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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정의'에 목말랐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출판계를 넘어 '사회현상'이라고 할 만큼 이슈가 된 책이다.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들어서 책을 사지도 않았는데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진간한 술자리에선 이 책이 잠시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책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만,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현상'이 되고, 회자되기 시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내 버릇이다.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인데 갑자기 몇백만 흥행돌풍 어쩌고 하는 소식이 들리면 급 시들해지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는 최대한 개봉 직후에 보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한국의 인구 수준에서 정말 좋은 영화의 적정 관객 수는 많이 잡아 2백만 정도라는 게 근거 없는 내 기준이다. 그 이상을 넘어간다는 건 영화의 힘이 아니라 '현상'의 힘이라는 거.
물론 '현상'이 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현상'의 안팎을 차분하게 살피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독서에 인색한 한국사회에서 기록적으로 팔려나갔다(그것도 인문학 서적이!)는 '현상'에 덮여, 내용 자체에 대한 평론이 거의 제기되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정의는 진보보다는 보수의 아젠다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의 보수가 워낙 정의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정의롭지 못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진보가 보수의 일을 대신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소설가 장정일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반대한다'는 글을 썼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한번 읽어둘 만 하다. 여하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50만부 넘게 팔려나간 '현상'에서 내가 의심한 것은 우리가 과연 '정의'에 목말랐던 것일까 하는 거다. 장정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정말 목말라 했던 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의라는 '기표'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것도 좋은 일이다만, 가족애나 법률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우파 학자의 책을 주제로 좌파 지식인들이 토론회를 열고 뜨거운 관심을 보였던 '현상'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