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일몰
diary

세밑 일몰

생각해보니 새해 일출은 몇번 찍어봤는데, 세밑 일몰은 한번도 안 찍어봤다. 지나온 것이나 묵은 것 보다는 앞으로 올 것이나 새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탓일까. 묵은 해에 대한 성찰 없이 맞이하는 새해는 얼마나 허점투성이일 것인가. 뭐 이런 진중한 생각은 잠시 하고, 일단 집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영광 향화도로 차를 몰았다. 생각보다 영광으로 나가는 차들이 많다.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는다. 젠장. 일단 포인트를 잡고 삼각대를 세운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ND필터 꺼내고 장노출 몇 컷. 여전히 해는 구름 뒤에. 곧 해가 떨어질텐데 헛걸음이 될 건가. 젠장 젠장 하고 있는 그 순간 떨어지는 해가 구름 아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무조건 셔터 찰칵찰칵. 삼각대 볼헤드를 살짝 푼 상태에서 구도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무조건 셔터 찰칵찰칵. 일몰은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닥치고 셔터를 눌러대야 한다.

해는 기어이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낮은 구름 뒤로 모습을 숨긴 채 일몰 종료. 역시 일몰 일출 사진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건졌으니 운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삼각대 접고, 카메라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뒤돌아서니 달님이 딱. 해가 지니 달이 보인다. 다시 삼각대 펴고 카메라 꺼내 달님도 찰칵찰칵.

달님 달님, 새해엔 어여쁜 짝궁 찾게 해주세요. 급 소원 빌고, 어 추워 어 추워 서둘러 차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