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댓글' 없어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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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 '댓글' 없어도 그만

말하자면 나는 '드루킹'이 누구인지 그가 한 행위가 어떤 건지 세세하게 알고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범죄혐의가 있다면 처벌 받으면 그만. 뭐 이 정도 생각이다. 하지만 '댓글과 여론' 이런 주제에는 관심이 많다. '댓글 조작'이 '여론 조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메카니즘이나, 언론을 통해 재생산되는 거나, '베댓' 따위가 '여론'의 지위를 얻는 괴상한 현상, 이런 건 참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여론이라는 게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입에 오르내리고, 정부나 정치인들은 항상 여론의 향배에 좌지우지되는 것 같고, 전문가나 여론조사 업체에서는 통계적으로 여론을 파악해서 '예측'이라는 걸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여론은 바람과 같아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방향을 알 것도 같은데 갑자기 바뀌기도 하고.

여론의 실체는 있는가, 라는 물음에는 많은 논쟁점이 있지만, 실체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현실에서 여론은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언론이든 개인이든 여론에 무관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론을 유리한대로 해석하려 하고 심지어 조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론 자체가 아니라, 여론의 부정확성을 무시하고, 여론의 일부를 침소봉대하거나, 아전인수 또는 고의적 호도 따위처럼 여론을 자기 이익에 부합하도록 확대재생산하는 메카니즘이다.

우호적인 여론에 영향을 받고 결정적으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권력, 광고수익과 유입자 증가를 포기할 수 없는 포털사이트의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고, 언론은 개별 댓글 따위를 여론인양 인용보도하면서 확대재생산. 이 메카니즘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댓글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소수이고,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더 소수이며, 댓글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더더 소수이다. 댓글은 다양한 여론 중에 미미한 부분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유의미한 여론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댓글을 남기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4월26일자 <미디어오늘> 기사를 발췌한다.

4월24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통계사이트 워드미터가 지난해 10월30일부터 올해 4월23일(오전10시)까지 6개월 간 네이버 댓글 작성자와 작성 글을 분석한 결과 댓글 상위 작성자 100명이 단 댓글 수는 23만487건으로, 상위 100개 계정 당 평균 댓글 개수는 2304.8개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계정 1개당 평균 댓글 수는 2.58개였다. 상위 100개 계정의 댓글 중 56.6%는 정치 기사에 집중됐다.

4월23일자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서 김수형 SBS기자는 워드미터를 통해 4월19일자 네이버 댓글을 분석한 결과 11만8912개의 계정이 댓글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하루 한 번이라도 네이버에서 기사를 보는 이용자를 1300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이에 비춰보면 댓글을 다는 사람은 전체 계정의 0.9%에 불과했다. 네이버 댓글은 계정 1개 당 하루 20개까지 달 수 있는데, 그런 이들은 3743명이었다. 우리가 매일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독자들이다.

그러니까 이른바 '댓글부대'까지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우리는 '여론'이라고 주장(!)하는 언론들을 보고 사는 거다.

댓글은 여론이 될 수 없지만, 여론'화'될 수는 있다. 바로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댓글을 여론'화'하는 가장 유력하고 강력한 채널이다. 포털사이트의 방치(?) 아래 댓글은 조작되고, 언론은 그것을 다수의 의견인양 보도하여 여론'화'하며, 다른 언론들은 그것을 또 인용보도하여 '베댓'은 여론의 지위를 얻는다. 여론'화'된 댓글은 영향력을 얻고 그 힘에 기대어 정치인들은 온갖 근거로 내세우며, 이를 언론은 받아쓰면서 확대재생산.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권력이나, 댓글 조작을 방치하는 포털사이트보다 언론이 가장 나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언론이 나서서 확대재생산하지 않는다면, 일이 커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스스로 게이트키핑만 잘 해도 댓글이 여론으로 등극하는 사태는 없다. 하지만 언론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댓글을 취사선택하고 여론'화'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포털사이트의 뉴스에 댓글쓰기 기능을 아예 없애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댓글이 쌍방향 소통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며 칭송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상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형국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고 표현하는 것은 침해될 수 없는 자유권이지만, 굳이 포털사이트의 댓글이 그 채널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소수가 점령한 듯 보이는 포털사이트의 댓글 공간은 자유로운 표현 욕구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포털사이트와 정치권력의 댓글장사를 막지 못할 바엔 아예 댓글을 없애는 게 더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