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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을 잘 이용하자

저녁 밥을 먹고 바람이나 쐴 겸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도로를 타고, 풍암저수지를 지나 시청자미디어센터 쪽으로 달리던 중에 인도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자전거를 멈췄다.
인도 위에 한 할머니가 배를 깔고 누워 있고, 그 옆에서는 젊은 여성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인도 위로 올리고 뭐 도울 일 없을까 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여성이 전화로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19에 신고한 것 같았다.
전화를 끊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걸어나오더니 쓰러졌단다.
옷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할머니에게 말을 시켜봤더니, 술을 드셨다고 한다.
젊은 여성에게 119에 신고한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할머니 목에 걸려 있는 연락처 목록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은 사람이 곧 온다고 했단다.
그런데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
젊은 여성이 옆에 교회가 있으니 거기로 모셔다 드리면 어떻겠냐고 한다.
일단 할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젊은 여성이 내 자전거를 지키고 있겠다고 하고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교회로 갔다.
다행히 그 곳 목사님이 할머니와 아는 사람이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나왔다.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가서 젊은 여성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혼자서 난감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흐뭇했다. ㅎㅎㅎ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바로 119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신고를 했으면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하게 구조되었을텐데. 공권력의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한국의 공권력이 인민의 생활과 친밀하지 못하다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공권력을 잘 이용하자!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오해를 받았을 것 같다.
사람이 쓰러져 있고, 자전거와 라이더 복장을 한 사람이 그 옆에 서 있으니...
내가 자전거를 타다 사람을 친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을까.
어쩐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이상하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