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정말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악습이자 나쁜 제도이다.
아무런 감흥이나 의식도 없이 기계처럼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로 갖다대는 이 뻘쭘 액숀.
나는 군대 전역 이후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 나에게 한국은 별로 '충성'하고 싶지 않은 국가다. 설사 내가 국가에 '충성'한다 치더라도 그걸 왜 꼭 뻘쭘한 액숀을 취해서 공개적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근엄한 행사장에서 모두가 일어서서 엄숙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나는 멀뚱 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 때마다 상당한 쾌감을 느꼈다.
직장이나 기타 경직된(?)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대놓고 뭐라 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난 5월 교육실습 중에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월요일에 하는 전체 교직원회의 자리. 거의 모든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여서, 회의 전에 국민의례를 한다. 교무주임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할 때 나의 오른손은 머뭇거리다 결국 왼쪽 가슴으로 갔다.
수년간 지켜온 나의 양심이 이렇게 허무하고 약하게 무너지다니!
경례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창피했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양심이 진짜 양심이다.
더 수련해야지. ㅎㅎㅎ
나중에 학교 현장에 서더라도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할 수 있도록!