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사의 새끼들아!

내일은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날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에 대하여 무관심하지는 않다.
그건 그렇고.
성탄절이 요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탄절 전야는 나눔과 연대보다는 쇼핑과 유흥이 난무하는 어두운 밤이 된지 오래다.
이 밤에는 인민을 사랑한 예수의 숭고함보다 조작된 산타의 이미지가 훨씬 인기를 끈다.
이런 지경에 이른 데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지만, 여기서는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예수의 정신을 설파하는 데 힘써야 할 교회가 교인확보나 교회건물 증축에만 몰두하는 것은 정말 볼썽 없는 일이다.
이 뿐인가.
얼마 전에는 몇몇 목사들이 삭발을 했다.
그 중 어떤 목사는 '순교의 의미'라고 했다.
그들은 개정된 사학법이 재개정될 때까지 '순교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말문이 막힌다.
인민이 핍박받을 때,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다 목숨을 스스로 버렸을 때, 농민이 일군 농작물을 제 손으로 갈아 엎으며 피눈물을 흘릴 때, 탐욕한 자들의 전쟁에 어린 생명들이 수없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무얼 했던가!
물론 그들은 침묵하진 않았다.
'은혜의 나라' 미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서 세를 과시하기도 하였으니까.
그런 자들이 자신들의 황금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순교'까지 각오한다니!

예수는 더럽고 진실하지 못한 자들,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배 채우기에 급급한 자들,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채찍질하며 피흘리게 했던 자들에게 일갈하였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축복과 기쁨이 가득해야 할 성탄 전야에 나는 '독사의 새끼들'을 생각하고 있다.

김규항의 칼럼을 아래에 옮겨 놓는다.
5년전의 칼럼이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독사의 새끼들

천대받는 땅 갈릴리 출신의 불한당들, 예수와 그 제자들은 유태교회 지도자들과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켰다. 결국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계기가 된 그런 끊임없는 갈등의 핵심에 안식일 논쟁이 있다. 유태 사회의 유일한 법이자 윤리인 율법엔 안식일(말 그대로 쉬는 날)에 일하지 말라 적혀 있다. 그것은 신이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들고 하루 쉬었다는 창세기의 에피소드를 근거로 했다. 신이 쉬었으니 너희도 신처럼 쉬어라. 문제는 안식일에 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이고 뭐고 하루라도 쉬면 당장 굶게 되는 사람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그들을 교회지도자들은 '죄인'이라 불렀다. 예수는 그런 현실에 분노했고 선언했다. "독사의 새끼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예수는 그 '죄인들'을 사랑했다. 예수는 모종의 기득권을 유지한 채 그 기득권의 일부를 헐어 그들을 돕는 '양심적 행동'을 한 게 아니라 늘 그들과 지내며(알다시피,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 죽었다.) 그들과 '한통속'이었다. 예수는 편파적이었다. 못났다는 것,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것이야말로 예수에게 대우받는 첫째 조건이었다. 잘난 사람들,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예수에게 홀대받았다. 어느 날 한 겸손한 부자가 예수를 찾는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해야 합니까." "신의 계명을 알고 있겠지요." "그건 어릴 적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만." "그럼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돌아간다. 예수가 말한다. "보세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어렵습니다."

예수 이전, 구약의 신은 유태인의 신이다.('시오니즘'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그런 신관을 기초로 한다.) 예수는 무슨 짓을 했든 저에게 극진하다면 축복을 내리는 그런 이기적인 신을 부인한다. 예수 이후의 신은 유태인의 신도 교회의 신도 아닌 온 우주만물의 신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아들딸이며 신 앞에서 인류는 형제자매다. 인종이 무엇이든, 종교가 무엇이든, 신분이 어떻든. 자, 저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 이 순간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그 아이는 바로 당신의 동생이다. 굶어죽어가는 어린 동생을 외면한 채 오늘은 무얼 먹어 이 권태로운 창자를 달랠까 고민하는 당신은, 아버지인 신 앞에 큰 죄인인 것이다.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는 그런 예수의 메시지를 정확히 뒤집는다. 예수를 빙자하는 한국 교회는 바로 이천년 전 예수가 대결하던 유태교회와 같고 한국교회가 제시하는 신은 저에게 극진한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신이다. 한국교회는 예수가 대우하던 사람들을 홀대하며 예수가 홀대하던 사람들에게 늘 편파적이고 그들과 '한통속'이다. 한국교회에서 형제의 고통을 외면하고 제 안락을 좇는 일은 신의 축복이라, 그렇게 성공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 해석된다.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라 주장되는 상점'이다. 한국교회에 남은 일은 예수가 성전에서 신을 빙자한 장사꾼들을 내쫓았듯 예수를 빙자한 장사꾼들이 내쫓기는 일이다.

최근 <월간조선> 사장 조갑제씨는 각종 기독교 집회에 단골 강사로 나서고 있다. 한국 교회의 탐욕을 자극하여 오늘 진행되는 일련의 사회개혁적 노력들을 사탄의 사업이라 선동하기 위해서다. "성경에 따르면 사탄은 머리가 좋고, 우상숭배를 요구하며 예술적이고 남을 속이는데 천재라고 묘사되어 있다. 김정일은 바로 그 사탄이다. 그런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제자들이 한국에 많다. 이들은 민주투사, 개혁주의자, 민족주의자, 통일주의자, 양심가의 행세를 하면서 사탄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그저 정신병적 괴변에 불과한 그의 논리는, 그것이 가장 탐욕적인 한국 교회를, 넘쳐나는 '독사의 새끼들'을 선동하려는 술책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완벽해 보인다.(한겨레 2001.8.15)

Posted by gyuhang at 2001.08.15 10:55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