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시즌이다. 지금까지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주로 무대에 올랐다면, 이 시즌에는 각개전투가 중심이다. 각 의원실에서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스펙타클이 펼쳐지게 된다. 잘된 작품은 9시 뉴스에 나오고 의원 본인도 폼 잡고 한말씀 하는 화면이 전국에 뜨게 되는 나름 선거운동(!) 효과도 얻는다. 기자들은 어렵게 취재 안해도 괜찮은 뉴스거리가 넘치는 풍요로운 시즌을 맞게 된다. 요즘 나오는 뉴스 중 외신이나 사건사고를 빼면 9할이 국감 작품이라고 보면 맞다. 이게 잘 만들면 꽤나 남는 장사라서 일단 터뜨리고 보거나 정책적인 마인드보다는 포퓰리즘에 기대는 무리수를 두는 일도 있지만, 어쨌든 행정부 공무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모처럼 바빠지는 시즌이기도 하다.
국감 시즌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사바사바하거나, 어차피 들통날 거 이실직고하여 선수치고 대신 살살 해달라 읍소하기도 하고, 장관급까지 가지말고 국장급에서 쇼부치자는 협상도 이뤄지는 일도 있긴 하다만. 공무원들이 하도 뻔질나게 들락날락 하니까 문 앞에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붙여놓는 의원실도 나오고. 의원실에서 뭘 준비하는지 정보수집하는 공무원들도 많고. 의원회관에 행정부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즌이 국감이다.
사실 국감 때 한방 터뜨려서 공무원들 긴장 시키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다만, 문제는 그 뒷일이다. 국감 때 지적된 사항들은 향후 개선, 조치하여 보고하도록 돼 있는데 여기에 주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드러내놓고 방송카메라 앞에서 무섭게 혼쭐 나기도 하는데, 일단 국감만 끝나면 뭔 일 있었어? 이렇게 된다. 의원실이나 공무원들이나 다들 '어이, 수고하셨소' 대충 이런 분위기. 언론도 마찬가지, 인민들은 씨바 먹고 살기도 힘들어... 대충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가 하는 게 뭐 있냐 세비 주지마라고 욕 한다. 물론 제 역할 안하는 의원들도 많고 한국의 국회 수준이 욕 안할 곳이 거의 없긴 하다만, 진짜로 일 하나도 안하고 놀고 먹는 곳인 것도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국감 시즌에는 의원실은 코피 터지게 일한다. 물론 코피 터지는 건 의원이 아니라 보좌관들. 국감이고 뭐고 난 몰라 하는 의원실도 많다만, 권력의지가 있는 의원이라면 보좌관들 닦달해서라도 '작품' 하나 만들려고 애쓴다.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한다면 지방의회에서는 행정사무감사(줄여서 행감)를 한다. 대부분 시민들은 알게 모르게 넘어가는데, 시민단체나 지방언론 쪽에서는 나름 촉각을 세우는 미니 국감이다. 지방의회에는 유급보좌관제가 없다. 웬만한 의원들은 대충 자리만 채우고 있거나, 심한 경우에는 피감자인 공무원들을 시켜서 체면이라도 세우게 몇 건 대충 만들어 오게 하는 얼빠진 의원도 있다.
예전에 Y 시의원 의정지원 일을 할 때 행감은 생각만 해도 아휴... 나같은 초짜 비전문가가 달려들기엔, 무등산이나 왔다갔다 하던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정하겠다 나서는 꼴이었다. 수천명의 공무원과 2조원짜리 예산집행을 뜯어 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게다가 당시 민주노동당 1호 시의원이라 이건 뭐 도움받을 선배 의원은커녕 당에서 지원해줄 전문가도 없고, 의원과 함께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의원은 노동조합 만나고, 이런 저런 경로로 소개받은 교수들 만나고, 시민단체 만나고, 읽어봐도 모르는 건 공무원 불러서 설명 듣고.
나는 의원과 회의하고 내용정리 해서 자료제출 요구할 거 조사하고 목록 짜서 공문 보내고, 자료 안주면 전화해서 왜 안주냐 빨랑 주라 불쌍한 공무원 닦달하고, 자료 도착하면 이건 뭐 어디부터 손대야 하는지... 여하간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요청한 자료 분량이 압도적으로 1위였다는... 하급 공무원들은 평소 우리 의원 좋아라 했지만, 자료요청할 땐 정말 미워했다는. 덕분에 시민단체 선정 우수시의원에 뽑혔다.
한번은 택시 부가세 경감액 사용 현황과 증빙서류 일체를 요청한 적이 있다. 택시 부가세 경감액은 택시요금에 포함된 부가세 중 일부를 경감해서 환급해주는 돈이다. 이 돈을 택시 노동자 복지에만 쓰게 돼 있는데, 택시회사에서 부당하게 회사운영비 등으로 쓰고 노동자에게는 한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문제였다. 물론 이 건은 택시 노동자들과 함께 준비했다.
이 자료를 공무원들이 수레에 싣고 의원실로 왔다. 그냥 들고 올 수 없는 분량이었으니까. 광주 전체 택시회사에 영수증까지 모두 첨부해서 가져오라고 했거든. 이걸 혼자서 분석했다. 사용내역 분석하고 부당사용 추려내고, 영수증 확인하고.. 그 많은 자료들이 엑셀 파일 하나로 정리가 되어버리니까 좀 허무하긴 했다. Y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이 문제를 폭로하고 공무원들 무섭게 혼내고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이 때 방청석에는 택시 노동자들이 와 있었고. '야, 우리 문제를 대신 말해주는 의원이 있구나' 하는 감동이... 그러나 역시 문제는 그대로다. 택시 부가세 경감액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걸로 안다.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택시 노동자도 많고. 얼마 전에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택시노동자가 전액 받을 수 있는 택시부가세법안을 발의한 걸로 아는데,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