어떻게 이들은 면책되었는가? 우리 식민지 역사가 만들어낸 단순한기 짝이 없는 이분법의 결과.
이완용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내세워 모든 매국의 악덕을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 면죄부를 받는 식. 이완용의 후손들은 모두 외국으로 떠나고 평생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지만, 다른 매국노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기회를 통해 해방 이후에도 영화를 누렸다.

우리 안의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격한 선악 대립만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교활한 악인들은 면죄부를 손에 쥔 채 '우리 편'이 되어 다시 역사를 더럽힌다. 이분법으로는 청산과 교훈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