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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

'화학적 거세', 아무것도 거세하지 못한다
[24호] 2010년 09월 03일 (금) 19:02:15 김현영/여성학자

아동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돼 오는 2011년 7월 2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명 '화학적 거세법'이라고 부르는 이 법은, 2008년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발의했지만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월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 사건(1)이 계기가 되어 상임위에 올린 지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막는 약물을 투여해 성욕을 감퇴시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화학적 거세' 방안은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인권침해 소지가 높으며, 심리치료 등 다른 방안도 검토해야 하는 등 문제점이 많다고 알려졌지만,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물과 같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성난 여론을 등에 업고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법제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화학적 거세로 성범죄가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2) 아동 성범죄는 '낯선 괴물'에 의해서 일어나기보다는 73%가 아는 사람이고, 그중 38%가 친·인척 등 주로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다. 아동뿐 아니라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가 그렇다. 73%라는 비율은 성폭력이 낯선 이방인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이기보다는 학교와 가족 등 가까운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아직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성범죄의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많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피해 정도가 심각한 강간 및 강간 미수조차 신고율이 7.1%에 불과하다.(3) 성폭력 신고율이 56%인 미국에서는 18살 이하 아이들 중 여자는 12~28%, 남자는 3~6% 정도가 피해를 입는 것으로 보고 있다.(4)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동 성범죄는 가까이 있고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는 이런 광범위한 피해의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극히 일부 가해자를 병리화하고 더욱 가혹한 처벌을 고안하는 데 관심을 둔다.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되는 범죄자는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된 이들이며, 전체 성범죄자의 0.2%(5)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 사회적 공분이 모아지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때마다 관련 대책은, 실제 현실을 무시하고 여론이 믿고 싶은 대로 현상을 왜곡한다. 그리고 이번에 제정된 화학적 거세 법안은 아동 성범죄에 대한 오래된 인지적 오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법안이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극악무도한 범죄자 몇 명이 전자 발찌를 45년 동안 차고 있거나 화학적 거세를 시킨다고 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법안들은 마치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특단의 대책인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인지 부조화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화학적 거세, 가장 저렴한 정책 대안 

아동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동복지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아동복지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성범죄 예방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은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는 주입식 교육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아동 대상 성범죄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10대 청소년으로 구성돼 있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아동 대상 성범죄를 줄이려면 구체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더불어 자신의 성적 권리를 인지하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 착한 학생인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이 서로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토론과 합의를 통해 도출하도록 만들고,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를 손질하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실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교사나 부모가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강자에 가담하는 가학적 행동이 줄어들 수 있다. 실제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상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예산이 많이 드는 정책은 아무리 근본적·예방적 조치로서 효과가 입증됐다고 해도 환영받지 못한다. 화학적 거세 법안 시행 첫해에 드는 비용은 9억 원인 반면, 전국 초등학교에 상담교사를 상시적으로 배치해 성교육을 더 실효성 있게 전개하려면 당장 300명만 배치한다 해도 첫해에만 최소 63억 원이 소요된다. 화학적 거세 방안은 근본적 대책이라기보다는 가장 손쉬운 방책이었을 뿐이다. 참고로 덴마크·스위스·프랑스·독일 등 화학적 거세를 도입한 대표 '선진국'에서 아동 1인당 월간 복지 지출비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2162달러, 독일은 1707달러, 영국 913달러, 스웨덴 3961달러인 반면 한국은 고작 40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 참여정부에서 0.2%였던 아동복지 예산은 이 정부 들어 0.1%로 삭감됐다. 현 정부가 책정하는 예산상에서는 연간 9억 원이 소요되는 화학적 거세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셈이다.(6)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복수심'

하지만 화학적 거세 조치를 취하게 된 정치·경제적 배경을 비판한다 해도 실제로 화학적 거세를 통해 사람들의 복수심과 피해자의 분노가 해결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처벌 강화 법안에 찬성하는 것은 관련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느끼는 참담함과 무기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나 역시 0.2%이든 0.0001%이든 간에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시간 고통받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그리고 그런 피해자가 만에 하나라도 또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성범죄자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분노 지수는 더욱 높아진다.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것만큼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만 있다면 어차피 애초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이므로 인권 범주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복수나 응징으로서의 화학적 거세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본인이 거세를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한 경우에는 대부분 재발 방지에 실패한다고 알려졌다. 

1980년대 초반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스키마스크 강간범'으로 악명을 떨친 조셉 F. 스미스는 화학적 거세 요법이 얼마나 끔찍하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상습적 성범죄자인 그는 화학적 거세를 받고 치료에 성공했다고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1987년, 버지니아 주경찰은 그와 범행 수법이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의 행적을 예의주시하던 경찰은 1998년 결국 범인의 덜미를 잡았다. 당시 5살 친딸의 몸에서 범인의 DNA가 발견된 것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는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수감됐고, 호르몬 투여 이후에 저지른 40여 건의 여죄를 자백했다. 1995년 240여 명의 소년과 소녀를 추행한 것으로 알려진 텍사스의 학교 버스 운전사인 래리 돈 매케이가 2005년 가석방을 받는 조건으로 화학적 거세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자,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를 거세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여전히 아이들을 강간할 수 있는 뇌와 손이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화학적 거세와 같은 약물치료는 본인이 더 이상 범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할 때 그 의지를 돕기 위한 보조적 조치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유아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손가락이나 이물질 삽입 등 남성 성기의 발기 문제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습적 아동 성범죄자가 자기 머릿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 '괴물'은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걸 통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어떤 생물학과 유전학에서도 호르몬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영장류 인류학자인 세라 블래퍼 허디는 "호르몬은 행위의 반경과 범위를 정해줄 뿐이지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고 선택하는 데 간여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반성이나 후회 없는 인면수심의 범죄자의 경우, 그들이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는 한 강제적인 화학적 거세는 별다른 소용이 없다. 따라서 그들을 거세한다고 해도 피해자의 '복수심'이 충족될 리 만무하다. 

가해자에 대한 낙인 부재 문화

한편 화학적 거세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 법안이 명백하게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법안이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동 성범죄자는 모든 사회적 위치에서의 가해자는 아니다. 당연히 그가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뒤에는, 부당한 인권침해를 겪는 것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순간은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력하게 작동할 때 가능하다. 미국과 북유럽에서는 아동 성범죄자에게 '소아성애자'라는 낙인이 작동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아동 성범죄자는 인권침해 문제를 심각하게 겪는다. 성범죄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위대를 집 앞에서 보고, 수영장에조차 출입하지 못하며, 어디에도 취직할 수 없다며 '두 번째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아동 성범죄자에게는 '사회적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아동 성범죄자를 '소아성애자'로 병리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놀라울 정도로 없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한국의 청소년 성매매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자료를 찾기 어렵다고 도움을 청하는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했는지를 물으니, 'pedophilia'(소아성애)로 찾았다고 했다. 나는 '원조교제'나 '가출'로 찾아보라고 간단히 답 메일을 쓰면서 한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가 '소아성애자'라는 범주로 불리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청소년 성매매를 소아성애의 문제로 보는 것과, 10대 여성의 가출 등 일탈 행동의 문제로 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성범죄에서 여전히 피해자의 행실이 문제가 되지, 어리고 젊은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강력한 성충동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 강연을 마치고 난 뒤 한 남자 교사가 공개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여자아이들이 가슴이 나오고 신체적으로 성장합니다. 자신의 신체적 성숙을 잘 인지하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종종 업어달라고 하거나 안겨올 때는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입니다. 저도 아무래도 남자이다 보니…. (웃음) 조숙한 여자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까요?"

내가 이 질문을 받고 놀란 것은 이 교사가 단 한순간도 자신이 소아성애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는 점이다. 아마 미국이라면 그는 당장 상담치료를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 여자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있었지 '초등학교 교사로서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적절한지'에 있지 않았다. 
 
약자가 된 가해자, 약자 혐오자가 된 우리

화학적 거세를 옹호하는 또 다른 논리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성충동'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성폭력 사건 판결문에서는 '참을 수 없는 성충동' 혹은 '정욕에 못 이겨'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10대 소녀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버지니아 감옥에 수감돼 있던 제임스 젠킨스는 인지행동치료와 심리요법을 받아왔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부적절한 성적 환상과 욕망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결국 재판 전날 면도칼로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젠킨스는 스스로 외과적 거세를 실시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진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경우라면 약물 투여가 재발 방지에 확실히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한국의 김수철 경우 화학적 거세보다는 가해자 심리치료와 아동 돌봄 시스템 구축이 훨씬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비판(7)이 무색하게도 출소 뒤 정신과 상담을 꽤 성실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소 뒤 정신과 상담을 받는 등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으며, "내 안에 괴물이 살고 있다"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충동을 고백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본말이 전도되기 시작한다. 이 법안은 우리가 처벌하기를 원하는 무시무시한 범죄자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고, 자신의 충동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정신박약'(Mental Incompetents)(8)에 대한 처벌이자 치료법으로 둔갑한다. 화학적 거세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법안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보다는 복수심에 불타 요구됐던 성범죄자 '거세'가 법 제도 안에서 순치되는 과정에서 약자 혐오의 담론이 생성되는 것이다. 즉 가해자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야만인에서 자신의 몸 하나도 간수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모하게 되고, 미처 충족되지 못한 복수심은 그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그대로 간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약자 혐오의 담론 속에서 상처받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파시즘의 역사에서 인간의 '취약함'이 사회악의 원인으로 지목됐을 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초의 우생학 운동은 과학을 통해 사회를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여성 장애인 6만여 명에게 불임 시술, 즉 '거세'를 강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뚫은 영웅이자 알고리즘을 창안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받고 부작용에 시달리다 1953년 자살했다. 
 
'진정한 거세'의 의미

화학적 거세를 둘러싼 이 대대적인 소동은 '거세'라는 말이 가진 상징적 의미에서 기인한다. 거세 조치에 대한 논란과 반응들은 역설적으로 남성 성욕의 저장고이자 실행 기관으로서 남근이 가지는 절대적인 위상을 재각인시킨다. 강력한 성충동에 대한 신화를 고착하는 표현은 몸에 대한 정신의 상대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몸·마음의 이분법을 재생산하면서, 몸 안의 모든 감각 중에서도 남근 중심적인 성충동의 힘을 과잉 승인해주는 효과를 가진다. '감각의 경험적 한계를 초월한 정신을 획득해야 진정한 인간으로 계몽될 수 있다'는 칸트식 이성 중심주의에서 열정과 정념 같은 감각 에너지는 극복 대상이다. 가해자가 종종 자신을 충동에 못 이긴 패배자이자 약자이며, 진정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담론 구조 속에서 가능해진다. 

한국의 성범죄자들이 종종 취하는 '약자'로서의 모습은, 전혀 성찰적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매우 도착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강력하고도 통제할 수 없는 남근 이미지의 힘이 바로 이런 책임 전가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 내가 만나본 아동 성범죄자들은 자신을 약자로 위치 변환시키면서 책임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부인하며 동정을 호소하다가도, 1초 만에 자신의 강력한 성충동을 은근히 과시했다. '내 마음은 약하지만 내 몸(과 성기)은 강하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다. 

조셉 스미스의 지적처럼 남근만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따라서 '화학적 거세'라는 명명은 일종의 대중적 사기다. 대중이 성범죄자를 거세하자고 할 때, 그 의미는 단순히 테스토스테론의 95%를 생성한다고 알려진 고환에 약물을 주입하거나 여성호르몬을 주입해 성욕을 '감퇴'시키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거세'는 페니스라는 생물학적 기관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근으로 대표되는 성충동의 활력과 에너지, 권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남성 특권을 제약하는 차원의 거세에는 찬성하나, 화학적 거세라는 '사기'에는 반대한다. 

나는 강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성범죄자의 활력과 에너지, 권력이 생성되는 그 지점을 제거하는 것이 '진짜' 거세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강용석의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해서 토론대회에 나간 여대생들과 아나운서들에게 성희롱을 할 수 있게 된 그 에너지와 권력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친족 성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친권을 빼앗는 것, 취업 상담을 핑계로 제자에게 술을 먹여 노래방에 데려가 강간하려는 교수를 해임시키는 것, 그런 것이 '진짜' 거세의 의미다. 여기에서 남근은 하나의 은유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만약 김수철과 조두순에게 남은 특권이 오직 남근 하나라면, 우리가 거세해야 할 것은 그의 남근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남근에 집중된 상징적이고도 사회적인 의미를 제거해야만 '진짜' 거세에 성공할 수 있다.

글•김현영
국민대 강사, 인권재단 <사람> 편집위원.


<각주>
(1) 2010년 6월 7일, 초등학교 1학년인 한 여자아이가 학교 안에 있다가 동네 아저씨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는 학교에서 단 1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가해자의 집에 끌려갔고, 의료진의 표현에 따르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조두순 사건의 악몽이 다시 고스란히 재현된 셈이다. 더구나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수철이 가출한 10대 여학생을 성매수해 동거 중이었고, 15살의 남학생을 강제 추행하는 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됐다.
(2) DeWayne Wickham, 'Castration often fails to halt offenders', <USA 투데이>, 2001년 9월 3일.
(3) 2007년 여성부와 형사정책연구원이 전국 9847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전국성폭력실태조사 결과 참조.
(4) Charles L. Scott, MO. and Trent Holemberg. MD, 'Castration of Sex Offenders: Prisoner's Rights Versus Public Safety', J Am Acad Psychiatry Law 31:502~9, 2003.
(5) 이 수치는 아동 성범죄 신고율을 최대치(10%)로 둘 때 40%의 기소율과 36%의 구속률, 14%의 동종 범죄 재범률을 놓고 산출한 것이다. 
(6) 한 달에 22만 원, 연간 300만여 원이 드는 호르몬제제는 본인 부담 원칙이 적용된다. 법무부에서는 시행 첫해 예산을 9억 원으로 보고 있고, 이후 15억 원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화학적 거세 조치를 심리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등과 연계해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이보다 휠씬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7) '화학적 거세란 치명적 유혹- 심리치료엔 무대책', <한겨레21> 제822호, 2010년 8월 6일. "아동 성폭력 가해자 중 성도착증 환자는 적다: 아동 성폭력 사건 전담 박은정 검사, '화학적 거세' 같은 사후약방문보다 '아동 안전망 구축' 등 예방책 강조", <한겨레21> 같은 호.
(8) 지적장애인 혹은 정신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호칭이나, 여기에서는 편견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정신박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