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는 기자와 로맨티스트 대표, 그리고 센스 있는 기자

흔히 언론을 두고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 이 창이 제 역할을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지사.
빨간 색유리가 끼워진 창으로 본 하늘은 파란색이 아니다.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창으로 선명한 바깥 풍경을 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나마 투명하고 깨끗이 닦인 유리창이라면 비교적 정확히 보일 것이다.
창에 어떠한 유리도 없다면, 가장 정확히 바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 수용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바깥에 대하여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바로 언론을 통하지 않고 현장에서 세상을 직접 체험하는 것일 터.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상만사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즐겨 찾는 언론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프레시안>을 즐겨 찾는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에는 꼭 찾는다. <프레시안>에 접속할 때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재미가 꽤 솔솔해서 중독된 것처럼 날마다 <프레시안>을 읽는다.

<프레시안>에는 잡다한 단신이 없어서 좋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들은 굳이 몰라도 될 것까지 시시콜콜 보도해서 인민을 기사의 홍수 속으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무슨 기사를 읽었는지도 모르는 바보로 만든다.
내가 <프레시안>을 신뢰하고 즐겨 찾아야 하는 이유를 오늘 또 하나 발견했다.
강양구 기자(그의 존재는 내가 <프레시안>을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 그것.

외교통상부가 <프레시안>에 4천만원 짜리 한미FTA 광고를 제의했는데 내부 논란 끝에 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단순히 이 정도로는 감동이 덜 하다. 내부 논란의 와중에 한 기자가 울음을 터뜨렸고, 1, 2천만원을 더 얹어 주겠다는 외교통상부의 제안에도 <프레시안>의 대표는 광고 거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 대표가 밝힌 거부 사유가 일품이다.

"내가 너희들을 굶길 수는 있어도 울리지는 말아야지 않겠냐."

울음을 터뜨리는 기자와 '울리지는 말아야겠다'며 돈을 거부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 대표가 있는 언론사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 스토리를 블로그에 올려둘 줄 아는 센스를 가진 강양구 기자도 포함! ㅎㅎㅎ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 사람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