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with a cup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방방 뜨게 만드는 월드컵 뭐 그런 컵은 아니다만. 날마다 적어도 한번 이상은 쓰게 되는 컵. 물 마실 때도 쓰고, 차 마실 때도 쓰고, 술 마실 때도 쓰는 그 컵. 자주 쓰게 되지만 자기 컵 갖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딜 가나 간편하게 쓰고 버릴 수 있는(게다가 거의 공짜이기까지 하다) 종이컵 같은 일회용 컵들이 완비돼 있으니까. 알고 보면 한국은 진짜 편한 사회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데 있어선 강대국(?)이다.
종이컵이라 사람들은 대개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지만, 이게 그냥 종이로만 만들어졌을 리 없잖아. 진짜 종이컵이라면 물이 들어가면 버텨내겠냐고. 종이컵의 안쪽에는 종이가 물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폴리에틸... 뭐시기라는 화학적 코팅 물질이 발라진다. 뜨거운 물과 만나면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올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커피는 종이컵에다 마셔야 맛나다'고 하신다. 설탕 대신 환경호르몬? 이런...
그건 그렇고.
'with a cup'이라는 캠페인이 있다. 쉽게 말해 어진간하면 자기 컵 갖고 다니자 뭐 그런 이야기다. 텀블러 같은 걸 갖고 다니는 사람들을 가끔 보긴 한다. 별다방 로고가 박힌 텀블러를 패션 아이템처럼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약간 결벽증이 있어서 남들이 입 댈 일 없는 자기 컵을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겠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자기 컵 갖고 다니기는 어려운 일도 아니면서 좋은 일이다.
일단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한 컵을 사용하게 되니까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거다. 또 자원 소비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폼 나는 일 아니냐.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우쭐함? ㅋㅋ

여하간 할 수 있는 건 좀 하고 살려고 애쓴다. 동네수퍼에서 뭘 살 때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정도면 비니루봉다리에 넣지 말고 그냥 달라고 한다. 산행 하려고 김밥 살 때엔 나무젓가락을 받지 않는다. 집에서 쇠젓가락을 챙겨가고, 깜빡 잊었다면 그냥 손으로 해결. 손으로 집어 먹는다고 죽진 않으니까.

'그런 실천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자기 컵 갖고 다닌다고 생태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친환경적으로 돌변하지도 않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것조차 실천하지 않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건. 글쎄, 그냥 얄밉다.
'컵 쓰고 나서 씻을 때마다 물을 써야 하니까 친환경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그럼 아무 것도 마시지 마셈.이라는 말밖에 할말 없다.

내가 갖고 다니는 컵이 있는데, 몇년 전 돌잔치에 갔다가 무척 마음에 들어 그냥 들고 나온 거다. 맥주를 직접 제조해서 서비스하는 호텔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맥주잔이 그냥 유리컵이 아니라 보냉이 되는 스테인레스 맥주잔이다. 아주 멋지다. 사진 찍어서 올리고 싶은데, 독서실에 두고 쓰고 있어서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