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간다
diary

나이 들어간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신체적인 변화에서부터 감지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심경의 변화에서 먼저 느낄지도 모른다. 몸이든 마음이든 늙으면 변한다. 나는 몸이 늙는 것보다 마음과 정신이 늙는 것을 경계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또래 사람들은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말은 대개 몸이 그렇다는 뜻이었다. 어쩌다가 몇년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어느새 흰머리가 늘었고, 표정의 생기는 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잘 몰랐다.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고,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고 느꼈다. 머리털이 더 많이 빠져나간 것 같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아이고 깜짝이야 했던 순간은 내가 아빠를 닮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처음 느낀 건 아마도 서른 초반이었던 것 같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앗, 이건 아빠가 하던 행동인데'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그런 기억을 하는 횟수는 늘었고, 그 주기는 더 짧아지고 있다. 애석한 일은, 자라면서 난 안저래야지 했던 것들을 나이 들면서 닮아간다는 것이다.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Part 1'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늙어가는 육체에 시간과 돈을 쓰는 데 인색하지 않으면서, 정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육체가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속도를 늦출 순 있어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이 늙지 않도록 하는 일은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다. 김규항은 "몸이 늙는 건 숙명이지만, 정신이 늙는 건 선택이다"고 적었다. 역시 사색과 철학이 깊을수록 문장은 간결하지만 강렬해진다.

정신이 늙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입보다는 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입은 트이고, 귀가 좁아지면 꼰대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말을 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면, 자유로운 관계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