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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소비'의 이념

'이념적 소비'라는 아주 아름다운 표현이 등장했다.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씨의 작품이다. 마트에는 거의 가질 않아서 몰랐는데, 이마트에서 피자'마저' 파는 모양이다. 동네 피자집보다 더 큰 피자를 더 싸게 판단다. 그래서 재미를 좀 보는 것 같다. 어느 트위터러가 정용진씨의 트위터에 '소상점을 죽이는 공략을 포기해달라'는 요지로 의견을 보냈고, 이런저런 트윗이 오가는 중에 정용진씨는 (소비자들이 동네상점보다 마트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라며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나는 정용진씨가 이런 질문을 한 속내를 알지 못한다. 다만 '소비자는 이념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라는 게 정용진씨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이념'이라는 단어가 발화되는 순간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용진씨가 단순히 '실질적 소비'와 '이념적 소비'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소비자 의식조사(?)를 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편으론,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정용진씨의 의견도 이념적인 거 아닌가? 소비자들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택이란 건 자유주의 시장경제(그러니까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한 생각이 아니냐는 거다. 만약 정용진씨에게 '본인은 경영을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사실 중요한 건 정용진씨의 의도가 아니다. 어떤 의도이든지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자유가 있다. 실질적인 의도이든 이념적인 의도이든 그건 그의 자유다. '이념적 소비'라는 말을 딱 접했을 때 느낌은 '괜찮네'였다.

윤리적 소비라는 게 있다. 현지의 생산자에게 더 많은 이득을 주기 위해 좀더 비싸더라도 공정무역을 통한 상품을 구입한다. 정해진 일정과 코스에 끌려다니고 현지에서 쇼핑하고 돈을 쓰지만 이익을 가져가는 건 다국적 기업이나 타지의 대기업이 되는 패키지 여행 대신에, 현지의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주고 그들과 교류하며 되도록 환경피해를 줄이는 공정여행 상품을 이용하기도 한다. 웬만한 도시에는 여러 생협이 꾸려져 일상생활에서 윤리적 소비가 실천되고 있다. 윤리적 소비는 한국사회에서 대세는 아니지만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윤리적 소비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윤리적 소비'나 '착한 소비'라는 명명에 대해서는 좀 불만이 있다. 트집이 될 수도 있겠다만, 윤리적 소비를 하는 사람이 윤리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냥 소비를 하는 사람은 뭐가 되냐 하는 시비가 생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바뀌게 된 것은 대중의 심기를 건드려서 괜히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역거부 안한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하는 반감이 꽤 널리 퍼져 있었던 거다. 물론 '양심적'이라는 말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짓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니었지만, 대중은 많은 경우에 논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윤리적 소비라고 명명되는 순간 그밖의 다른 소비들은 비윤리적 소비가 되어버린다. 착한 소비라고 뿌듯해 하는 순간 다른 소비들은 나쁜 소비가 된다. 모든 정의는 배제를 수반하므로. 한편으론 윤리적 소비를 선택(!)하는 행위가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윤리적 소비는 '최저가'가 달성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추잡하고 부당한 착취를 인지할 수 있고 그건 잘못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며 '최저가' 이상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와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최저가'는 뿌리치기 힘든 악마의 유혹이다. 정말 가난한 사람에게는 윤리적 소비를 선택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윤리적 소비는 대부분 중산층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것이 이념적 현실이다.

이념적 소비가 무엇인지 정의내릴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생산자의 물건을 구입한다든지, 노동자인 소비자가 노동자 알기를 기계나 노예 알듯 하는 악덕기업의 상품을 거부한다든지, 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소비를 하고,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이익을 주는 소비를 하는 것. 이게 어떤 시스템과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만. 쩝.

내가 노동으로 임금을 벌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있어야 하고, 내가 번 임금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면서 소비자다. 이런 인식이 이념적 소비의 철학이 되지 않을까.

윤리적 소비든 이념적 소비든 가장 좋은 것은 꼭 필요한 소비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최소한의 소비야말로 궁극의 이념적 소비이자 윤리적 소비이면서 이것들의 이념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가장 손쉬운 실천방법은 되도록 대형마트에 안가는 거다. 대형마트라는 게 원래 뼛속까지 이윤동기로 구성돼 있다. 카트는 왜 그렇게 커야만 할까? 카트 끌고 마트를 누비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커다란 카트를 꽉 채우게 된다. 엄청난 규모의 주차장이 과연 '고객편의'를 위해 존재할까? 차를 가져왔으니 트렁크를 채울 만큼 물건을 사게 된다. 최저가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 자동차로 오가는 동안 소모되는 에너지와 사회적 비용에는 둔감한 것은 소비자에게는 비효율이고 대형마트에게는 이윤을 안겨준다.

여하간 이념적 소비라는 말에는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꽤 많다. 이게 자본가로부터 발화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컬하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